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왕따' 끝에 해고 당하고 사문서 위조 혐의까지 덮어써…전 LG전자 직원에게 이례적 판결

검사의 기소가 잘못됐다면, 국가가 금전적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검사 고유 권한인 불기소처분에 대해 법원이 잘못을 지적하고 배상판결까지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로 앞으로 유사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전 LG전자 직원 정국정(45)씨는 1996년 LG전자 근무 당시 본사와 하청업체 사이의 비리 의혹을 회사에 고발했다가 사내 메일 수신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왕따 메일’ 등으로 집단 따돌림을 당했고 2000년 2월 해고당했다. 정씨가 언론 등을 통해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하자 회사측은 정씨가 ‘왕따 메일’을 위조했다며 오히려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정씨는 그러나 무죄판결을 받았고 법정에서 정씨에게 거짓 증언을 한 회사 직원이 오히려 위증혐의로 수감됐다. 무죄가 확정되자 정씨는 자신을 위조범으로 매도한 회사 관계자들을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기소처분만 반복했고 직장도 없는 정씨는 10년 이상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기나긴 법정투쟁에 들어갔다.

정씨가 분노한 결정적인 이유는 검찰 내부에서조차 불기소처분이 잘못됐다고 수 차례 지적됐는데도 수사 검사들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의 불기소 처분→정씨의 항고→고검의 재기수사 명령→다시 불기소 처분’이라는 ‘쳇바퀴 수사’가 반복됐다. 결국 3차레나 재기수사 명령이 내려졌는데도 회사 관계자들은 무고 혐의로 처벌되지 않았다.

2002년 정씨의 항고 내용을 검토한 서울고검 검사는 “국민적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할 대기업에서 경찰, 검찰의 수사과정 및 재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그릇된 증거자료와 증인신청 등으로 실체적 진실발견을 어렵게 만든 사건인 만큼, 검찰은 기업 전체 차원에서 사건의 진상은폐 의혹 또는 그 밖의 범범 행위는 없었는지 치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단독 최남식 판사는 11일 “허위사실을 근거로 고소한 사람들을 검사들이 무고죄로 처벌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불기소처분만 내려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정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정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최 판사는 “검사들은 정씨에 대해 무죄판결이 선고된 이후에도 고소인인 회사 관계자들의 진술만을 토대로 불기소처분을 반복했다”며 “정씨는 검찰의 잘못된 기소로 3년 동안 무죄를 받으려고 고생했고, 일부 검사들은 불기소처분에 대해 3번씩이나 재기수사 명령을 내림으로써 검찰 내부에서도 이미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최 판사는 “이 사건 불기소처분은 합리성을 결여한 위법한 판단이므로 검찰에서 이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 판사는 특히 “허위고소와 검찰의 잘못된 기소가 맞물려 억울하게 고통을 당한 자들에게는 검찰이 더욱더 책임 있는 자세로 고소인들에 대한 무고 여부를 조사해 허위고소로 검찰을 현혹한 자들에 대해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검찰의 잘못을 지적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19일 “회사에서 정씨에 대한 집단 따돌림 등 불법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방치했다”며 LG전자가 정씨에게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정씨는 “10년 이상 검찰을 상대로 제대로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검찰은 내 말보다는 대기업측 주장만 귀담아 들으며 피해자인 나를 모멸하기까지 했다”며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얼마나 큰 위험을 내포한 것인지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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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강철원기자 str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