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재앙 속에서도 국민투표 강행독소조항 가득한 신헌법 통과로 영구집권 획책

미얀마 중남부 지역에 지난 3일 초대형 사이클론이 강타해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았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이라와디 삼각주 지역에서는 건물의 95% 가량이 붕괴하는 등 이 지역 마을이 거의 초토화됐다.

미얀마 정부의 발표로는 사망자 3만 2,000여명, 실종자는 2만 8,000여명으로 집계됐으나 실제로는 10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1999년 인도를 강타해 1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10년만에 찾아온 최대 규모의 사이클론 피해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피해지역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사망자는 최대 10만 2,000명, 실종자는 22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끔찍한 인명피해보다 더 큰 문제는 재해 발생 후 미얀마 군사정권이 보인 어처구니없는 대응이다. 유엔 등 국제기구를 비롯한 인권단체, 각국 정부들은 사건 발생 후 앞다퉈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늘과 바다, 육로를 통해 구호물품이 답지했고, 구조요원들도 속속 미얀마에 도착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쏟아지는 구호품은 현장에 전달되지 못한 채 세관에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고, 구호요원들도 공항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미얀마 군사정권이 반체제 사상이 유포돼 정권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외부에서의 도움의 손길을 거부한 때문이다. 9일과 10일 연 이틀 유엔 구호품을 실은 수송기 4대가 양곤 국제공항에서 압류되는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구호물품을 싣고 항공편으로 입국한 카타르의 구호요원과 취재진이 도착 즉시 추방되기도 했다.

대형 재난을 당한 해당 국가의 정부가 자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외부의 도움을 막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사이 피해지역 대부분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사망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났고, 희생자에 대한 수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썩은 시신이 강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참혹한 광경이 계속됐다.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 못이겨 미얀마 정권이 원조물자의 배급을 결국 허용했지만, 파렴치한 행동은 계속됐다.

탄 슈웨(75) 군정 최고지도자가 외국의 구호물품을 마치 자신이 조달한 것처럼 피해주민에게 나눠주는 장면이 국영방송을 통해 되풀이 방영되는가 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군 지도자의 이름을 구호품에 적어 주민에게 나눠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얀마 정권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0일 예정됐던 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국제사회의 빗발치는 연기요청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 피해가 집중된 양곤과 이라와디 지역만 24일로 연기했다.

정상적인 투표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연기가 불가피했지만, 미얀마 정권은 “영향이 없다”는 한마디로 이를 일축했다.

미국 공군 수송기에 실리고 있는 사이클론 피해자 구호 물품.

정작 이날 투표소에는 투표인 명부조차 비치돼 있지 않았다. 한 선관위 직원은 “가족이 아프면 대리투표도 가능하다”며 부정투표를 오히려 조장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유권자에게 투표용지에 지문을 찍을 것을 강요하는 등 갖가지 형태의 위협과 협박이 자행됐다.

이를 두고 미얀마 정부가 애초 공명선거에는 관심이 없었고, 선거부정을 획책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클론 사태로 인한 혼란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조작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라고 판단해 투표를 강행했을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미얀마 정부가 나라를 뒤흔든 재난은 뒷전으로 하고 국민투표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8년 쿠데타로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미얀마에는 헌정이 중단된 상태였다. 군사정부는 자신들의 영구집권을 사실상 보장하는 신헌법을 제정,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시킨 뒤 2010년 총선을 실시한다는 시나리오를 계획했다.

그만큼 신헌법은 군부권력에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절대명제였던 셈이다. 당연히 신헌법 내용도 독소조항들로 가득했다. 상하원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토록 명시했고, 국가비상사태 발생 시 군부의 개입을 합법화했다.

또 외국인과 결혼했거나 외국 국적의 자녀가 있으면 대선 및 총선 출마 자격을 박탈하도록 했다. 이는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가 영국인과 결혼한 것을 악용해 그의 정계 복귀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폭압적인 독재 뿐 아니라 온갖 기행으로도 악명높다. 2005년 11월 아무런 예고없이 수도를 한밤중에 야반도주하듯 양곤에서 400km 떨어진 중부 밀림지대로 옮겼다.

새 수도의 이름도 ‘왕의 도시’라는 뜻의 ‘네피도’로 바꿨다. 미얀마에 주재하고 있던 외국 공관들에게도 천도 사실이 통보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수도를 이전한 이유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공식적인 발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서방이 추정하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군정이 자신들에게 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 등의 군사적 침공 가능성을 걱정해 외부로부터의 접근이 용이치 않은 정글지대로 수도를 옮겼을 것이라는 것과 미신을 맹신하는 탄 슈웨 장군이 점성술사의 조언을 그대로 따른 결과라는 해석이다. 믿기 어렵지만 탄 장군은 ‘9’라는 숫자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45차트(미얀마 화폐단위)나 90차트의 지폐를 발행하기도 했다. 45나 90이 모두 9의 배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얀마 군부가 20년이 넘도록 철권통치를 휘두르고 있는 이유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미얀마의 풍부한 천연자원이 결정적인 버팀목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미얀마는 전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루비를 비롯해 사파이어, 옥의 최대 원산지이다. 루비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릴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

원석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광부들에게 끔찍한 인권유린이 자행돼 ‘블러드 루비’라는 악명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 반군의 돈줄 역할을 한다 해서 ‘블러드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아프리카산 다이아몬드를 빗댄 말이다.

보석 뿐만이 아니라 천연가스, 석유의 매장량도 엄청나다. 천연가스는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매장량 1위, 전세계에서는 10위에 꼽힌다. 특히 이런 천연자원을 노린 일부 국가들과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사회의 제재의 틈새를 뚫고 들어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면서 미얀마 군부와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독재를 연장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