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에게 끌려가는 브리세이스. 지오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가 1757년에 제작한 프레스코화. 이탈리아 비첸차의 빌라 발마라나 아이 나니(Villa Valmarana ai Nani) 소장.
그리스 로마 신화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제우스를 알았다. 제우스가 만신(萬神)의 왕이며, 헤라클레스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배웠다. 디오니소스는 술주정뱅이 신인데 로마에서는 바커스로 불렸고, 어쩌다보니 한국의 약국에서 파는 음료수의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도. 하여튼 우리는 책에서 읽거나 누구에게서 듣거나,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다. 배우지 않고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신화의 생명력을 느낀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세월을 거듭하여 누군가 창작하고 각색하고 발전시킨 지중해 동쪽의 이야기다. 음유시의 전통에 실려 장구한 세월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이어졌다. 문자가 발명되어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정착하기까지 신화는 새로운 물줄기를 받아들이고 떨쳐내고 또한 용틀임하며 미지의 역사 속을 굽이쳐왔다.

구전(口傳)과 문학이 겹치는 지점에서 우리는 호메로스를 만난다. 베이비붐 세대라면 학교에서, 문교부가 정한 ‘우량도서’에서 그의 이름을 익혔을 것이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지은 사람이라고. 그러나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호메로스가 실재한 인물인지, 서사시인 모두를 가리키는 총칭인지, 두 서사시가 같은 작가의 작품인지도 불분명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고전학자인 브라이언 로즈는 「일리아스」를 한 사람이 썼을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주장한다.

호메로스는 오늘날 터키 서부 지역인 이오니아 지방 출신으로 기원전 8세기 무렵 활동한 시인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서양 문학의 원형으로 추앙받는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호메로스를 ‘최초의 스승’ ‘그리스 문화의 지도자’ ‘모든 그리스의 스승’이라고 묘사했다. (천병혁)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양의 문학예술과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도 「일리아스」 이후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아주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영국 레딩대학의 유전학자 마크 페이겔이 이끄는 연구팀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쓴 시기를 기원전 762년에서 50년 전후라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바이오에세이즈(Bioessays)』의 2013년 2월 18일자에 게재했다. 이들은 미국의 언어학자 모리스 스와데시가 만든 「스와데시 목록(Swadesh list)」을 이용했다. 스와데시 목록은 신체 부위, 색깔, 친족의 이름 등 거의 모든 언어에서 발견되는 약 200가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일리아스」의 히타이트 버전,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어, 오늘날의 그리스어 등에서 위의 단어들이 바뀌었는지 분석했다. 이들이 밝혀낸 시기는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기원전 8세기에 쓰였다.’는 일반적 이해와 상치되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광대한 신화의 세계를 여행하는 이들의 길잡이이며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는 신화의 바다를 비추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다. 그가 남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신화의 세계를 여행하려는 우리에게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아테네 영웅 테세우스의 손에 쥐어준 실타래와 같다. 저 시간과 공간의 심연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갔다가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준다. 그리스 신화를 사색하는 일은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이때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과 공간은 균일하지 않다. 때로 하루는 천 년이 되고 백 년도 순간에 불과하다. 내가 숨 쉬는 이 공간이 불현듯 세상의 끝,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낭떠러지가 된다. 예컨대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그리스 신화 전체에 비하면 순간처럼 짧은 시간의 사건 기록이다. 그리고 트로이는 마치 문명 세계의 경계에 선 신기루 같다. 그런데 신화 속의 현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일리아스」는 10년이나 계속된 트로이 전쟁 기간 중 51일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묘사한다. 서사시는 웅혼한 노래로 시작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트로이의 전쟁판에서 가장 뛰어난 장수이며 그리스 신화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영웅 아킬레우스. 그는 어찌하여 분노로써 「일리아스」의 문을 여는가.

그리스 연합 원정대의 진영에 전염병이 돌자 대책회의가 열린다. 미케네 왕 아가멤논이 소집한 회의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이 포로로 붙잡은 크리세이스를 아비에게 돌려주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한다. 크리세스는 아폴론 신전의 사제요, 크리세이스는 그 딸이다. 크리세스는 아가멤논을 찾아가 금은보화를 바치며 딸을 돌려달라고 애원하지만 거절당한다. 크리세스는 신전에 돌아가 아폴론에게 복수를 간청한다. 신이 곧 응답하니 역병의 화살이 그리스군 진영에 쏟아진다.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돌려줄 테니 아킬레우스의 소유든, 오디세우스의 소유든 다른 여자를 내놓으라고 뻗댄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보내야 했고, 이에 분노하여 참전을 거부한다. 그리스군은 연전연패한다.

지난해 12월 27일에 업로드한 열다섯 번째 청경우독에서, 나는 작가 박신영을 인용했다. “브리세이스도 약탈당하여 성노예가 된 여성”이라는. 그는 이렇게 썼다. “전쟁 중인 군인의 막사에 소녀가 왜 있을까? (중략) 소녀들은 납치당해서 군인의 사유 재산이 되었다. 성노예 역할은 기본이었다. 남성들은 전시에도 여성들의 돌봄 노동을 필요로 했다. 성노예 여성들은 군인들의 막사를 청소하고 물 긷고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했다. 군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빨래를 하고 옷을 기웠다. 말을 씻기고 먹이고 똥을 치웠다.” 이내 비수 같은 문장을 꽂아 넣는다. “일리아스 어디를 봐도 성노예를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만 나와 있을 뿐, 성노예가 된 브리세이스의 분노는 없다.”고, “이제 브리세이스의 분노를 이야기해 보자.”고.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누구의 사적 소유물도 아닌, 폭력에 희생된 한 여성의 분노를.”

허진석 시인·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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