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와 노인' 국제 컨퍼런스 열려 10개국 23명 전문가들 열띤 토론한국 4년만에 '실버 네티즌' 3배 이상 늘어나老老정보격차·실질 활용 미흡 등 문제 지적노인 정보화는 복지의 핵심이슈로 떠올라… 소외·우울증 등 부정적 정서 극복에 도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7년 7월 기준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48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 10명 중 1명이 고령자인 셈이다.

앞으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10년 후인 2018년께는 그 비율이 14.3%에 이르고, 2026년에는 20%를 돌파해 이른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같은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것이다.

한국이 남다른 속도를 과시하는 또 다른 변화는 바로 정보화다. 2000년대 들어 IT강국으로 눈부신 도약을 거듭해온 우리나라는 정보화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07년 상반기 정보화 실태조사에 따르면 20~40대 가구주의 PC 보유율과 인터넷 접속률은 90%를 훌쩍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화의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은 층에 비해 장ㆍ노년층의 정보화 수준은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 특히 60세 이상 인구의 인터넷 이용률은 17.4%에 그쳐 노인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아직 정보화에서 소외돼 있는 실정이다.

정보가 곧 자산이 되는 정보화사회에서 정보격차(digital divide)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최대 요인이다. 따라서 노소(老少)간 정보격차는 근본적으로 세대간 불평등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직면한 공통된 현상이다.

특히 정보화 속도가 빠른 선진국과 신흥경제국가 등을 중심으로 세대간 정보격차 해소는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터에 최근 노인 정보화를 주제로 한 세계 최초의 국제학술대회가 국내서 열려 관련 전문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연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28~29일 ‘정보사회와 노인 국제 컨퍼런스’를 공동 개최해 지구촌의 급격한 정보화에 따른 노년층의 적응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미국, 호주, 일본, 덴마크 등 10개국 23명의 전문가가 발표자로 참여한 이번 대회는 세계 각국의 노인 정보화 현황과 정부정책, 성공 및 실패사례 등 경험과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개별 국가를 넘어 지구촌 차원에서 노인 정보화 문제를 조명하고 해법을 모색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대회 준비위원장인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최재성 교수는 “정보화 및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어르신 정보화’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며 “이번 학술대회는 세계 각국이 고령화 및 정보격차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공유하는 한편 지구촌 차원의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한 매우 의미 있는 행사”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 발표를 통해 드러난 각국의 노인 정보화 추진체계 특징은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나라마다 사회문화적 여건과 정보화 수준이 다르지만 노인 정보화의 큰 방향과 전략은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인종이나 민족, 국가에 관계없이 노인의 인구학적 특성은 거의 동일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노인 정보화는 지난 2001년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범 국가적으로 추진돼 오고 있다. 정부의 노인 정보화 정책은 ‘정보격차 해소 종합계획’을 통해 정보화 교육, 정보접근시설 확충 등에 초점을 맞춰 왔다. 아울러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노인 정보화 지원 및 협력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 결과 2002년 9.3%에 그쳤던 장ㆍ노년층(50대 이상) 인터넷 이용률은 2006년 28.3%로 훌쩍 뛰었다. 불과 4년 만에 ‘실버 네티즌’이 3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향후 정부는 2010년까지 약 300만 명에 대한 노인 정보화 교육을 통해 장ㆍ노년층 인터넷 이용률을 60%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노인 정보화는 짧은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숙제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정보화가 전체 노인계층으로 확산되지 못하면서 이른바 ‘노노(老老)간 정보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노인들이 정보화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을 실질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이와 관련, 최두진 한국정보문화진흥원(KADO) 정보격차해소연구센터장은 “고령화 시대에 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소외 문제”라며 “노인들의 일자리 창출, 사회활동 적극 참여, 가족간 유대 강화 등에 정보기술이 활용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웃 일본의 노인 정보화 방향도 우리에게는 시사점이 많다. 일본은 이미 2006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일본 역시 65세 이상 노령 인구의 정보기술 활용도는 아직 낮다. 다만 65세 이하 노령 인구의 절반 가량이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탈리아 나바대학교 로베르토 다다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노인 정보화에 앞장서 왔다. 1996년부터 일본정보통신협회를 통해 노인 대상 정보통신 서비스 개발을 지원하는가 하면, 2004년에는 정보통신접근위원회과 함께 노인을 위한 ‘정보통신장비 접근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기도 했다. 또한 공공기관 웹사이트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운영모델을 만들어 전파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노인 정보화는 통상적으로 젊은 사람이 노인을 가르치는 양태를 띠지만, 이미 정보화 세례를 받은 노인이 다른 노인들을 가르치는 노노(老老)간 교육 형태도 적지 않다. 이런 방식은 서로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세대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호주노인컴퓨터클럽협회는 애초부터 노인이 노인을 위해 설립한 노인 정보화 단체다. 9년 전 남편과 함께 직접 협회를 설립한 낸 보슬러(여ㆍ73) 회장은 지금까지 약 12만 명의 노인을 정보화로 이끌었다.

그는 “노인 정보화는 그들이 학습에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각자의 성취도에 맞게 교육을 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라며 “노인들도 일단 정보화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 어느 연령층 못지않게 컴퓨터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도 노노간 정보화 교육의 사례가 있다.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해 수준급 실력을 갖춘 노인들을 강사로 활용하고 있는 ‘어르신 IT봉사단’이 그런 경우다. 2007년 기준 약 200명의 ‘어르신 강사’들이 정보화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덴마크 역시 정보기술을 습득한 노인들이 다른 노인들의 학습을 옆에서 도와주는 노인 정보화 교육체계를 갖춰 놓았다.

노인들은 황혼에 접어들면서 흔히 소외감, 우울증, 무기력감 등 부정적 정서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노인 정보화가 그런 정서적 불안을 극복하고 자신감과 활력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하이파대학교 아지 바락 교수는 “여러 나라에서 정보화 교육을 받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이전보다 부정적 정서가 크게 감소했음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노인 정보화는 이제 노인복지의 핵심이슈로 떠올랐다. 정보기술이 발달할수록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학술대회는 노인 정보화가 지구촌의 당면과제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자리가 됐다.

한국MS 유재성 사장은 “어르신 정보화의 중요성에 관한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세계적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정부, 기업, 시민단체 등 다양한 부문에서 어르신 정보화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