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동안 물가 상승의 3배 이상 껑충… '연간 등록금 1,000만원 시대' 서민들 등이 휜학비 마련 위한 아르바이트생 급증… 밤낮없이 뛰어도 주머니는 빈털터리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 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가 12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등록금 동결·인하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김주성기자
정부지로 오르는 대학 등록금이 개인의 삶과 가정을 위협하고 있다. 연간 등록금 1,000만원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학생은 물론, 이들을 둔 가정이 피폐해지고 붕괴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 중이다.

2000년대 들어 등록금은 10% 전후로 상승했다. 이는 물가 상승률의 3~5배정도 되는 수치다. 지난 32년 동안 물가가 8배 오르는 동안 등록금은 무려 26배나 뛰었다. 겉잡을 수 없이 치솟는 대학등록금이 물가 상승까지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대학생 수는 약 300만 명, 대학원생은 30만 명 가량. 집안에 대학(원)생이 있는 가족 1,100만 명 정도가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소득대비 등록금 부담률은 지나치게 높아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네. 힘들고 날아가고 싶다. 딸아 미안하다.”

지난 해 서울시 강동구의 한 한복가게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등록금 문제로 고민을 해오던 어머니는 결국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랜 지병으로 직장을 가질 수 없었던 아버지 대신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오던 어머니는 미대에 학격해 입학을 앞둔 딸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동사무소에서 학자금 대출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수백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끝내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등록금 인상이 이어졌다. 과거 몇몇 대학에 적용되던 등록금 1,000만원 시대는 이제 전국 대학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대학들은 물가인상과 국고보조금 감소, 캠퍼스 설계비, 학생회관 신축비 등 갖가지 명목을 내세워 등록금 인상을 강행, 사립 대학들의 ‘묻지마 적립’이 6조원 이상 누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등록금 인상에 따른 교육환경 변화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대학 곳곳에 붙여진 등록금 인하 투쟁 벽보와 플래카드, 투쟁 참여를 외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연례행사가 됐다.

‘대학등록금 1,000만 시대’는 대학생들의 활기를 빼앗았고, 대신 ‘88만원 세대’라는 낙인을 찍어 놓았다. 학부모들은 자식들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에 카드 빚까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조차 빠듯한 지경이다. 상황이 계속 어려워지면서 어떻게든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 학비 마련위한 아르바이트생 급증. 밤낮없이 뛰어도 주머니사정 어려워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에 재학 중인 한모(25.남)씨는 지난해 처음 ‘생동성 알바’를 시작했다.

이미 남자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생동성 알바’는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의 줄임말이다. 국내 제약 회사들이 외국에서 개발한 약을 그대로 카피하거나 제조한 뒤 이것이 한국인에게도 똑같이 작용하는지 여부를 테스트하는 실험이다. 신체검사를 통해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판명된 남성들은 실험용 약을 먹고 주기적으로 피를 뽑아 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생동성 알바다. 위험도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생동성 알바는 20만원에서 50만원, 심각할 경우 1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하루의 절반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모(23.여)씨는 대전의 한 야간대학에 다니고 있다. 이 씨는 아직 대학 졸업 신분이 아니라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조차 없다.

이 씨는 “낮 동안 개인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식당에서 밤 12시까지 일을 한다”며 “한 달 100만원 남짓 벌어서 등록금에 보태고, 책값과 용돈을 하면 다시 또 제자리이기 때문에 더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야 할 지경이다”고 밝혔다.

한편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형 마트 판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지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는 정승주(26ㆍ남)씨 역시 “등록금 때문에 ‘만능 알바맨’이 됐다”며 “심부름센터, 공사현장 잡부, 호프집 서빙까지 안 해본 일이 없어 이제는 낯선 일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등록금 때문에 고생하는 또래들을 많이 알게 됐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저 서글플 따름이라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서울지역의 한 명문 사립대를 휴학 중인 정 씨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오는 가을학기에 복학할 예정이다.

