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공개 불량식품 '빙산의 일각'… 해당기업은 개선보다 책임회피에 급급생쥐깡·칼날 참치·곰팡이 밥·개미 사이다·플라스틱 라면…불감증 소비자 한꺼번에 민원 제기… 식약청 문의 평소의 두배

‘생쥐 머리 새우깡’ ‘칼날 참치’에 이어 옥수수 가루와 즉석밥에서 곰팡이가 발견되는 등 먹을거리에서 잇따라 이물질이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신과 불안이 점증하고 있다. 문제의 새우깡 보도가 나온 이후 식약청으로 문의한 사례만 평소의 두 배 이상인 30여건.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평소 소비자의 식품 불감증이 한꺼번에 폭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업의 무성의한 태도와 복잡한 사후처리로 식품에 문제가 있어도 소비자가 피해를 떠안고 있다가 언론 보도를 계기로 한꺼번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언론에 공개된 불량식품은 빙산의 일각이다. 본지에 소개하는 먹을거리 안전사고만해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다. 취재에 응한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사고 이후 기업의 태도가 더 괘씸하다”고 주장했다. 피해 보상은 물론이거니와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기업과의 합의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이들에겐 곤혹이었다.

■ 탄산음료 마신 후 3일 입원

부산에 사는 송양래(49) 씨는 지난 2월 16일 목욕탕에서 캔 음료수를 마시다 이물질이 다량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미 소량을 마신 상태여서 송 씨는 구토 후 동아대 병원에 3일 동안 입원했다. 송 씨는 “캔을 따서 마시는 데 건더기가 넘어갔다. 나는 목욕탕 주인이 포도 알맹이 음료수를 잘못 준 것인지 알았다”고 말했다.

사고 후 제조사 롯데칠성음료는 남은 사이다를 수거해 갔고 검사결과 사이다가 부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료수 캔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속으로 개미가 들어갔던 것. 제조사의 유통과정에서 생긴 사고다. 롯데칠성 측은 “캔 표면이 찢겨 변질 된 것 같다. 점포로 옮기는 과정에서 충격을 받을 수도 있고 보관 중 충격이 갔을 수도 있다. 유통과정의 문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이 후 목욕탕에 남아있던 다른 제품에 관한 검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

송양래 씨가 화가 난 것은 사고 후 롯데칠성의 태도. 고객 센터로 전화한 송 씨는 맨 처음 “입원하면 병원비 드립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더 괘씸한 건 말하는 태도다. 이주일이 지나도 기업에서 조치가 없길래 입원비를 요구하자 자작극이 아닌 지 물어보고, 30만원 병원비가 많다고 트집을 잡았다. 나중에는 사이다 캔에 ‘캔 안 살펴보고 먹으라’고 문구가 쓰여 있다는데 왜 안 보았냐고도 말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위 세척을 한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목과 코에 상처가 났고 피가래가 섞여 나왔다. 3일간 출근을 하지 못했고 그의 남편 역시 장사를 하지 못했다. 송 씨는 “아직도 말을 좀 오래 하면 목이 아프고 갈라진다. 사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후유증이 있다. 위 내시경을 받고 싶다고 하니 롯데칠성 담당자는 ‘위세척 때문에 생긴 후유증이니 병원 가서 따지라’고 했다”고 말했다.

담당 의사는 송 씨에게 위 내시경과 장내시경 검사를 권했다. 위세척으로 두 달 이상 후유증을 겪고 있는데다 사이다 이물질로 장염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 입원 3일간 송 씨는 내내 설사를 했다. 하지만 위 내시경과 장내시경 검사는 롯데칠성이 이 부분의 치료비 지불을 거부해 아직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 씨는 “후유증 때문에 위내시경과 장내시경 검사를 해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인가. 병원비와 검사비, 남편과 내가 3일간 일 못한 비용만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칠성 측이 제시한 금액은 처음 3일간 치료 받은 입원비 30만원과 위로금 10만원. 송양래 씨가 요구한 보상금액은 150만원이다. 송 씨는 “보상금 문제로 한 달이 넘었다. 하도 분해서 창원과 서울지점 담당자 이름과 내용도 다 적어놨다”고 덧붙였다.

■ 라면 먹다 치아 손상

부산에 거주하는 장모(25) 씨는 지난 1월, 형과A식품의 라면을 끓여 먹던 중 이물질을 씹어 치아를 다쳤다. 충치 치료한 치아를 다시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장 씨는 내용물을 A사 본사에 보내고 치료비와 보상금을 요구했지만 A사 측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A사 는 보상을 원하면 병원진단서 등 관련 서류를 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A사 라면에 들어있던 이물질은 빨간색 플라스틱. 언뜻 봐서는 건더기 스프의 건야채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내용물을 수거해 간 A사 측에서는 “생산 공정에서 플라스틱이 들어갈 수 없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A사 품질보증부서의 실무책임자는 “제품을 뜯자마자 발견한 것이 아니라 끓여서 먹던 중에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A사 제품에 이상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며 “생상 공정에서 플라스틱은 걸러지게 돼있으며 2차로 사람이 직접 이물질을 검사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제품에 대해 A사 측은 제품 성분 검사를 따로 하지 않았다. 이유에 대해 “누가 봐도 플라스틱”이라고 대답했다. 실무책임자는 “시판 전 여러 검사를 하지만 생쥐머리 새우깡처럼 사고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실수가 100%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고 만약 들어갔다면 라면 스프에 함께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장 씨에게도 그렇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A사 측은 또한 “당시 장 씨가 치료 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보상금을 요구했다. 제시한 액수가 천 만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A사 측의 해명을 전해들은 장 씨는 펄쩍 뛰었다. 그는 “지난 두 달간 가만있다가 취재를 시작하니 연락이 왔다”고 반박했다. 장 씨는 “내가 무리한 보상금을 요구한 게 아니다. 취재가 시작되고 보도 전 A사 측이 합의를 보려고 했다. 얼마를 원하냐고 물어서 화가 나서 ‘그럼 천 만원 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 걸 꼬리 잡은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장 씨는 이어 “1월에는 치료비 얘기조차 없었다. 먼저 괜찮냐고 물어봐야 하는 데 ‘진단서 보내라’고 말했다. 민사소송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새우깡 이어 다른 스낵에도 이물질

송양래 씨와 장 모 씨 사고의 경우 신체 손상으로 기업과 합의과정에서 갈등을 겪은 케이스. 그러나 기업이 아예 진상조사를 회피하는 사례도 있다.

