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얼리버드 신드롬' 희비 쌍곡선 특급호텔 유통식품업계 때아닌 호황 '함박웃음'

얼리버드 신드롬의 진원지는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과천 청사에서 오전 7시 30분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새벽 5시, 경기도 분당에 사는 공무원 정모(32) 씨는 이미 출근준비를 다 마친 상태다. 새벽에 일어나기도 빠듯한 그에게 아침식사는 과분하기까지 하다. 과천 청사로 향하는 지하철 역에는 벌써부터 정장차림을 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있다. 정씨는 이들 얼리버드들과 함께 지하철에 오른다.

새벽 네 다섯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오전 7시면 아침회의에 참석해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얼리버드(Early Bird)’ 현상이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얼리버드 신드롬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하루가 점차 빨라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희비의 간극도 점차 커지고 있다.

■ 울며 겨자 먹기 식 '얼리버드'생활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아침 7시 30분에 소집토록 한 바 있다. 당초 같은 시간에 열기로 했던 청와대 수석회의도 참모들의 만류로 30분 늦춰 8시에 열고있다. 그래도 매일 아침 회의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행정관들은 늦어도 6시 반까지는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일부 직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청와대 한 비서관은 얼마 전 아예 청와대 근처로 이사를 했다. 1시간씩 걸리는 출근시간, 그것도 매일 새벽 6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면 근처에 집을 마련해 놓고 그 시간에 차라리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또 다른 공무원은 “팀원으로 돼있는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비효율적인 조기출근 분위기가 부서별 과다충성경쟁으로 인해 더 크게 번지고 있다”며 “잘 보이기식 조기출근문화를 더 이상 두고 봐서는 안 된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얼리버드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는 과천 청사에서도 만만치 않다. 오전 9시까지도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던 청사 주차장은 요즘엔 오전 7시 30분이면 빽빽하게 차들이 들어서 있다.

청사측 한 관계자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7시 전후로 출근을 끝낸다”며 “전광우 금융위원원장은 그보다 먼저 오전 6시 30분이면 출근한다”고 귀띔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스스로 ‘부하 직원들에게 내 스타일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부처 내 ‘8시 이전 출근’ 분위기는 이미 굳어진 상태다. 또한 민간 출신으로 화제를 모은 전광우 금융위원원장은 ‘금융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 이전에 금융당국이 먼저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오전 9시에 시작하던 일일 상황점검 회의를 1시간 앞당기기도 했다.

여성 공무원들의 비율이 높은 과천정부청사에서는 특히 육아와 관련한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새벽부터 출근을 해야 하지만 그 시간에 아이를 맡아 줄 어린이집이나 탁아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LG CNS는 최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금융권 최고정보책임자(CIO) 40여 명을 초청해 조찬 강연회를 열었다.

한 여성 공무원은 “잠결에 엄마 등에 업혀 나와야 하는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냐”며 “여성 공무원은 아예 그만두라는 얘기와도 같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공무원의 복무 규정을 관장하는 행정안전부 내에서는 ‘공무원 인권보호’를 위해 출퇴근 규정을 긍정적으로 개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공무원 관련 노동 단체들도 “공직자들의 조기출근과 밤늦은 퇴근은 일정부분 사회적 명분이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시간 때우기’로 흐르게 돼 결국 비효율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 얼리버드 타깃 한 업계들 '호황'

반면 아침 일찍부터 각종 회의나 행사가 진행되는 추세가 늘어남에 따라 호황을 누리는 곳도 있다. 호텔업계가 대표적이다.

기업들이나 관공서가 밀집한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지역 내 특급 호텔들이 조찬강연이나 세미나 등의 조찬모임을 하려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같은 조찬모임 붐은 서울 시내 특급 호텔들의 매출과 마케팅 전략까지 바꿔놓았다.

서울 시청 앞 프라자호텔은 올 들어 조식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나 급증했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 세종로 종합 청사에서 공무원들이 출근을 서두르고 있다.

호텔 측은 “투숙객 외에도 외국계 회사, 광고회사 등 주변 직장인들이 아침에 비즈니스 미팅을 갖는 경우가 눈에 띠게 늘었다”며 “뷔페 레스토랑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무선인터넷 시설을 갖추고 파티션을 설치해 조찬모임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도 지난 1~2월 조식 매출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1%,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는 30%가 늘어 대부분의 특급 호텔들이 두자리 안팎의 숫자로 조찬 매출이 상승했다.

이에 인터콘티넨탈호텔 관계자는 “경제계 CEO나 리더들을 중심으로 연회장에서 조찬모임이 월 평균 40건씩 열린다”면서 “각계 유명 강사를 초청하는 조찬강연에도 기업체 임원과 고위 관료들이 많이 참가한다”고 전했다.

대다수 호텔 관계자들은 급증하는 조찬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최대한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조찬 메뉴를 선보이는 게 요즘 호텔들의 트렌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얼리버드 신드롬에 쾌재를 외치기는 유통.식품업계도 마찬가지다.

유통ㆍ식품업계는 얼리버드형 신제품들을 잇따라 출시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아침대용식인 생식용 두부와 컵 수프 등의 제품들이 올 들어 판매가 급증해 이마트의 경우 아침대용식 두부의 매출이 지난해 보다 20%나 늘어났고, 편의점의 즉석 식품도 아침대용식으로 인기를 끌면서 GS25에서 판매하는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등의 매출 신장률도 2006년 8.6%에서 지난해에는 23.9%로 증가하는 등 얼리버드 신드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얼리버드 바람이 최근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기업들의 욕구와 맞아 떨어지면서 아침부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짧은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