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서 열리는 베이징 대회 봉송행사, 반중국 시위대에 연일 봉변독일·브라질·캐나다·체코 등은 일찌감치 개막식 불참 통보모스크바·LA이후 정치에 휩쓸린 최악의 올림픽 전락 우려도

티베트 사태가 결국 8월 개막하는 베이징(北京) 올림픽으로까지 불통이 옮겨 붙었다. 세계 각국 도시에서 열리고 있는 성화 봉송이 티베트 사태에 항의하는 반 중국 시위대들에 의해 연일 봉변을 당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프랑스 파리 시내를 달리던 성화가 시위대에 막혀 최소 3차례 불이 꺼지는 사태로까지 발전해 성화 봉송이 예정돼 있는 각국에 ‘성화를 사수하라’는 비상이 걸렸다. 이 와중에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보이콧하겠다는 정상들이 잇따라 베이징 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자칫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서방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거부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공산권이 불참해 반쪽 대회로 치러진 이후 정치에 오염된 최악의 올림픽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화의 여정’이란 취지로 130일 동안 5개 대륙 23개 도시에서 총 13만 7,000km를 달리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는 가는 곳마다 파행으로 치달았다. 6일 영국 런던의 봉송길에서 시위대에 막혀 곤욕을 치르는 심상치 않은 징후가 나타나더니 다음날 파리 봉송에서는 시위대를 피해 버스로 운송하느라 성화의 불을 3번 이상 꺼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다음 성화 봉송지이자 북미대륙에서 유일하게 봉송이 행해진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샌프란시스코는 시민의 3분의 1이 아시아계인데다 중국이 사교로 규정하고 있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를 포함해 티베트 인권단체 등 반 중국인사와 단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미국의 진보도시 1번지.

이런 ‘명성’에 걸맞게 중국의 반 인권행위를 규탄하고 티베트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성화 봉송에 맞춰 대규모로 펼쳐졌다. 시 당국은 시위 양상이 심상치 않자 교통통제만을 하기로 한 당초 계획을 바꿔 경찰병력을 봉송로에 대거 배치해 봉송주자와 일반인들을 차단했다.

또 봉송로를 12.8km에서 9.6km로 줄이고, 봉송 개ㆍ폐회식 행사도 각각 20분 미만으로 줄였다. “봉송 코스가 당일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연막전술까지 폈다. 시민들과 함께 해야 할 축제의 자리가 마치 비밀작전을 연상시키듯 일반인들과의 호흡을 최대한 차단하는 장막속의 잔치로 전락한 것이다. 런던에서는 성화봉송을 호위하는 건장한 체격의 중국 남성요원들이 입방아에 올랐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운동복 차림의 이들은 시위대로부터 성화를 온몸으로 방어하는 육탄보호조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하는 등 과잉진압 시비를 불러 일으켜 또 다른 반중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영화 ‘멘 인 블랙’에 빗대 ‘멘 인 블루’라고 영국 언론에 의해 명명된 이들은 특수훈련을 받은 무장경찰 70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시위대 뿐 아니라 성화 봉송 주자에까지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 불만을 샀다. 이 때문에 “관광비자로 입국한 중국 호위대원들에게 누가 시위를 진압할 수 있는 행정권을 주었는가”라는 야당의 정치공세로까지 확산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티베트 시위 진압에 항의해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한다는 정상들의 선언도 잇따랐다.

중국의 티베트 독립시위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 두명이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성화봉송에 때 맞춰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기어오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2010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 애투마스 헨드릭 일베스 에스토니아 대통령 등이 일찌감치 개막식 불참을 통보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중국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대화 하지 않을 경우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중국 정부를 압박했다.

차기 대회인 2012년 하계올림픽을 치르는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참석의사를 밝힌 뒤 역풍이 불자 “5월 영국을 방문하는 달라이 라마를 면담하겠다”는 유화책을 내놓아야 했다.

여기에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참석 의사를 고수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일부 올림픽 경기는 관람하게 될 것”이라는 백악관 대변인의 발언이 나와 부시 대통령의 개막식 불참 가능성이 처음 제기됐다. 사실 정상들의 개막식 참석 여부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이다.

엄청난 중국 시장을 감안한 경제적 국익을 고려하면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기 어렵고, 반대로 인권이나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등을 생각하면 티베트 사태에 마냥 눈과 귀를 막을 수도 없다. 선명성을 택하느냐, 현실적 이익을 택하느냐의 문제이지만 어느 쪽도 반대편의 정치공세에 시달릴 수 밖에 없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올림픽이 정치적 문제에 휘말려 파행으로 치러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보이콧 시비에 얽히지 않은 올림픽이 오히려 드물 정도이다.

1908년 런던 올림픽은 영국이 아일랜드의 독립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아일랜드 선수들이 참가를 거부했다. 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독일에 항의해 유대인 선수들이 불참했고, 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은 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 운하 침공 때문에 이집트 이라크 레바논이 참가하지 않았다. 냉전 때는 더욱 심했다.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은 소련 선수들이 자국 땅에 머물다 경기가 있을 때에만 국경을 넘어갔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 주도로 서방 62개 국가가 대거 불참했고,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반대로 소련 주도로 동유럽 국가가 불참해 역시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88년 서울올림픽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이 거부하자 에티오피아와 쿠바가 동조했다. 유혈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68년 멕시코 올림픽은 개막을 열흘 정도 앞두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200명 이상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고, 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때는 팔레스타인 게릴라 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해 11명을 살해했다.

최근 올림픽이 보이콧 논란 없이 무난히 치러지는 것은 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올림픽이 올림픽을 이용해 인권과 평화를 호도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한 사례들이다.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