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환자 증가에 따라 부작용 심해져… 졸피뎀·트리아졸람 성분이 문제병원 처방약은 물론 약국서 파는 일반 약도 중독성 부작용 밝혀져

30대 직장 여성 L씨는 어느 아침 출근해 이메일함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네 편지 반가왔다’로 시작된 친구의 이메일은 자신이 전날 밤에 보냈다는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하지만 L씨는 단연코 전날밤 그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 기억이 없다.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어 자신의 ‘보낸 메일함’을 열어본 뒤 더욱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자신이 한밤중에 그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낸 기록이 또렷이 남아있었다. 내용도 횡설수설의 장문이었다.

원인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에 잡히는 단서라곤 얼마전부터 심한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고 있다는 것과, 그 편지를 띄운 시각을 살펴보니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리에 누운지 1시간쯤 지난 시각이었다는 사실뿐이었다.

끔찍한 기분으로 자신의 휴대폰도 확인해 본 L씨. 역시 간밤의 전화 발신기록을 확인해보니 자신으로서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전화를 직접 이곳저곳에 걸었던 흔적이 확인됐다. L씨는 요즘 수면제를 먹기 전 무조건 인터넷 회선과 전화 코드 등을 모두 뽑아놓고 잠자리에 든다.

역시 불면증에 시달리다 얼마전 신경정신과 처방을 받아 수면제를 복용해 온 20대 직장인 K씨. 몇주전 출근을 위해 자신의 차를 찾았으나 늘 있던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타고 갔나 싶어 확인해보니 “형이 어젯밤에 갑자기 다른 곳에 주차해야겠다며 한밤중에 나가서 옮겨놓지 않았냐”며 되레 의아해했다. K씨로서는 전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전날에도 평소처럼 수면제를 먹고 얌전히 잤을 뿐, 다른 아무 일도 한 기억이 없었다. 자신에게 수면제를 처방해 준 의사에게 급히 이 상황을 알리자 ‘수면제 복용환자 중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난다’며 곧바로 수면제 복용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골목 정도였기에 망정이지 그 몽롱한 상태에서 고속도로까지 나갔다면 어쩔뻔 했을까’라고 생각에 K씨는 지금도 아찔하다. 그는 의사의 지시대로 곧바로 수면제를 끊었고, 더 이상 예전같은 몽유병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면제로 인한 몽유병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내 의학계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성인의 약 30%가 평생에 한번 이상 불면증을 경험,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불면증 환자 수가 전체의 7%에 달한다.

코모키수면센터 신홍범 원장은 “ 사회가 선진화되면 될 수록 수면장애가 많아진다”며 “농촌의 경우와는 달리 현대의 도시사회는 특히 밤늦게까지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리리듬이 무너져 불면증이 심화되는 경우와 사회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불면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불면증 환자들이 늘면서 이와 함께 병원의 정식 처방을 거쳐 수면제를 복용하는 이들 또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 추세와 나란히, 앞서 말한 몽유병 현상 또한 수면제 복용자수의 증가와 함께 빈발, 수면제 복용후 몽유병 증세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몽유병 증세는 수면제 복용에 뒤따를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다.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것이 최근에 출시된 졸피뎀 성분과 트리아졸란 성분의 약 제제들이다. 국내 병원에서 불면증과 관련해 처방되는 수면제는 주로 이 두가지 종류의 성분을 가진 카피 약들이다.

트리아졸란은 특히 요주의 대상 약품이다. 이 성분의 특성은 약효가 단시간에 즉각 나타나 빨리 잠이 들도록 만드는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대신 약의 작용 시간이 짧다.

수면제로 인한 몽유병 증세는 뇌 기능의 특성과 수면제의 약효가 한데 섞이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인간이 자고 있는 동안에도 뇌의 특정 부분만 잠들뿐 다른 특정 부분은 깨어있는 상태다. 이때 수면제를 복용할 경우, 뇌의 한 쪽은 이미 잠들었지만 여전히 깨어있는 뇌의 작용으로 인해 L씨나 K씨의 사례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뭔가 활동을 한 뒤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면 전연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수면제형 몽유병 증세도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L씨처럼 갑자기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일이 가장 일반적이다. 더 잦은 현상은 수면제 복용후 갑자기 심한 배고픔을 느끼며 뭔가 허겁지겁 먹어대는 증세다.

실제로 수면제를 먹기 시작한 후 밤마다 얼이 나간 사람처럼 갑자기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젖힌채 손에 잡히는대로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대다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모의 손에 끌려 병원을 찾은 뒤 역시 수면제 부작용 진단을 받은 사례가 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같은 수면제 복용후 몽유병 증세를 보인 사례는 많이 보고되고 있다.

물론, 외형상 증세가 비슷하다고 해서 모두 수면제 복용문제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 환자의 경우, 수면제 복용을 중단하고 다른 약으로 바꿨는데도 계속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 다른 내과적 정밀검사를 거친 결과 수면제 문제가 아닌 태생적 야간 간질 환자인 것으로 밝혀진 일도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을 거쳐야 한다.

수면제로 인한 몽유병 증세는 수면제의 복용량이나 복용기간, 중독성 여부와도 상관없이 나타난다. 즉, 수면제를 처음 먹거나 아주 조금 먹어도 이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일정량 또는 장기간 먹어도 몽유병을 겪지 않는 환자도 있다. 개인의 생체적 특성에 따라 그 반응에 개인차가 있다.

