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인터넷 통한 명예훼손·협박·악성댓글·스토킹 등 일상 속으로유명인사 공격 뛰어넘어 일반인 피해사례 급증증거확보 어렵고 법 몰라 처벌자 '빙산의 일각'

얼마 전 옥션에서 국내 인터넷이용 인구 30%에 해당하는 1081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상 최대의 해킹사고가 발생했다. 유출된 정보는 보이스 피싱(전화를 통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빼내 사용하는 신종범죄)과 같은 사이버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해킹이나 인터넷사기, 불법사이트운영 등 사이버범죄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경찰청이 발표한 사이버범죄 통계<표1 참조>에 따르면, 해킹 바이러스, 인터넷사기 등 사이버범죄 수는 2003년 51,722건, 2004년 63,384건, 2005년 72,421건, 2007년 78,890건으로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옥션 사건처럼 피해의 파장이 엄청난 사이버범죄의 범람으로부터 은신처를 찾지 못해 불안에 떨고있다.

그러나 사이버범죄 하면 얼른 떠오르는 해킹이나 인터넷사기보다 일상생활에서 더 빈번히 피해를 입는 사이버범죄가 있다. 바로 인터넷과 핸드폰 등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명예훼손과 비방, 협박, 스토킹 등 부지불식간에 일상 속으로 파고든 사이버폭력이다.

지난해 말 경찰청 사이버범죄 통계를 봐도 사이버폭력 발생수는 2003년 4,991건에서 2007년 12,905건으로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인기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사가 인터넷 게시판이나 본인에 관한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로 명예훼손을 포함해 노이로제, 화병 등 피해를 입는 일이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정도로 일상화 된지 오래다.

날로 피해가 커지자 일부 유명인은 사이버폭력 가해자를 고소하고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펴고있다.

하지만 이는 유명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 사용자라면 누구나 사이버폭력에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사실을 신고하거나 법적으로 구제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현실이다.

A양은 최근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다퉜다. 그런데 그 후 친구는 A양의 핸드폰으로 몇 주간 쉴새 없이 문자와 음성메시지를 전송해 위협적인 말을 남겼다. A양은 친구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공포심에 노이로제 증세까지 나타났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B군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신의 블로그는 물론 가입한 인터넷 카페와 학교 게시판에 자신에 대한 욕설과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바람에 고역을 치렀다. B군은 이 사건으로 1년 넘게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사이버폭력은 정신적 피해는 물론 현실세계의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C씨는 사이버스토커에게 폭행을 당했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 이메일을 통해 집요하게 만나줄 것을 요구하던 스토커는 C씨가 계속 만나주지 않자 어느날 그를 찾아와 폭행을 행사한 것이다.

유명인의 골칫거리 정도로만 여기는 인터넷 명예훼손이나 비방, 협박 등은 알고 보면 우리주변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다.

김선영(앉은 이) 충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이 신기수 경장과 함께 압수한 하드디스크의 증거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는 이 같은 사이버폭력 민원이 폭주한다.

대부분 핸드폰 문자나 음성메시지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 혹은 공포심을 유발하는 말이나 음향, 글, 영상을 보내오거나 전자우편이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유포하는 등 사이버스토킹에 대한 것들이다. 그러나 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 폭주하는 사이버폭력 민원은 실제 일반인들이 당하는 사이버폭력 피해사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사이버수사 담당 경찰의 설명이다.

더구나 일반인이 경찰에 신고한 사이버폭력 사건이 검찰에 기소돼 피의자가 법적 처벌을 받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심지어 현실세계의 물리적 폭력과 마찬가지로 사이버폭력도 피해가 막심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사이버폭력을 규제하는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라고 경찰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일반인의 일상생활로 확산되고 있는 사이버폭력은 물리적 폭력 못지않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시킨다.

가령, 불특정다수인의 무제한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의 특성 상 악성 댓글을 비롯해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이나 비방은 전파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 명예훼손이나 비방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특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일반적인 명예훼손이나 비방죄보다 무거운 처벌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일반인이 법적인 구제를 받는 일은 드물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김도엽 검사는 “사이버 상 명예훼손이나 스토킹, 모욕 등의 피해는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입는다”며 “그러나 유명인과 달리 일반인들이 법적인 구제를 받는 경우가 드문 가장 큰 이유는 사이버폭력 피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명인처럼 일반인도 사이버폭력에 광범위하게 노출돼 있고 자주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것을 피해로 인식해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적인 대응을 하는 예는 드물다는 것이다.

가수 아이비의 전 남자친구 유 모씨가 한 달여 동안 아이비에게 보낸 공갈, 협박 문자메시지의 일부가 공개됐다. / 김지곤 기자(왼쪽), 가수 아이비의 전 남자친구 유 모씨가 한 달여 동안 아이비에게 보낸 공갈, 협박 문자메시지의 일부가 공개됐다. / 김지곤 기자(오른쪽)

설상가상으로 일반인이 사이버폭력을 당하면 유명인보다 피해가 더 크다는 게 김 검사의 설명이다.

유명인은 인터넷 상에서 퍼진 모욕적인 댓글이나 명예훼손피해에 대해 법적으로 구제를 받고 나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할 여지가 있지만, 일반인들은 가해자가 처벌된다 하더라도 사이버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증거확보의 어려움도 사이버폭력으로 인한 피해구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협박성의 문자메시지나 음란한 사진 등을 받았다면 문자내용을 보관하고 사진을 찍어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전화를 통한 협박 등은 통화내용을 녹음해야 한다. 이메일, 인터넷 댓글 역시 보관해 두었다가 사진을 찍어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김 검사는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휴대폰, 온라인 매체가 일시성, 휘발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증거 확보가 어려워 사이버폭력 수사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사이버폭력을 규제하고 있으나 인터넷이나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발생하고 있는 일상생활에서 광의의 사이버폭력을 규제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경찰대학교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는 “발생하고 있는 사이버폭력의 양에 비해 사이버범죄 수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날로 증가하는 사이버폭력의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사이버수사대는 국가 차원의 해킹 등 굵직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일반인들에게 주로 피해를 야기시키는 사이버폭력에는 거의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사이버 상에서 청부폭력업자를 찾아 폭력을 의뢰하는 등 정보통신기술이 활성화되면서 실제 많이 발생하고 있는 사이버 관련 폭력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할 수 있는 형법이 별도로 없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