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손을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라고 했다는데 출처를 찾다가 마감시간에 쫓겨 포기했다. 여러 논문과 칼럼에서 칸트의 정의를 인용하고 있다. 외국어 논문이나 칼럼을 검색해도 쉽게 발견된다. 대개 ‘Kant called the hand the human outer brain.(마거릿 케인)’이라거나 ‘It is reputed that Kant once said “The hand is the window to the mind.’(수전 스튜어트)’라는 식으로 서술했다. 야콥 브로노브스키는 칸트만큼이나 매혹적인 아포리즘을 남겼다. “손은 마음의 칼이다(hand is the cutting edge of the mind).” 이건 『브리꼴레르 : 세상을 지배할 ‘지식인’의 새 이름』(유영만)에서 인용했다. 아무튼 손은 예사로운 신체기관이 아니다. “사람을 알려거든 그 사람의 손을 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손을 ‘운명의 지도’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저마다 지도를 쥔 채 태어난다. 손금. 손금이 점성술의 수준에 가 닿으면 수상술(手相術)이다. 16세기 사람 파라셀수스는 손이 소우주인 인간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수상술은 자연을 인격화해 해석하는 기술이다. 손은 접촉과 교섭의 수단이다. 손은 살아 있는 몸이며 조직화된 유기체, 즉 범 감각적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감각기관들의 작용에 의하는데 그 중 손에 의한 육체적 접촉은 교섭의 가장 근원적인 형태이다(데즈먼드 모리스).

손은 우리 의식의 최전선이다. 사람이 손을 흔들면 이별이거나 반가움이거나 알아봄이거나 알림이다. 애매하다. 그래서 해석이 필요하다. 맥락과 현상을 읽어야 한다. 지도를 갖고 걸어도 우리 삶의 행로는 언제나 어지럽다. 분명한 것은 손이 곧 나 자신의 일부이며 때로는 온전히 나를 드러내거나 설명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인류의 차원으로 확대해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스페인 북쪽의 항구도시 산탄데르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알타미라 동굴이 있다. 동굴을 발견한 사람은 모데스토 쿠비야스. 기와와 벽돌 제조업자였다. 그는 1868년 사냥감을 쫓다 길을 잘못 들어 바위틈에 갇힌 애견을 구하다가 동굴 입구를 찾아냈다. 이 지역은 석회암 대지에 발달한 침식 지형이다. 동굴이 수천 개나 있었기에 새 동굴의 발견은 뉴스가 되지 못했다.

알타미라 동굴이 인류의 문화사를 바꾼 이정표가 된 것은 산탄데르의 귀족 마르셀리노 사우투올라가 1875년 이곳을 찾은 뒤의 일이다. 사우투올라는 동물의 뼈와 석기를 발견했다. 1879년 여름에는 어린 딸 마리아와 함께 다시 방문했다. 이때 마리아가 동굴 천장에서 들소 그림을 찾아냈다.

사우투올라는 1880년 『산탄데르 지역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물에 대한 소론』을 출간했다. 동굴벽화에서 멸종된 들소를 확인한 그는 구석인들의 예술 감각을 찬양했다. 그는 또 파리만국박람회에서 본 유물들과 알타미라 동굴의 유물이 흡사한 점을 근거로 동굴벽화도 구석기 시대에 속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유럽의 학계는 사르투올라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 학자들은 사우투올라의 연구를 사기라고 결론지었다. 사우투올라의 발견은 그가 죽은 지 14년이 지난 다음에야 빛을 본다. 1895년,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유사한 그림이 프랑스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프랑스 학자들은 알타미라 벽화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학자 에밀 카르타야크는 1902년에 『알타미라 동굴, 의심하는 자의 고해(告解)』를 출간한다. 그는 책의 서문에 “20년 전 저지른 불의를 정의로 되돌리고 싶다.”고 썼다.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사우투올라의 주장을 무시했음을 자책했다. 그는 같은 해에 알타미라를 찾아가 사우투올라의 딸을 만났다. 그가 탄소연대측정법을 활용해 측정한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제작 시기는 1만1000~1만9000년 전으로 추정되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쓴 아놀드 하우저는 원시인의 그림이 도달한 예술적 성취를 놀랍게 바라본다. “근대예술이 한 세기에 걸친 투쟁 끝에 겨우 달성한 시각적 인식의 통일성을 그 옛날 구석기 시대 회화가 실현해 놓았다.” 그는 묻는다. “이런 예술은 어떤 동기에서 무슨 목적으로 생겨났는가?” 학자들의 주장은 다양하다. 예술 그 자체를 즐기는 유희본능, 장식욕구의 산물이거나 후손에게 생존 기술을 전하려는 기록 또는 제사와 같은 주술행위. 하우저는 원시인들의 그림이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목표와 직결된 기능’을 가졌다고 보았다. “구석기시대의 사냥꾼 예술가는 그 그림을 통해 실물 자체를 소유한다고 믿었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려진 사물을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궁금하다. 그곳은 왜 동굴이어야 했을까. 동굴은 어둠이며 어둠은 인간의 한계, 무지, 공포, 어두운 심성을 상징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의식을 의미한다.(반정환o박창우) 동굴은 원시인류의 구체적인 공포였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사냥동물들은 사냥감의 목을 물어 숨통을 끊고 동굴로 끌고 가 뜯어먹었을 것이다. 동굴 바닥에 쌓인 인간의 뼈는 벽화만큼이나 많다. 그 공포의 공간에서 인간은 무엇을 대면했을까. 왜 그토록 다양한 변주로써 그들의 문화를 확대하는가. 플라톤의 동굴 신화(The Myth of the Cave), 쑥과 마늘과 곰과 호랑이, 에우리디케를 짐어 삼킨 하데스의 제국. 미노타우로스의 미로, 카타콤, 데린쿠유는 동굴의 변주이다. 아이들은 왜 모래장난을 할 때 작은 동굴을 짓는가.

알타미라 동굴의 벽에 원시인이 그린 그림은 내가 짐작하기 어려운 시간의 저편에서 보내는 메시지다. 그 강렬한 자극 앞에서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을 직감한다. 동굴 속에는 구석기 동물들의 생생한 이미지와 더불어 사람의 손바닥이 흩어져 있다. 일부러 남긴 작품이 틀림없다. 동굴의 어둠 속에 빛나는 원시인 예술가의 손바닥은 우리 가슴에 인장을 남긴다. 『인간역사』를 쓴 야콥 브로노브스키는 알타미라 동굴의 손자국에서 원시시대 화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나의 표지이다. 나는 인간이다!”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대개 이런 것들이다. 동굴의 어둠 속에서 역사의 손금, 운명의 지도를 찾아보겠다.

허진석 시인·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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