수면제로 인한 몽유병 현상이 일어날 경우 최선의 해결법은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는 것이다. 다소 고통스럽겠지만 자연적인 수면유도법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직장문제 등 여건상 이 방법이 어려울 경우, 차선책으로 문제의 수면제 대신 다른 약물로 대체하는 방법 등으로 완화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전문의와의 철저한 상담이 전제돼야 한다. 이외에도 수면제의 복용은 근본적으로 여러 가지 위험성을 안고 있다. 수면제의 부작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중독과 이완증세다.

굳이 몽유병까지 발생하지 않더라도 이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수면제 없이는 아예 잠을 자지 못하거나 수면제를 먹고 잠을 오래 잔 경우에도 제대로 깊이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잠을 자고 난 후에도 다음날 깨고나면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고, 기억력이 떨어지며 근육의 이완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수면제를 먹은 뒤 도중에 화장실에 가려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넘어져 다리뼈가 부러진 환자의 사례가 있다.

신홍범 원장은 “근본적으로 불면증은 수면제로 치료하려해서는 안되며 스스로 수면위생을 지키는 것, 특히 이미 많이 나와있는 좋은 수면관련 수칙이나 정보들을 일관되고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지속적인 불면증 극복방법”이라 지적한다.

전문의의 정식 처방을 받아 복용한 약물에도 이같은 위험이 있다면, 별도 처방없이 일반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약품들은 과연 안전할까? 이 물음 역시 대답은 단호히 ‘No'다.

각 과목별 병원과 온라인 상담 코너 등에는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쉽게 접하고 이용하는 약품들을 사용한 뒤 이에 대한 부작용을 경험, 황급히 문의하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상 약도 광범위하다. TV 광고로도 수시로 접하는 액체형 종합감기약에서부터 각종 두통약이나 해열제 등 진통제류, 안약, 연고제, 어린이용 감기 시럽, 심지어 물파스까지 중독성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흔히 야간 업무가 많은 샐러리맨들이 잠을 떨치고 일하기 위해 애용하는 드링크류의 중독성과 과다 각성약효 등 부작용은 직장인들 사이에 이미 널리 알려진 부작용이다.

한때 사회적인 논란까지 빚었던 모 유명 액체감기약의 경우는 가장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감기치료 목적으로 복용했다가 습관성 중독으로 발전해 뻔히 복용량 초과인 줄 알면서도 적정 용량 이상을 복용, 그 약을 먹지 않으면 현기증과 구토,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스스로도 그 부작용과 유해성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러 보다못한 가족들이 결국 병원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약물에 중독되면 신장을 비롯해 여러 장기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돼 건강에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경고가 오래전부터 국내외에 있어왔다. 문제의 최대 주범은 이 약에 함유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때문. 이를 장기 복용할 경우 신장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공식 연구결과와 더불어 특히 이 성분이 고용량의 카페인과 결합될 경우 간 손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나와있다.

모 제약회사의 유명 두통약 역시 습관적으로, 또는 다량 복용할 경우 구토와 식욕감퇴, 오한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심하면 급성 간부전으로 인한 출혈이나 호흡부전, 폐혈증, 뇌부종 등 무서운 독성반응도 나타날 수 있다. 또는 사람에 따라 심계항진이나 부정맥, 고혈압 등 심혈 관계 부작용과 더불어 초조감과 흥분, 불면증, 심하면 환각 증상이나 호흡 곤란까지 초래할만큼 위험하다.

원인은 이 두통약에 함유된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성분과 카페인 성분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약보다 효과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이렇듯 ‘강한 약’을 이용할 경우 이후에는 중독반응 등 이미 길들여진 부작용으로 인해 다른 두통약으로 바꾸려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카페인이 없는 두통약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는 모 제약회사의 제품도 대표적인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함유 약물이다. 한 약사는 ‘무카페인이라는 장점과 광고만 믿고 편두통이나 두통 환자들이 거의 과신하다시피 애용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신장 기능에 전혀 손상이 없을 수 없다’며 가능한 한 어떤 두통이든 약물없이 이겨내기를 조언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국의 두통약을 구입해 사용할 것이 아니라, 정 통증이 심하면 병원을 찾아 전문 처방을 받아 치료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물파스의 경우에도 습관적으로 다량 사용할 경우 초기에는 두통, 어지러움, 청력 장애, 시야가 흐려지는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심하면 중추신경흥분, 과호흡, 고열, 경련 증세를 비롯, 심지어 사망하는 사례도 있으므로 사용시 주의해야 한다. 이는 물파스에 함유된 메칠살리실레이트, 캠퍼, 티몰, 멘톨, 클로르페니라민 성분 등으로 인한 부작용이다.

날로 고도화된 스트레스가 지배하는 사회. 이로 인한 각종 질환에 있어서 ‘약물 과신 및 과,오용은 더욱 심각한 제2의 위험을 부를 수 있어 일반인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 대한수면연구회 전문의들이 말하는 '숙면과 음식'

△숙면에 좋은 음식 : 저녁 식사시 바나나, 요구르트, 우유, 참치, 크래커 또는 땅콩, 버터 등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들 식품에 다량 함유된 트립토판의 효과 때문이다. 잠자기 전에 과일을 먹는 것도 좋다.

△숙면을 해치는 음식 : 베이컨, 치즈, 초콜릿, 가지, 햄, 감자, 설탕, 소시지, 시금치, 토마토, 포도주 등은 불면증 환자라면 특히 피해야 할 식품들이다. 이들에는 타이라민을 포함해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교감신경 호르몬의 원료가 됨으로써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