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안전관리 시스템 'HACCP' 도입 10년국내 식품업계 85%가 종업원 5인 이하 영세업체… 기업 참여 저조해 끊임없이 사고 발생

최근 잇달아 터지는 식품안전사고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가공식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되는 사례는 예전부터 비일비재했지만 아직까지 식품안전사고가 해결은커녕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먹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이 증폭되면서 식품업체의 안이한 인식과 관행, 그리고 허술한 관리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식품안전관리 시스템으로 ‘HACCP(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햇썹’)’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HACCP은 식품의 원재료에서 가공단계를 거쳐 소비자가 이를 구입하기까지 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해 요소를 찾아내 이를 제거한 후 정부의 공인을 받는 제도다.

기존의 식품안전관리 시스템은 제조가 끝난 식품에 대해 샘플검사를 실시하고, 그 품질이나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때 판매를 금지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위해원인물질이 모든 제품에 포함돼 있지 않을 경우 샘플 검사만으로는 완벽한 발견이 어려울 뿐더러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해 신속하고 정확한 식품안전관리 제도로는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에 1995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식품안전을 강화하고자 사전관리시스템인 HACCP을 도입하였다.

국내에 HACCP 시스템이 들어온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HACCP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용을 업체 자율에 맡기다 보니 전체 제조업체 중 불과 1.5%의 업체만이 HACCP시스템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위해물질이 나와도 업체는 식약청에 이를 보고할 의무가 없고, 회수명령 역시 업체의 자율로 진행되기 때문에 식품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식약청의 HACCP 기술지원센터에서 발표한 HACCP 적용업소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3월까지 HACCP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전국의 업소는 총 385개소로 식품제조가공업소 344곳과 집단 급식소 41곳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205개 업소만이 의무적용에 해당하고, 나머지 180개 업소는 자율적용 업소로 지정돼 있다. HACCP 제도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들의 참여는 저조할 따름이다.

이와 관련해 식약청의 한 관계자는 “국내 식품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안전관리 기준이 취약한데다 위생 분야에 대한 투자를 낭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고, 실질적인 효과 창출보다는 지정 또는 인증 사실에 더 집착하는 등의 문제로 인해 HACCP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HACCP은 정부가 식품안전 관리를 위한 최선의 정책으로 채택한 만큼 모든 사업장에서 이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종업원 5명 미만의 영세업체가 전체의 85% 이상인 국내 식품업계의 현실상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HACCP제도의 정착이 계속해서 부진을 면치 못하자 식약청은 지난해 2월 HACCP업무 지원을 위한 ‘HACCP지원사업단’을 산하 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소속으로 발족시켜 전담하도록 했다.

HACCP지원사업단에서는 제도와 관련한 기술상담을 실시하며, 소비자 HACCP 교실, HACCP 지정공장 견학 등 무상컨설팅과 함께 현장기술지도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지만 고배를 마시기는 마찬가지. 산업체 지원 등 사업단 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업무 수행에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해외사정은 국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식품의 국제 기준을 정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1993년에 이미 ‘식품안전성 제고를 위한 HACCP 관리 지침’을 제정하고, 각 국에 이를 적용할 것을 적극 권장한 바 있다.

특히 HACCP 시스템 적용을 자율에 맡기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이나 EU(유럽연합)의 식품 업체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HACCP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또 식품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손해배상과 함께 징벌적 배상까지 포함해 거액을 지불해야 한다.

미국의 식품의약품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서는 97년부터 어패류 및 어패류 제품에 대한 HACCP 규제를 본격화했고, 이는 국내 대미수출 수산물업체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HACCP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업체와는 거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HACCP 적용을 더욱 확대한 미국은 가공주스로 인한 식중독 피해가 늘어난 2001년에는 신선가공주스에 대해서도 HACCP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밖에 모든 식육 및 가금육 공장에서도 지속적으로 HACCP을 의무 적용하고 있다.

