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범죄자 중 15%가 '사이코패스' 조사 결과도 나와인격장애 교묘히 숨기고 직장서 고속 승진하는 경우도 있어정신병 아니라 치료 어려워… '유전자 원인'이 우세한 주장

안양초등학생 살해범 정모 씨가 현장검증을 하고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에 의한 흉악범죄가 나와 내 가족을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에 떠는 이들이 많다.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부녀자 13명을 살해한 정남규, 33명의 사상자를 낸 조승희,

안양초등학생 살해범 등 최근 몇 년 동안 사이코패스로 추정되는 흉악범들의 엽기적이고 잔인한 범죄가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판장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아무 이유도 없이 잔인하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범행 후에도 죄를 뉘우치는 법이 없다.

국내 중범죄자 가운데 약 15%가 사이코패스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외국의 호러 영화에서나 봤던 끔찍한 사건들이 실제 우리 주변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는 끔찍한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은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 겉보기엔 멀쩡한 사이코패스의 흉악범죄

사이코패스는 한마디로 정상적인 감정과 행동에서 벗어난 이상 인격자다.

사이코패스 진단기준(PCL-R)을 개발한 범죄심리학의 대가 로버트 헤어 교수(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 따르면, 이들은 사랑할 능력이 없고,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죄책감이 부족하다. 이들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돕는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다른 목표를 위한 일시적인 속임수에 불과하다.

또, 좌절을 인내하는 힘이 매우 약하며, 사회적 규범과 규칙, 의무를 무시하는 태도가 매우 심하고 지속적이고, 공격성을 참는 수준이 낮다는 특징을 보인다. 말 주변이 좋은 이들이 많으며, 남을 속이는데 능숙하다.

사이코패스라고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범죄심리학자나 범죄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가 흉악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재범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폭력 사범의 50%가 사이코패스이며, 이들의 재범율은 80%에 이른다. 헤어 교수 등이 미국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은 일반적인 다른 범죄자들보다 더 폭력적이고, 냉혹하다. 미국 연쇄살인범이나 아동 성폭행자, 연쇄강간범 등 강력범죄자의 80~90%는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시(Psychopathy·사이코패스들이 보이는 이상 성격)'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자질적 문제이지 정신병은 아니다. 이들은 외관상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일 뿐 아니라, 불안이나 망상, 환각 등의 정신장애 징후 없이 이성적이며, 대체로 지능이 좋다.

실제 범죄행동 분석가들의 말에 따르면, 안양초등학생 피의자를 비롯해 흉악범 대부분은 이웃 주민들이 문제인 임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외관 상으로는 얌전하고 멀쩡하게 행동했다.

범죄심리학자인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정신병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치료 되기가 어렵고, 해결할 수 있는 제도 역시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사이코패스로 의심되는 강력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재판 도중 사이코패스 진단을 하는 곳은 현재 대전고등법원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저 실제 사이코패스 진단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수사관계자는 실토했다.

범죄심리학자들이 재소자를 면담해 PCL-R을 실시하는 게 고작이다.

이번 안양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의 수사나 재판과정에서도 피의자의 사이코패스 여부를 가리기 위한 정식 진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이코패스로 진단된 범죄자의 경우 공주의 치료감호소에 구금시켜 체계적인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생활 속에 숨어있는 사이코패스

영화‘양들의 침묵’의 한장면.
영화'양들의 침묵'의 한장면.

최근 잇따른 흉악범죄와 ‘양들의 침묵’ 같은 범죄 스릴러 영화의 영향으로 일반인들은 사이코패스 하면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흉악범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이코패시는 가정이나 직장, 대인관계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산업심리학자 폴 바비악 교수와 헤어 교수가 연구사례를 토대로 쓴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에는 나오는 사례들이 이를 입증한다.

책에는 사이코패스적인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직장에서 교묘한 방식으로 주변 사람에게 엄청난 경제적, 심리적으로 피해를 주는 다수의 사례가 등장한다.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이들 사이코패스는 언뜻 냉정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훌륭한 리더로 보이기 쉽다.

