'그들만의 리그'에도 알록달록 색깔이 있다결혼·성의식은 의외로 보수 성향… 생활 만족도·자존감 높아취업률 90% 넘어… 자급자족형 많고 자기개발에 적극 나서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올라 할인마트·인터넷 쇼핑몰 등서 눈독

치과의사 박재성 씨(31)는 6년차 ‘싱글 가구’다. 그는 요즘 퇴근 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 후 저녁은 친구나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며 보낸다. 주말에는 야구와 농구모임에 가거나 지인을 만나는 등 ‘인맥 네트워크’를 만든다.

가끔 골프나 등산을 즐기기도 한다. 싱글 생활을 각인 시키는 것은 ‘혼자 밥 먹는 일’. 오랜 싱글생활답게 수준급 요리솜씨를 자랑하지만, 직접 해 먹기보다는 주문해 먹거나 외식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아침 식사는 ‘가볍게’ 건너뛴다. 박 씨는 “자유로운 생활에 불만은 없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든다”고 밝혔다.

최근 박재성 씨와 같은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국내 1인 가구는 2005년 기준 20.0%로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는 1980년 4.8%에서 90년 9.0%, 2000년 15.5%로 그 비중이 점차 증가해 왔다.

■ 대한민국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싱글'

이런 수치는 독신자가 많은 네덜란드(35%)·독일(38%)·오스트리아(30%)·미국(27%)·일본(30%)과 비교해 볼 때도 결코 낮지 않은 수치다.

외국과 비교해 국내 1인가구의 특징은 ‘노인 독신자 가구’와 ‘20대 미혼독신자 가구’의 비율이 높다는 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혼 1인가구의 가족의식 및 생활실태 조사>를 보면, 국내 1인 가구 연령 분포는 60세 이상이 30.8%로 가장 높고 20대가 21.4%로 2위를 기록했다. 남성의 경우 30대가 29.0%로 가장 높은 반면 여성은 60세 이상이 45.0%로 가장 높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연구책임자인 김혜영 연구원은 “남성의 경우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혼시기가 늦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명이 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1인 가구를 지탱하게 하는 것은 ‘경제력’이다. 1인 가구 중 90.1%는 현재 취업 상태로 이 중 절반이 넘는 53.5%가 상용직형태다.

이들이 근무하는 사업체 규모는 300인 미만인 중소기업이 90.5%를 차지해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 총 소득 구성방식을 보면 약 80%가 ‘본인이 일한 소득’으로 가구 소득을 충당하고 있으며 총 소득 중 금융소득이나 형제 자매의 도움은 10.5%를 차지했다.

이들 1인 가구의 결혼과 성의식은 의외로 ‘보수적’이다. 지난 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인가구 1,204명을 조사한 결과 40.2%가 ‘결혼은 반드시 해야한다’고 생각한 반면, 반대 의견은 18.2%에 그쳤다.

동거에 대한 찬성 비율은 17.3%에 그친 반면 반대 의견은 50%를 차지했다. 제도적인 결혼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자녀를 낳거나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의견이 70%에 달했다. 배우자 이외의 성관계는 70%, 동성끼리 성관계는 97%가 반대했다. 오랜 ‘싱글’ 생활에도 스스로 동거를 고려해본 경우는 19.9%에 그쳤다.

조사 대상자들은 1인 가구 생활에 대해 ‘자존감과 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일반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연상되는 외로움이나 고독감, 일상생활 처리의 어려움, 성적 욕구의 해결” 등에 대해서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직장의 만족도는 ‘보통수준’이란 대답이 52.6%로 가장 많았으며 만족 21.8%, 불만족 21.5% 순이었다. 1인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74만원이다.

영화 '싱글즈'의 주인공 장진영. 패밀리 레스토랑 매니저로 분한 그녀는 대표적인 20대 1인 가구의 가장을 연기했다.

■ 1인 가구 소비도 양극화

이런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곳은 기업이다. 지난 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요 키워드로 채택된 것 중 하나가 ‘싱글 이코노미’가 될 정도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재 시장이다. 이마트는 광주 봉선점과 서울 신도림점에 ‘싱글존’과 ‘미니미니존’을 설치했다. 대량 상품을 저렴하게 파는 대형할인마트의 전략에서 벗어나, 이곳에서는 면류 1인용 소포장과 스프, 즉석국 등 편의상품을 모아놓았다. 가로 1m 남짓한 매대지만 이곳의 월매출은 500만 원선. 500원~3,000원대 상품을 진열한 것 치고 반응이 좋은 편이다.

인터넷 쇼핑업체 역시 GS 이숍의 테마몰 ‘싱글즈’ 매장은 1인용 상품이 즐비하다. 20~40대 중반까지 1인가구에 적합한 1인용 상품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 특징으로 식품, 가전제품 뿐만 아니라 1인용 이사서비스, 여행상품과 전용 보험까지 판매한다.

