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 사나이 "한 가지 밖에 집중을 못해요"은근한 투지와 성실함을 갖춘 노력파 배우

[스타탐구] 김태우
바른생활 사나이 "한 가지 밖에 집중을 못해요"
은근한 투지와 성실함을 갖춘 노력파 배우


배우는 어떤 마술 같은 연기를 해도 인품을 들킨다. 여기, 자기 안의 선량함을 숨기지 못한 채 관객한테 오롯이 들키는 배우가 있다. 김태우. 착한 역할 단골 배우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고 있는 이 바른생활 사나이가 내뿜는 차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원천 속으로 들어가보자.

187㎝의 키에 갸름한 얼굴, 그리고 연우유빛의 해맑은 피부. 그를 아는 한 PD는 “도저히 악인이 투영될 수 없는 피사체”라고 말한다. 따뜻한 미소와 처진 눈매 때문인지 지금까지 주로 맡았던 역할도 거의 ‘순둥이’ 아니면 ‘바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심약한 남한병사 남성식, 드라마 <거짓말>의 덜 떨어진 남자 장어, <신화>의 강대웅이 그랬다. <푸른 안개>에서 강한 인상을 준답시고 눈썹 치켜들고 머리 염색까지 하고 나왔지만 어설펐다.

여자 헷갈리게 하는 남자

매번 착한 역할만 맡아 이미지가 고정된 것이 불만일 듯도 한데 정작 본인은 담담하다. “우유부단한 남자의 결정체죠. <접속>에서 전도연 씨가 남몰래 짝사랑하는 남자로 출연했을 때 제 연기를 보던 관객이 저보고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더라구요. 여자 헷갈리게 하는 남자라구요. 전 그때 짜릿했어요. 아, 내 연기가 먹혔구나 싶어서요.(웃음)”

화면 안에서와 같이 실제의 그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성실하다.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KBS 슈퍼 탤런트 2기로 입사했을 때 두 달의 연수 기간 중 누구보다 열심히 임한 것이 간부의 눈에 띄어 <전설의 고향> ‘은장도’ 편으로 데뷔했고, 배역 몰입 전에는 심한 열병을 앓는다. 본인 말로는 ‘스트레스를 일부러 벌고 다니는 스타일’이라고. 그의 성실함은 제작진들에게 이미 정평이 나 있어 그 후 “성실하고 인상좋다”는 이유만으로 오디션 없이 캐스팅한 PD들도 여럿 있다. “한 가지 밖에 집중을 못해요. 겹치기 출연은 하고 싶어도 성격상 못하구요. 그래서 스스로를 달달 볶는 편이에요.”

사랑도 성실하게 했다. 오직 한 사람한테 오랜 시간 지극하게 퍼줬는데 대학시절 만난 부인은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전 아내는 유학 중이었는데 매주 한번도 빠지지 않고 아내에게 보낸 장문의 연애편지는 아내를 감동시킨 최고의 선물이었다.

주위의 어느 누구도 ‘배우 김태우’를 예상치는 않았다. 학창 시절의 그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노력 과다의 모범생.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것도, 그렇다고 남다른 끼나 쇼맨십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감수성이 최고를 이루던 중학생 시절, 인생을 고민하다 문득 떠오른 배우의 꿈을 이제껏 밀고 왔다.

냉철한 노력으로 변신한다

변신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누구 말대로 로버트 마징가 제트도 아닌데 어떻게 매번 변신하겠는가! 그저 맡은 역할에 최대한 몰입할 뿐이다.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망가진 고주망태 남편을 연기한 후 휴식 기간을 갖다가 얼마 전 부터는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찍고 있다. 유지태와 대학 선후배로 나오는데 느끼한 유부남 연기를 위해 일부러 몸무게도 늘렸다. 두 남자가 낮술의 힘을 빌려 옛 애인(성현아)을 찾아 간다는 내용으로 파격적인 섹스신이 벌써부터 충무로 참새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홍 감독 영화가 크랭크업 된 후에는 김인식 감독의 <얼굴 없는 미녀>라는 에로틱 심리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다. 신경증의 일종인 성격 장애를 앓고 있는 여자(김혜수)를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로, 그녀를 치료하는 와중에 지독하고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 젊은 의사의 복잡한 욕망관계를 그려낼 이 영화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뭇 기대된다.

자신을 20자로 표현해 보랬더니 ‘모차르트보다는 살리에리에 가까운 사람’이란다. 천부적인 재능은 없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한다고. 그런데 요즘은 살리에리가 되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절감하고 있단다. 잠 잘 시간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신혼 집에 발 펴고 앉아 있을 여유도 없다. 싫어도 싫다고 말 못 하고 모든 것에 대한 완벽주의는 그를 옭아매는, 스스로 만든 족쇄다. 하지만 어쩌랴. 그런 사람 좋음과 냉철함의 묘한 어울림이 바로 그를 지탱하는 힘이고 매력인 것을.

“조카 녀석이 자기 삼촌이 김태우라고 하면 친구들이 다 달려들다가, god 김태우가 아니라 배우 김태우라고 하면 ‘에이~’ 그런대요. 재미있죠?” 허나 조만간 개봉될 작품들이나 그에게 산적된 시나리오들을 보면 2004년은 배우 김태우가 더 유명세를 타지 않을까 싶다. “돈 벌어서 좋은 건 설렁탕 먹고 싶을 때 설렁탕 먹고, 갈비 먹고 싶을 때 갈비 먹을 수 있다는 것 뿐이에요. 돈 보다는 작품성이고 또 제 안에 숨어 있는 잠재력의 분출이죠.” 연기에 대한, 배우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지니고 달려온 그이기에 가능한 말들이다. 김태우 특유의 은근한 투지와 성실함이 좋은 작품과 맞물리는 날, 살리에리의 지독한 노력이 모차르트의 범접할 수 없는 재능으로 부활하는 날을 기다려 본다. 김태우, 그는 정말 열심히 달려왔으니 말이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1-09 16:46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