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숨어사는 커플 속속 밝혀져… 호주제 폐지·성 교체 허용 따라 논란사회 분위기는 아직 터부시 하지만 포털 카페까지 생겨… 자살 사건도 발생

지난 3월 14일 유럽 언론들은 독일의 ‘남매 결혼이야기’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 이야기는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에서 한 남매가 서로 결혼해 아이까지 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럽 전역에 근친혼 논쟁을 불붙였다. 독일 연방 재판소가 이들 남매 부부를 기소하자 찬반양론 대립은 유럽을 넘어 세계로 확산됐다. 결국 이 사건은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가 최근 근친혼 금지는 합헌이라고 결정하는 것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쟁의 열기는 여전하다. 유럽 곳곳에선 남매부부를 옹호하는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1월부터 호주제를 폐지하고 호적을 없앴다. 대신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게 됐다. 일부에선 호주제폐지로 근친혼이 늘어날 것이며 남매부부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두고 폐지 반대론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근친혼이다. 호적이 사라지고 성(姓)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근친혼이 만연해 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근친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호주제 폐지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양쪽 모두 근친혼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장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폐지해도 근친혼의 우려는 없다”와 “폐지하면 근친혼이 만연할 것”이라는 양론의 대결일 뿐이기 때문이다. “폐지하고 근친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없다.

이 같은 국내 정서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엔 근친혼자가 거의 없을 것 같다. ‘몰래한 사랑‘은 있겠지만 독일의 남매부부처럼 결혼해서 사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다르다. 생각보다 근친혼자들은 적지 않다. 이들 대부분 해외로 나가 살거나 결혼사실을 숨기고 산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서 거주하는 김모(31) 씨는 고모의 딸인 사촌 누나와 4년 동안 ‘금지된 사랑’을 했다. 그에 따르면 두 사람의 연정은 그가 군 복무 시절 사촌 누나가 면회 온 뒤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김씨는 전화통화에서 “사촌 누나와 결혼하기까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과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한국에서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어 결국 지인이 있는 이곳(아르헨티나)으로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 지금은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또 “한국에서 호주제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친인척간의 결혼이 허용되는 것은 아닌가 기대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에겐 현재 딸이 하나 있다. 그는 딸의 사진을 보내면 부모님의 마음이 누그러질 것 같아 부모님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러나 김씨가 기대했던 정반대의 반응이 돌아왔다. 부모님은 김씨가 조상 볼 면목 없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며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 것. 이일로 인해 김씨는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아야 했다.

또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에 근친혼 관련 카페를 만든 이모(33) 씨도 근친혼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당사자 중 한 사람이다. 인터뷰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그를 설득해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이씨는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근친혼자들끼리 서로 위안하는 커뮤니티가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다”며 “나는 근친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시켜 보고 싶어서 공개적으로 카페를 만들었다”고 입을 땠다.

그에 따르면 근친혼까지는 아니더라도 근친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다만 그들은 대부분 그런 사정을 혼자서 고민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카페 등을 살펴보면 근친문제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10대 청소년과 20대 젊은이들이 많은 편이다”며 “사회가 이들의 고민을 수용해야 하는데 무조건 금기로 규정해 놓고 있어 가끔 자살이나 가출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그 예로 지난 3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마포대교 부근 수상택시 정류장 앞에서 발생한 여고생 김모(19) 양의 투신 사건을 언급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의 조사 결과 김양은 이종사촌 오빠를 짝사랑하다가 괴로운 마음에 그 같은 사고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당시 김양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사촌오빠를 좋아하게 돼서 미안해요. 엄마 아빠 미안해요'라는 내용의 유서를 갖고 있었다.

자신보다 4살 어린 외사촌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고 전한 이씨는 “가족 중 일부는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지만 아직 부모님은 모르고 계신다”며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 보듯 뻔해서 아직 말하지 않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또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면 자신이 누나나 여동생과 묘한 감정에 빠져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며 “근친혼은 제도나 법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정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본인 외에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외에도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캐나다 영주권자 김모(36) 씨는 이모의 딸과 살림을 차렸다. 그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지금의 아내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김씨는 “외국에서는 자신의 가족들이 움츠리고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며 “한국에 있을 때는 정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서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보려 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한국에 있을 땐 너무 힘들었다. 같이 자살할까도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다 외국에서 제 2의 삶을 살아보자고 뜻을 모으고 미국을 거쳐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선 4촌 뿐 아니라 8촌간의 결혼도 근친혼으로 보고 있다. 당사자간 직계혈족, 8촌 이내의 방계혈족 및 그 배우자인 친족관계가 있거나 있었던 때 혼인을 무효로 하고 있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근친혼에 대한 규정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격했다. 친인척이 아니더라도 성씨의 본관이 같으면 즉, 동성동본이면 근친혼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동성동본 금혼조항은 99년 1월에 법률적 효력을 상실했다. 따라서 지금은 근친혼이 아닌 동성동본 간의 결혼이 가능하다.

이밖에 호주제폐지 이후 근친혼에 대한 미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근친혼’이란 단어는 포털사이트 카페 검색의 금지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근친혼이란 단어로 검색이 가능하다.


구성모 프리랜서 heyman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