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학생 선택기회 확대로 자율권 존중반- 교육 근본 이념 무시한 교사의 상품화

충암고등학교 김창록 교장
담임교사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충암고등학교 신입생들은 새 학기 담임선생님을 궁금해 하며 설레는 일이 없다. 입학하기도 전에 이미 담임선생님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미리 선택한 담임선생님과 함께 정해진 반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총 20개 반으로 구성돼있는 충암고 1학년, 담임교사 후보 20명은 자신의 학급운영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교사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담당과목과 학급운영방침 등을 차례로 소개하며 자기PR 시간을 갖는다. 그 뒤 학교측에서 정해놓은 날짜와 시간에 맞춰 학생들이 선착순으로 담임교사를 선택하는 것이 충암고에서 시행중인 담임교사선택의 방식이다.

충암고는 2007년부터 담임교사선택제를 실시, 올해로 2년째를 맞는다.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학교는 현재로선 충암고가 유일하지만 이 보다 앞서 2003년에 이미 경기도 구리고등학교에서 담임교사선택제를 한차례 실시한 바 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담임교사선택제를 시행했던 구리고등학교는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인해 이듬해인 2005년 제도를 폐지했다.

2003년 당시 학력간 편차가 극심했던 구리고는 학생들에게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담임교사선택제를 도입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당시 구리고등학교 교무 부장이던 교사는 “입학하기 전부터 학원이나 중학교에서 친해진 학생들이 모두 한 학급으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친한 학생들이 대거 몰린 반은 분위기가 좋아 성적향상은 물론 담임교사 역시 활력을 얻어 시너지 효과를 냈지만 그렇지 못한 반에서는 오히려 침체현상이 두드러져 시스템 도입 전보다도 학력 간 편차가 커지게 됐다”고 전했다.

학생들 간 경쟁을 유도하려 했던 처음 의도와는 달리 제도시행 결과는 마치 우열반을 나눠놓은 것처럼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담임교사선택제 도입을 환영하던 교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의욕을 잃어갔고, 결국 구리고는 시행 2년 만에 제도를 완전 폐지했다.

한편 구리고는 담임교사선택제를 통해 성과를 얻기도 했는데 바로 학교의 경쟁력 강화다.

구리시내 여러 학교들 가운데 담임교사선택제를 실시했던 학교는 구리고 뿐이었고, 자연스레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 제도가 보다 효과적으로 학생들을 이끌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우수한 실력의 학생들이 구리고에 많이 입학한 것이다.

당시 구리고의 교무부장은 “그 해 서울대에 3명이 합격했고, 유독 명문대 진학률이 높았다”며 담임교사선택제의 성과를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구리고는 담임교사선택제를 실시해 입시효과홍보는 톡톡히 본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도가 낳은 부작용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됐다.

이처럼 시행착오를 겪고 자취를 감췄던 담임교사선택제가 지난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충암고가 다양한 측면에서 담임교사선택제의 효과를 확신하고 과감하게 시행한 것이다.

담임교사선택제를 시행한 후 학교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충암고 김창록 교장은 “우선 교사들끼리 경쟁심리가 생기다 보니 교사들의 태도가 능동적이 됐고, 학교 일에 더욱 책임감을 갖는 교사들이 늘어났다”며 “자율적으로 학급을 선택한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즐거운 학교생활이 가능해지면서 학습효과가 향상,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고 말했다.

충암고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 모 교사는 “사실 담임교사선택제를 실시하는데도 담임을 맡지 않으면 경쟁력 없는 교사로 오해 받을 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담임을 신청했다”며 “의도와는 달리 막상 시간이 지나면서는 반 학생들 한명 한명이 나를 선택해서 찾아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욱 애정이 갔고, 상담활동이나 그 외 학급운영도 훨씬 잘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담임교사는 “처음 체육관에서 교사소개를 할 때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반 배정이 되고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뿌듯함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충암고에서 담임교사선택제와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04명의 교사들 가운데 56명의 교사들이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설문에 참여한 학부모와 학생들도 90%가량이 담임선택제를 긍정했고, 반대하는 입장은 10%정도에 불과했다.

충암고 2학년에 재학중인 김 모 군은 “다른 학교 친구들은 3년 내내 남자담임선생님만 또는 여자담임선생님만 만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원하는 선생님과 함께 학급생활을 할 수 있어서 공부도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긍정적인 입장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선 만만치 않은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충암고 한 교사는 “신분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기간제 교사와 젊은 교사들을 집중적으로 담임후보에 배치했지만 학부모들 중에는 경험 많은 교사들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전체 119명의 교사 중 26명이 기간제 교사인 학교 구조에서는 담임교사선택제가 이벤트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선착순으로 담임교사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신청이 몰리면 일 처리가 비효율적이다”고 지적했다.

한편 담임교사선택제와 관련해 전국교직원노조는 학교의 학원화를 우려했다.

전교조 한만중 정책실장은 “마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처럼 학생이 교사를 선택하는 것은 인성교육 등 근본적인 교육의 이념을 도외시한 발상”이라며 교사를 상품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채총연합회 측 역시 “입시 위주의 왜곡된 교육현실에서는 담임 선택의 기준이 학생을 좋은 대학에 몇 명 보냈느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전인교육 등 교육자로서 소신 있게 교육을 펼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학교를 믿고 학생들을 맡겨준 학부모의 기대, 그런 요구에 부합하겠다며 담임교사선택제를 시행하고 있는 충암고, 앞으로 본래의 취지대로 제도가 제 역할을 다할지는 계속해서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