한편 EU에서는 수산식품, 식육 및 식육제품, 유제품 등 모든 식품에 대해 HACCP 제도를 실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EU지역 내로 수출하는 모든 식품제조시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HACCP 적용을 요구하고 있어 전 세계로 HACCP 제도가 확산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그밖에 일본은 HACCP을 도입하는데 필요한 비용 일부를 정부에서 보조해주기도 한다. 일본 후생성에서는 유제품 및 식육제품과 어육제품, 살균식품, 청량음료 등에 HACCP을 적용하고 있고, 운영이 잘 되고 있는 제조업체에는 금융, 세제상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국내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식품의 안전성과 위생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하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식품위생 분야의 한 전문가는 “식품위생법 상 우리나라는 식품업을 시작할 때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도 가능해 기본적인 시설을 갖추고, 신고만 잘 하면 사업을 할 수 있다”면서 “규제를 줄이는 것도 좋지만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식품에 대한 규제까지 늦춘 것은 정부의 근시안적인 태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무엇보다도 식품위생법 자체의 개선이 시급하다”며 “신고사항이라고 규정돼 있는 항목들을 허가사항으로 바꿔야 할 뿐만 아니라 식품업 역시 이제는 허가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실제로 미국에서 던킨 도너츠 지점 한 곳이 문을 열기 위해서는 사전에 46번 정도의 조사가 진행된다”며 “위생시설은 물론 재료와 제품, 또한 제대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설비를 갖추었는지 까지도 철저하게 조사·관리하고 있다”고 전하며 이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국내 식품위생안전문화의 현실을 꼬집었다.

제조업체의 위생관리 강화를 위해서는 추가비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와 정부가 이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타협점을 찾아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선진 식품위생안전문화가 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식품업체의 관리시스템을 개선하고자 식품안전관리강화대책을 발표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흐지부지되고 있는 HACCP제도를 2012년까지 연차적으로 늘려 1,400곳 정도 업소로 확대 적용하고,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해 HACCP제도 도입이 힘든 중소 기업체들에게는 보다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우수위생관리기준(GHP)모델’을 개발·보급할 계획이다.

그밖에 6월부터 식품제조단계부터 유통, 판매단계까지의 정보를 관리하는 ‘식품이력추적제도’를 시범운영 하게 되면 제품 이력정보를 바코드나 전자칩 형태로 제공해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회수대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식약청 관계자는 “소비자가 이물질이 들어간 식품이나 부패·변질 식품을 발견할 경우 24시간 내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식약청 홈페이지에 ‘소비자신고센터’도 구축했다”며 “위해발생 우려가 있는 건은 긴급 조사해 즉시 언론에 공표하고 유통·판매 업자 등에게 휴대폰 메시지로 전파해 판매 중지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HACCP 적용업소를 확대한다는 정부 방침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식품위생법의 개정을 통해 사업단 운영 및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인력 및 예산 확보를 토대로 한 사업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HACCP지원 사업단은 오는 2011년까지 60여명의 인력과 70억원의 사업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HACCP 제도가 제대로 정립ㆍ운영 될 때 궁극적인 국민건강 증진과 식품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 HACCP 제도란 무엇인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사전 예방적이고 자주적인 식품안전관리체계’로 통하는 HACCP(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미국 NASA(미항공우주국)의 아폴로 우주선 비행사들에게 안전한 식량을 제공하기 위해 1960년대 최초로 고안돼 ‘식품위해 발생 가능성 0%’를 목표로 개발되기 시작한 HACCP는 그 후 많은 연구를 거쳐 1990년대부터 세계 각국에서 가장 과학적인 식품위생관리기법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국제적인 위생기준 확보 대책의 일환으로 HACCP 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 결과 1993년 7월 제20차 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 위생분과위원회 회의에서 HACCP 방식을 식품위생의 일반원칙을 채택해 각국에 대해 HACCP 개념을 근거로 한 위생규격기준을 권고하면서 미국 일본 캐나다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이 제도를 도입,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5년 12월 식품위생법을 개정해 HACCP 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으며 1996년 12월 관리기준을 고시하면서 실질적인 도입이 이뤄졌다. 그러나 정작 이 제도를 실천해야할 산업계와 소비자의 이해 및 인식 부족으로 사업이 큰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