따라서 직장인 사이코패스는 동료나 선배를 제치고 거침없이 승승장구하는 엘리트 사원이거나 촉망 받는 임원 후보인 경우가 많다. 산업심리학자인 보드와 프리츠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영국 최고경영자들의 인격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사이코패스의 특성과 일치’했으며 ‘임원 승진 대상자 중 3.5퍼센트가 사이코패스로 드러났다’고 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를 규정하는 특성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규준이나 법을 위반하는 행동과 연결되기 때문에 사기나 횡령, 주가조작과 같은 경제범죄나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기적이며,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만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는 조직원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죄의식이 없기 때문에 조직원들에게 커다란 심리적 상처를 안겨주기도 한다.

상습적으로 아내나 부모를 구타하는 남자의 20~25%가 사이코패스라는 최근 연구자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이들이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해도 처벌을 내리기가 힘들다.

그럴듯한 거짓말과 교묘한 수법으로 포장해 범죄를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유전적 요인은 치료가능성 높아

극단적인 흉악범죄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야기시킬 잠재성을 가진 사이코패스. 무엇이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걸까? 아직까지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원인은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유전적으로 타고난다는 주장과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주장이 맞서 왔으나, 최근 들어 학자들 사이에서 유전자적 요인이 더 크다는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일부 연구에서 사이코패스의 뇌를 관찰한 결과 일부에서 인지적 결함과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의 기능장애가 발견된 바 있다.

또, 최신 연구에서 태아기나 유아기에 부모의 방치나 학대 등으로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신경계 기능이 손상을 입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면 사이코패스적인 유전 소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자라서 모두 사이코패스가 될까?

그렇지 않다. 어릴 때 개입할수록 이러한 유전적 소양은 치료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러나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범죄 통계를 보더라도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사이코패스 에 의한 범죄가 증가했다”며 “독거를 비롯한 가족의 해체, 기계화에 따른 인간관계의 단절, 고도로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소외 당한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러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범죄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환경적인 요소가 유전적 사이코패스 자질의 발현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정석훈 교수는 “강력범죄만 발생하면 우리 주위에 이러한 사이코패스가 없는지 살펴보고 피하자는 식의 여론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남에게 피해를 줄 잠재성이 크고 실제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사회에서 배척하기만 하면 그들의 증오심은 더 커지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정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들과 동화될 수 있도록 해주고, 정서적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면담치료를 하거나 신경계의 비정상적 활동을 정상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약물을 이용한 치료도 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사이코패스의 특성

이상 성격을 가졌다고 모두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사이코패스 여부는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정확한 진단기준에 의한 행동분석을 통해 가려진다.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고 있는 사이코패스 진단기준을 소개한다.

◇ 미국 정신과의사 협회가 제안한 기준

1) 체포 이유가 되는 행위를 반복하는 등 법적 행동과 관련된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못함

2)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타인을 속임

3) 충동적이고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함

4) 신체적 싸움이나 폭력 등이 반복됨으로써 나타나는 불안정성 및 공격성

5)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무시함

6) 일정한 직업행동을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지속적인 무책임성

7)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학대하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합리화하는 양심 가책의 결여

*위 사항 중 3가지 이상을 만족하면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진단된다. (단, 연령이 적어도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15세 이전에 발생한 품행장애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또, 반사회적 행동이 정신분열증이나 조증 삽화 경과 중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 범죄심리학자 로버트 헤어의 정의

- 말주변이 좋음. 피상적인 매력

- 자기가치에 대해 과장하는 경향성

- 병적인 거짓말

- 연민이나 죄책감의 부족

- 피상적인 감정

- 냉담, 무정(無情)한 경향과 공감능력의 부족

- 난잡한 성적 행동

-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목표 결여

- 빈약한 행동 조절력

- 높은 자극추구/지루해 하는 경향성

- 무책임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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