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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도 '구글신화' 만들수있을까
대학 보유 기술 사업화하는 지주회사 시대 본격 개막
서강대 국내 최초 실리콘밸리형 산학 클러스터 시도
체계적 사업지원 시스템 갖춰지면 대학벤처 열기 다시 불 수도



서강대학교 알바트로스 상징탑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은 1998년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 다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공동 설립한 회사다. 출범 초기만 해도 구글이 오늘과 같은 대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창업 이듬해부터 출자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검색 서비스를 선보인 구글은 무서운 속도로 네티즌을 빨아들여 나갔다. 그 기세를 바탕으로 2004년에는 나스닥 상장을 통해 천문학적인 대박 신화를 터뜨렸고, 지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도약했다.

주목할 것은 ‘구글신화’를 탄생시킨 미국사회의 저변이다. 미국에선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대학 구성원을 성공적인 기업가로 키워내는 특유의 벤처육성 문화가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다. 미국 벤처의 산실 실리콘밸리도 스탠퍼드, 버클리 등 인근 명문대학과 산학연계 시스템을 통해 급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 벤처 붐이 폭풍처럼 불면서 대학벤처 창업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대학벤처가 나왔음에도 그럴 듯한 기업으로 성장한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기술과 의욕만 믿고 섣불리 나섰다가 현실의 높은 벽에 좌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벤처가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최근 각 대학들이 직접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해 우수기술을 사업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지주회사는 간단히 말해 대학이 보유한 유망기술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지주회사다. 그 아래에는 다양한 사업 목적을 가진 자회사들이 포진한다. 지난 2월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따른 법률’(산촉법)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공포되면서 대학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이 가능해졌다.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서강대다. 서강대는 지난 3월초 기술지주회사, 벤처금융회사(창업투자회사), 연구중심 대학원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서강미래기술클러스터’(SIAT)를 발족시켰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형 산학 클러스터로 국내 대학 중에서는 최초의 시도다.

특히 서강대와 동문 기업인들이 공동 투자한 자본금을 바탕으로 유망기술 사업화를 위한 재원을 조달하는 벤처금융회사가 눈길을 끈다. SIAT 공동원장을 맡고 있는 유기풍 공대학장은 “대학이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돈이 없으면 사업화를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창투사를 함께 설립한 SIAT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독특한 산학협력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한 교수나 대학원생도 사업화에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연구실에 오랜 시간 틀어박혀 있는 탓에 시장의 거친 논리를 헤쳐나갈 만큼 세상 물정에 밝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서강대는 시장에서 검증된 전문가를 SIAT 공동원장으로 영입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의 동문이자 벤처 1세대인 장흥순 전 벤처기업협회장이 주인공이다.

이와 관련, 유기풍 학장은 “장 원장을 모셔오기 위해 ‘삼고초려’했다. 그는 교수사회에 부족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토대로 자본, 금융, 업계와 SIAT을 엮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전 협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모교를 돕기로 했다고 한다.

손병두 서강대학교 총장은"SIAT가 글로벌 기술 기업을 키워내는 장이 될 것" 이라고 말한다.


SIAT의 연구중심 대학원은 ▲메디컬솔루션 ▲에너지/환경 ▲반도체설계 ▲정보통신 및 소프트웨어 융합 ▲디자인공학 ▲기술경영 등 7개 중점 연구과정으로 운영된다. 각 연구과정에는 다양한 전공 교수들이 공동 참여해 융합(Convergence)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융합기술연구소도 설치된다.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은 기술지주회사의 사업성 심사를 거쳐 외부 기업 또는 자회사에서 사업화된다.

현재 SIAT에서는 서강대가 자체 보유한 350여 가지 기술 중에 외부 자문기업의 검토를 받아 3가지 핵심 사업화 기술을 선정한 상태다. 그 중 ‘지능형 비전 안테나’는 이동통신 기지국에 고성능 카메라를 설치해 교통, 환경, 안전 등 지역정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이는 전 세계 지역정보를 위성영상으로 제공하는 ‘구글어스’(Google Earth)와 비교된다. 하지만 SIAT에서는 구글어스보다 훨씬 진보된 기술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이미 물밑에서는 서울시, 경기도, 국방부 등과 시범사업을 타진 중이다. “잘하면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결실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게 내부 분위기다.

희망대로 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구글신화’가 창조되는 셈이다. SIAT은 이밖에 피를 뽑지 않고 혈당을 재는 ‘비채혈 혈당측정기’와 저속 및 정지상태에서의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기술 사업화도 추진하고 있다. 둘 다 엄청난 시장성을 가진 기술이다.

유기풍 학장은 “성공에 대한 부담감도 크지만 한국의 2세대 벤처신화를 반드시 대학에서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로 ‘목숨 걸고’ 뛰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대학재정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10년 내 등록금을 대폭 낮출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구글신화의 주역인 에릭 슈미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검토 또는 추진 중인 다른 대학들도 있다. 서울대가 대표적이다. 서울대는 지난 4월초 ‘기술지주회사설립추진단’을 발족시켜 기존 산학협력단과 유기적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벤처들을 조사하고 평가하는 단계이며, 현황 파악이 끝나는 대로 기술지주회사 설립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 지적재산관리본부가 보유한 특허는 무려 2,700여 건에 달한다. 사업화를 할 수 있는 ‘기술 곳간’이 두둑한 셈이다. 서울대는 기본적으로 교수진이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동문 또는 외부인의 유망기술도 사업화 대상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서용 실장은 “과거 교수나 학생의 창업에 대해 사실 무관심했었는데 이제 학교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다”며 “기술지주회사는 단지 돈 버는 일이 아니라 대학의 지식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측면도 지닌다”고 밝혔다. 그는 기술지주회사의 역할을 ‘대리기업가’(surrogate entrepreneurship) 개념으로 봤다. 즉 경영자적 마인드가 부족한 교수, 학생들을 위해 사업과 경영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는 아직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확정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기술을 검토하고 있으며, 또한 바람직한 회사 운영모델도 고심하고 있다. 오는 6월 기술지주회사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다소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게 학교측 설명이다. 국내 대표 대학으로서 다른 대학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만큼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두 대학을 선봉대로 삼아 국내 대학의 벤처 열기도 다시 뜨거워질 공산이 커졌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대학벤처 신화’가 나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입력시간 : 2008/04/30 10:49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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