참여연대가 올 초 발표한 <대학등록금 가계부담 실태보고>에 따르면 전국 대학생 1,269명 가운데 20%가량이 등록금 마련을 위해 본인 이외의 가족이 부업을 한 적이 있고, 66.5%정도가 등록금은 물론 교재비나 학원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 신용불량자 양산하는 고리대 학자금대출

3월 18일 오후 이화여대 앞에서 등록금 마련을 위해 임상실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증언대회가 열렸다. (진보정치 정택용)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학자금 대출’을 신청, 이자를 갚지 못한 학생들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한다.

취업포털 사이트 커리어가 최근 대학생 99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74.7%가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해 대학생 10명 가운데 7명가량이 학자금 대출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82.3%는 ‘빚쟁이, 신용불량자로의 전락’을 두려워 하는 ‘학자금 대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 학자금 대출 콤플렉스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 중 70% 가량이 방학 때마다 등록금 스트레스로 소화불량, 불면증 등을 겪거나 대학에 반발심을 갖고 있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 재학 중인 진승모(04학번)씨는 “사립대에 다니는 누나까지 합하면 1년 등록금이 1,400만원이다”며 “어머니와 셋이서 버는 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학자금대출을 받았는데 4년이 지난 지금은 원금만 5,000만원이 넘는다”며 갚을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매달 오는 고지서에는 이자연체 시 곧바로 신용불량자 처리가 되기 때문에 즉시 납입하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어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울먹였다.

진 씨의 경우는 그나마 양호한 편에 속한다. 2002년 고려대 사범대에 입학한 안모(26ㆍ남)씨는 등록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끝내는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안 씨는 “2년 전쯤 학내 문제로 학비 대출이 어렵게 된데다 그 전에 대출받은 학비를 곧바로 상환하라는 통지가 왔지만 이행하지 못했다”면서 “연체이자가 20%나 되기 때문에 갚아야 할 빚이 1,200만원에서 700만원 이자까지 더해져 1,900만원이 됐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학내문제로만으로도 부모님께 큰 상처를 드렸는데 설상가상으로 돈 문제까지 겹쳐 안 씨는 자식으로서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 치솟는 등록금에 가정생활 풍비박산

매년 치솟는 대학등록금은 대학생 부모들에게 직접적인 짐이 된다.

딸 둘을 키우며 서울 영등포에 살고 있는 박모(44ㆍ여)씨는 “큰 애가 학비를 생각해서 2년제 대학을 다녔는데도 1년 등록금 700만원에 차비, 식대까지 하면 부담됐던 게 사실이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큰 애는 한 달 용돈이 모자라 점심을 굶었더라”며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학부모 김모(48ㆍ남)씨는 얼마 전 딸아이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하 쪽방으로 이사했다. 김 씨는 “2년 전 수도권에 있는 집을 팔아 등록금에 보태고 방 두 칸짜리 월세에 살았는데 이제는 지하 쪽방살이를 하고 있다”며 “여기저기 빌린 돈만해도 4,000만원이 넘는데다 또 내년에 대학생이 되는 둘째 걱정만 하면 숨도 안 쉬어진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부모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등록금때문에 대부분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두 자식을 모두 대학에 보내려다 보니 아내도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다는 서울 목동의 이호철(50ㆍ남)씨는 “야근은 물론 주말도 반납한 채 일을 하고 있고, 아내 역시 밤 늦게 파김치가 다 돼서 들어오니 안타깝다”며 “얼마 전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하루종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한 달이 채 안된 새 운동화가 벌써 닳아 있는 것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또 “다른 집 부모들도 꼭 등록금때문만이 아니라 자식들 생활비와 용돈을 조금이라도 넉넉하게 주기위해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멈출 줄 모르는 대학등록금 인상 문제와 관련해 황영기 전국대학기획처장협의회장(경북대 기획처장)은 “부족한 정부지원 때문에 대학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대학예산에서 선진국은 정부지원금 비율이 70%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5%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황 회장은 정부의 미비한 고등교육예산을 문제로 지적하며 “4년제 대학 고등교육기관에 지원하는 우리 정부의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0.31%로 OECD 30개 국가 평균인 1.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면서 “대학 지원금을 초·중등 지원금과 분리해서 별도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매혈 등 생동성 알바생도 급증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에 재학 중인 한모(25.남)씨는 지난해 처음 신약을 직접 신체에 투여해 테스트하는 ‘생동성(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장 살인적인 등록금, 생활비, 주거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한 씨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2~3일만 투자하면 수십 만원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추천 글을 보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고지혈증 치료제를 테스트하는 실험에 참여했다. 신체검사를 통과해 피실험자로 선정됐을 때 한 씨는 “생동성 알바를 하려는 사람이 많아 통과한 사람은 ‘행운아’일 정도” 였다고 고백했다.

