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과밀화 해결하고 환경 개선" vs "사업성 적고 부작용 심각" 찬반 논쟁 팽팽표면에 드러난 100층이상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 12개"미국·중국·러시아등비해 과열현상 지나치다" 지적도

100층, 120층, 152층… 국내 건축물들의 ‘높이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함께 초고층 빌딩을 둘러싼 사업성, 도시 환경, 파생효과 등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100층을 훌쩍 넘기는 초고층 빌딩은 ‘도시의 과밀화’와 ‘환경파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울러 ‘초고층 빌딩의 랜드마크화를 통한 지역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지방자치 단체장들과 국내 건설업체들의 ‘실적 챙기기’ 욕구가 맞아 떨어지면서 마천루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초고층 빌딩의 긍정적 효과로는 100층 또는 200층 규모의 빌딩이 들어서면 도시의 상징성이 커지고 관광객 유치는 물론 일자리가 늘어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더불어 건축자재나 건설기술 등 연관산업의 활성화와 기술력 제고로 국제무대에서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데도 좋은 기회가 된다.

이 뿐만이 아니라 넓은 부지를 차지하는 빌딩을 짓는 것보다 빌딩의 높이를 높여 남는 부분을 녹지공간으로 활용하면 도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초고층 빌딩은 환영 받고 있다.

또한 주거와 함께 상가, 오락시설 등 복합기능을 수행하는 초고층빌딩이 많아지면 사람들의 불필요한 이동을 줄여 교통체증 완화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점 역시 초고층 빌딩의 효과로 제시되고 있다.

반면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는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초고층 건물이 지금처럼 보여주기식 경쟁수단으로 우후죽순 건설될 경우 도시 환경은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미치게 될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대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추진 중인 높이 400m,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은 표면에 드러난 것만 12개 정도. 이 외에 물밑에서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까지 합하면 그 수는 12개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관련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 지역은 여섯 곳에서 초고층 빌딩 건설을 준비 중이고, 부산과 인천에 각각 4개와 2개가 들어설 예정이다. 오는 2011년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자리를 잡는 152층, 620m규모의 ‘용산 드림타워’를 비롯해 높이가 무려 640m나 되는 국내 최고층 빌딩, ‘상암 DMC’는 2009년이면 착공에 들어간다.

그밖에 부산 중구 중앙동에 들어설 ‘부산 롯데월드’(120층, 510m), 인천 송도의 ‘인천타워’(151층, 610m)가 건립이 확정된 상태다.

이 계획들이 모두 추진될 경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초고층 빌딩을 보유한 나라가 된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두바이도 ‘버즈 두바이(160층, 818m)’를 비롯해 6개의 초고층 빌딩을 소유하고 있고, 미국은 4곳, 중국, 홍콩, 대만, 러시아 등이 각각 1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에서의 초고층 빌딩 건설 과열현상은 이미 도를 지나쳤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건축관련 학계와 업계에서는 중동권 신흥 경제 국가들과 아시아권 국가들의 마천루 경쟁 과정에서 오는 2010년까지 초고층 건축물 건설 시장은 전세계 발주액 기준으로 5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10조원 이상을 우리나라가 독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처럼 초고층 빌딩에‘집착’을 보이는 배경에는 랜드마크 구축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한정된 도시공간의 효율적인 이용, 관광자원으로의 높은 활용가치 때문이다. 여기에 기업과 지자체의 자존심 경쟁과 더불어 국내 건설업체들은 초고층 건축 기술력 확보를 통해 해외건설 수주기반을 다지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초고층 건축 포럼’의장인 한양대 신성우 교수는 이와 관련해 “20층 건물 3개 동을 지을 땅에 60층 건물을 지으면 용적률은 똑같지만 나머지 2개 동을 지을 땅이 남게 돼 이를 공원이나 도로확장 등에 이용, 도시환경 개선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업계가 초고층 건축기술에 숙달하게 돼 외국의 건설사업 입찰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내 초고층 프로젝트는 ‘공급 과잉’이라는 지적이 일고있다.

잠재 수요가 턱없이 부족한데 오피스와 상가시설은 지나치게 많이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추진되는 초고층 빌딩들이 임차인을 채우지 못하면 막대하게 투입된 건설 비용을 회수할 수 없을 뿐더러 금융비용 역시 감당하지 못해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100층 이상 되는 빌딩은 건축비만 1조 5,000억원에서 2조원 가량이 든다. 40층짜리 빌딩보다 2배정도 많은 비용이 필요한 셈이다.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전문가들은 초고층 빌딩의 임차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에서 10년 가량이 소요된다고 이야기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02층,381m)’은 한 때 심각한 공실(空室) 문제를 겪으며 ‘엠프티(empty)빌딩’으로 불리기도 했고, 대만의 ‘타이베이 101(101층,509m)’과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88층,452m)’도 공실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4년 완공된 ‘타이베이 101’의 경우 공실률이 아직도 30% 정도로 최소 2015년을 돼야 100% 임차인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종합부동산 서비스업체인 ㈜콜드웰뱅커코리아의 이철현 상무는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의 위험과 관련해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이 모두 실행에 옮겨진다면 2013년까지 63빌딩 23개를 한꺼번에 짓는 거나 다름없다”며 “정부지원이나 투자 환경이 열악한 지금 상황에서 초고층 빌딩의 막연한 효과만 믿고 자체적으로 이를 모두 소화하려는 건 무리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시카고나 뉴욕 같은 나라는 비즈니스 규모와 도시의 국제적 입지만으로도 충분히 초고층 빌딩을 통한 수요를 창출해낼 수 있고, 국가 차원에서 유연한 시스템을 갖춘 두바이도 외국기업에 맞춰 주식개장 시간을 변경하거나 아랍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등 문제를 최소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와는 사정이 다르다”며 “해외의 선진사례를 활용, 보다 계획적으로 꾸준한 환경정비를 통해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그나마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전세계 기업들과 관광객을 끌어들여 투입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사업자와 관련한 규제 철폐’ ‘기업 환경개선’ ‘국가 차원의 홍보 마케팅’ ‘획기적인 관광 상품 개발’ 등에 힘써 외국기업과 투자자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이세현 박사는 “초고층 건물의 경쟁적 추진은 단순히 도시경쟁력 확보와 건설기술력 제고라는 시장논리로만 볼 게 아니라 사전에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 도시와 국가 장래 전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충분히 검증하고 보완대책을 마련한 뒤 차분하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