‘싱글즈’코너의 하루 방문객은 1만 명이상이다. 롯데홈쇼핑 인터넷쇼핑몰 롯데아이몰 역시 ‘싱글족을 위한 주방용품 기획전’을 통해 1인가구에 적합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쌀과 물을 넣고 전자레인지로 15분만 가열하면 밥을 지을 수 있는 ‘한끼 미인 전자레인지용 미인밥솥’은 1월 한 달 동안 100여개가 팔려나갔다. 이 밖에도 팬케이크와 달걀프라이를 손쉽게 조리할 수 있는 ‘캐릭터 미니프라이팬’, 상대적으로 과일 섭취가 부족한 싱글족들을 위한 ‘바나나 애플 슬라이서 세트’ 등이 싱글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1인가구 소비시장도 ‘양극화’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홈쇼핑 관계자는 “1인용 상품은 주로 좁은 공간에 맞는 1인용 침구나 책상, 생활가전 등 콤팩트형이 선호되지만, 경제력 있는 1인 가구를 중심으로 LCD TV나 PDP TV 등 고급 제품 판매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양극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1인가구는 20·30대 미혼가구에서부터 배우자 사망이나 이혼으로 인한 비혼가구, 노인 독신 가구 등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소비 패턴이나 수준을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기업의 1인 가구 마케팅은 주로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일정 수준 이상 근로소득을 가진 30·40대 1인 가구에 집중되고 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년간 국내 6,000명의 소비패턴을 분석한 대홍기획의 권구헌 연구원은 “남녀 구분 없이 30대 싱글들은 외모를 가꾸는 등 자기계발을 중요시 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득이 높을수록 가격 구애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의 2006년 매출 고객을 분석해 보면 30대 고객 중 30~34세 고객 매출의 71.6%를 싱글이 차지했다. 35~39세 매출도 싱글 비중이 41%나 된다. 30대 싱글남녀가 모두 1인 가구는 아니더라도, 30대 1인가구 시장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스터 카드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미래의 아시아 소비시장을 형성할 역동적 트렌드 10가지>에서는 “젊은 싱글족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쉽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재량 소비는 소득과 비교해 불균형적으로 높다. 아시아 젊은 싱글족은 양적 숫자가 많지 않더라도 소비 시장에서 질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혼인율 줄고 초혼 연령 늦어져 5가구 중 1가구는 싱글 세대
독거 노인 등 경제력 없는 가구에 정부의 적극적 도움 필요


■ 교통 요지는 싱글 천국

1인 가구들이 주로 사는 주거용 오피스텔이 밀집한 테헤란로.

1인 가구 증가로 변화조짐을 보이는 것은 부동산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1인가구는 학군, 녹지 환경 보다는 퇴근 후 운동과 쇼핑, 어학공부 등 취미생활과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특히 출퇴근이 편리한 교통요지는 직장인 1인가구가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다.

현재 1인가구는 단독주택 거주가 32%로 가장 많고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이 24.5%로 그 뒤를 잇는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각각 21.3%, 11.4%에 그쳤다. 그러나 1인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2000년대 중반부터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원룸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3호선 양재역 부근과 교대역 근처 원룸촌은 테헤란로보다 저렴하면서 강남 접근성이 좋아 강남 부근 1인가구가 밀집한 곳이다. 도심과 가까운 돈암동, 혜화동 일대 역시 원룸과 오피스텔이 밀집한 싱글천하. 서울대 입구 전철역 근처 신림·봉천동은 강남원룸보다 저렴하면서도 강남, 여의도로 출퇴근하기 편리해 2,30대 1인가구가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다.

부동산 관계자는 “강남 강북으로 접근하기 좋은 약수역과 옥수역 지역도 주변 편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어도 강남 못지않은 시세를 이루고 있다. 원룸은 8평에서 10평 기준 전세 8000만원에서 월세 1000만원에 50만원수준”이라고 밝혔다.

■ 정부 정책은 전무

1인 가구의 증가 이유로 우선 혼인율 감소와 초혼 연령 지체를 들 수 있다. 대학교육이 보편화됨에 따라 교육기간이 늘어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초혼 연령이 지체됐고 경제력을 가진 여성이 많아짐에 따라 1인가구가 증가했다. 실제로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평생을 혼자 살 것’이라도 대답한 결과를 보면 남성이 7.8%에 그친 반면 여성은 19.5%에 달해 두 배 이상 비율을 보였다.

1인 가구가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29.1%가 이혼과 별거 때문, 23.5%가 직장과 학업문제라고 대답해 이혼과 별거 증가, 교육·취업경쟁으로 인한 독립 증가도 1인 가구 증가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남성 1인 가구의 29%는 30대로, 남성의 초혼 연령대가 늦어지면서 독신남성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되며 1인 가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30년에는 1~2인 가구가 전체의 51.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주목할 사실은 1인 가구 내에서도 연령과 교육수준은 결혼지위에 따라 다양한 생활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연령이 낮은 집단, 교육수준이 높은 집단, 결혼경험이 없는 집단이 상대적으로 넓은 정서적, 경제적 네트워크를 유지한다. 여가생활 역시 운동과 학습, 여행 등 자기개발을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한다.

1인 가구 내부에서도 노령가구, 이혼이나 사별로 인한 비혼가구, 경제력이 없는 가구의 경우 주변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김혜영 연구위원은 “1인 가구를 위한 노후생활 준비 교육프로그램 마련과 재가 복지서비스·의료서비스 등 통합 생활지원시스템 마련, 1인 가구의 사회적 네트워크 지원, 여가 인프라 확충 등의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직 1인가구를 위한 정부의 정책은 전무하다. 여성가족부 정책관계자는 “1인가구의 정책의 경우 특별한 것은 없고, 정부의 ‘건강가족지원센터’를 통해 1인 가구에 대한 지원은 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건강가족지원센터는 미혼모, 이혼가정 등 한부모가정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정부의 기관이다.

아직 건강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지원된 1인 가구 사례는 없다. 관계자는 “1인 가구의 경우 30, 40대 경제력이 있는 비혼자가 많지만, 노인가정과 독신자 가정 등 지원이 필요한 가구도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은 보완해야 할 점”이라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