2박 3일의 일정동안 실험에 참여한 한 씨는 “공복 상태에서 약을 먹고 매 시간 채혈을 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며 “생동성 실험이 식약청의 승인을 받아 안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고지혈증 치료제 테스트에 참가해 번 돈은 한 회당 28만원씩, 모두 84만원. 한 씨는 “단기간에 비교적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동성 알바가 더없이 매력적”이라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이 생동성 알바에 많이 몰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씨에 따르면 자신처럼 직접 몸을 사용해서라도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려는 대학생들이 급증하면서 생동성 알바 관련 인터넷 사이트는 하루에도 수십 건 이상의 신청서가 접수되고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대학생들이 몰리면서 서버가 마비되는 일도 발생한다고 했다.

■ 외국의 대학등록금 제도

대다수 선진국들은 대학 교육을 인재를 길러내는 ‘투자’ 개념으로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인적 자원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학생들은 등록금과 관련해 큰 부담 없이 공부를 마칠 수 있고, 이를 위한 제도 마련도 잘 돼 있다.

독일은 일부 사립대학을 제외한 90%의 대학들이 주(州)정부의 국가 재정보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등록금 걱정 없이 매 학기 학생회비만 지불하고서도 대학을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주정부의 재정 악화와 비대해지는 대학들의 규모를 문제 삼아 일부 대학들을 중심으로 등록금 도입제도가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매 학기 등록금이 500유로(약 60만원)정도에 그쳐, 우리나라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공부를 할 수가 있다.

프랑스는 대학등록금이 연간 100~230유로(약 15만~33만원)로 우리나라의 5~10% 수준이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등록금 때문에 학업에 지장을 받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밖에 핀란드와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자국 및 외국학생 모두에게 학비를 면제해 준다.

한편 영국은 학생에 따라 학비를 차등 적용하고 있는데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등록금이 비싼 편에 속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연간 3,000파운드(약 565만원)를 넘지 않도록 제도화했다. 또한 무이자로 등록금을 대출해 주고 졸업 후 소득에 따라 학비 일부를 세금으로 돌려 받는 등록금 후불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른바 ‘소득 연계형 등록금 후불제’가 시행 중이다.

이 같은 등록금 후불제는 영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의 대학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무이자로 대학 학자금을 융자 받아 정부가 등록금을 대신 내주고, 학생이 졸업한 뒤 취업해서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는 많이, 적은 사람에게는 적게 상환 받는다. 취업을 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등록금 상환부담을 지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서는 국립대 법인화로 등록금이 치솟자 2003년 국립대학에 기준액을 제시하고 일정 범위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를 하고 있다. 학과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본 국립대의 연간 등록금은 500만원 선이다.

미국은 국가가 대학 등록금에 대해 직접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등록금이 비싼 명문 사립대의 경우 연간 학비 및 생활비가 4,500만원 선이다. 이에 미국 중산층 가정조차 학비를 부담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아이비리그 대학들부터 등록금을 자발적으로 인하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학은 올해부터 연소득 18만 달러(1억6,500만원) 미만인 가구 학생에 대해서는 등록금을 연간 가계수입의 10% 이하로 내렸다. 예일대는 올해부터 연소득 12만 달러 (약 1억 1,300만원) 이하 가정 출신 학생에겐 등록금을 50% 감면해 주고, 연소득 6만 달러 이하일 경우에는 면제하기로 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