여수에 사는 김인철 씨는 지난 1월, 휴일을 맞아 아이들과 간식을 먹고 있었다. 11살, 7살된 남매가 사온 과자는 농심의 ‘닭다리’ 스낵. 콩알 같은 검은 이물질을 발견한 김 씨는 서울 고객센터로 즉시 전화를 했지만 휴일이라 접수가 되지 않았다. 다급히 광주 지점으로 연락을 한 김 씨는 다시 연락을 준다는 담당자의 말을 믿고 기다렸지만 2개월이 지난 현재도 감감 무소식이다.

부인 서은주 씨는 “며칠이 지나도 농심에서 담당자가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해서 ‘그런 식으로 하면 소비자 보호센터에 고발하겠다’고 했더니 농심 담당자가 ‘고발할 테면 고발해 보라’고 했다. 너무 괘씸해서 지금 과자를 버리지 않고 2개월째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철 씨는 “최근 생쥐머리 새우깡 보도를 보고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 씨가 구입한 농심의 ‘닭다리’ 스낵은 경기도 안양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

이에 농심 측은 “방문은 하지 않고 고객센터에서 전화만 했다. 전화 한 날짜 기록은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농심 관계자는 “닭다리 과자를 튀길 때 빵가루를 묻히는 데 빵가루가 뭉쳐져 떨어지면 검은 색의 탄화물이 생길 수 있다”며 “샘플을 소비자가 보관 중이라 성분을 분석하지 못했다. 앞으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 식품관련 민원, '일 년에 2만 건'

불량만두 파동(2004년), 기생충알 김치(2005년), 독극물 콜라(2006년),사카자키균 분유(2007년), 농약성분 녹차(2007년) 등 수년 간 사회문제가 된 대표적인 먹을거리 안전사고다. 기업의 식품 안전사고는 일 년에 수만 건에 이른다. 녹색소비자연대와 YMCA, 한국소비자연맹 등 9개의 소비자 시민단체로 구성된 ‘소비자단체협의회’가 작년에 접수 받은 소비자 민원은 총 42만 5,241건. 이중 73%인 31만 건은 상품 정보를 문의하는 선에서 끝났다. 환불과 피해보상 요구 신청은 21%인 8만9,000건이었다.

이중 건강식품을 포함한 식품관련 문의와 민원 접수는 2만2,768건. 식품관련 문의는 식품의 판매방법과 식품자체 문제, 사후처리 등에 관한 고발로 나뉜다. 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식품 피해보상 문의의 경우 건강식품 강매관련 접수가 가장 많다. 식품안전사고와 관련된 민원은 아직 따로 통계를 낸 것이 없다”고 밝혔다.

소비자보호센터로 고발을 해도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민간기구인 소비자 시민단체는 기업과 피해자 사이 중재자 역할이 전부다. 관계자는 “소비자보호단체는 민원 해결기관은 아니다. 소비자 피해를 대행처리하기보다는 중재를 하는 경우가 있고, 문의 시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 식품 문제, 국번 없이 1339

식품 안전문제를 처리하는 곳은 크게 3곳으로 나뉜다. 정부가 운영하는 특수공익법인인 한국소비자보호원과 민간기구인 소비자단체협의회, 그리고 이들 식품의 문제점을 최종적으로 분석하는 식품의약품안정청이 있다.

9개의 민간 소비자 시민단체로 구성된 소비자단체협의회(774-4050)는 식료품을 비롯해 상품의 문제점을 접수, 소비자와 기업의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먼저 식품 문제가 접수되면 소비자와 기업의 합의를 중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보상금을 합의하는 선에서 끝나지만, 이 단계에서 합의가 안되면 소비자자율분쟁조정위원회에서 분쟁조정과정을 통해 다시 한번 중재를 한다. 그래도 기업과 소비자가 합의를 하지 못하면 민사소송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

소비자 시민단체 중 하나인 전국주부교실중앙회 소비자민원접수 담당자는 “식품고발은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급증한 ‘식파라치’ 때문에 기업이 되려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안전 위생상 긴급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민간기구를 이용하기 보다는 식약청에 접수를 권한다”고 밝혔다. 식품을 비롯한 상품 결함의 경우 신체적 손상 등 특별한 사유가 없을 시 동일 상품 교환을 원칙으로 한다. 식품 섭취 후 상해를 입은 경우 피해법 상 치료비를 보상하는 것이 전부다.

식약청 안전 검사를 원할 경우 국번없이 1339로 전화하면 해당지역 식약청으로 연결된다.

■ 민간기구 연락처

녹색소비자연대 : 3273-7117

대한 YWCA연합회 : 774-9702

대한주부클럽연합회 : 779-1593

전국주부교실중앙회 : 2266-5870

한국소비자교육원 : 579-0603

한국 YMCA전국연맹 : 754-7891

한국소비자연맹 : 795-1042

한국소비생활연구원 : 325-3300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 739-5441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