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다 떨며 맨땅에 헤딩했었죠"전화로 보험판매, 수십명의 '입씨름꾼'지휘하는 맏 언니

[직업의 세계-24] 1세대 텔레마케터 박미미
"왕수다 떨며 맨땅에 헤딩했었죠"
전화로 보험판매, 수십명의 '입씨름꾼'지휘하는 맏 언니


종일 세상에 전화를 건다. 상대만 바꿀 뿐, 했던 얘기를 끝없이 되풀이한다. 입씨름에 밀려서도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고객과의 줄다리기다. 출근 후부터 퇴근 때까지 잠시도 입과 귀가 쉴 틈이 없다. 얼마나 계약을 이끌어내느냐가 능력. 집에 돌아가면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고도 피로가 다 풀리지 않는다. 전화선 위의 야전부대, 텔레마케터의 업이다.

“일단 집에 가면 그때부턴 절대 직접 전화를 받지 않아요. 전화라면 워낙 진력나게 하니까 집에서만은 면하려구요(웃음).”

박미미(35)씨는 국내 생명보험사에 등장한 1세대 텔레마케터중 한 사람이다. 올해로 경력 9년째, 쉽게 말하면 전화로 보험을 판매하는 일을 한다. 박씨는 현재 SK생명 경성복합지점 실장으로 근무, 아래로 수십명의 후배 텔레마케터 부대를 지휘하는 맏언니다.

박씨가 있는 사무실은 종일 벌집처럼 왱왱 시끄럽다. 출근 후 간단한 조회만 끝나면 바로 텔레마케터들의 ‘수다’가 시작된다. 수십명이 칸칸이 자리에 앉아 저마다 전화를 붙들고 산다. 현재 박씨가 있는 곳은 기존 계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바운드 마케팅 부서. 그나마 ‘맨땅에 헤딩’ 격인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팅에 비하면 한결 말 꺼내기가 수월하다. 그렇다고 해도 신참의 경우, 계약 1건을 얻어내기까지 많으면 300 통화, 한 번에 수십분씩 대화가 이어지기 일쑤다. 말만 잘 통하면 전화만으로도 계약까지 일사천리다. 최근 마련된 법에 따라 전화상 음성 녹음, 녹취만으로도 계약의 효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텔레마케터들이 날개를 단 것이나 다름없다.

아나운서에 버금가는 말 훈련

물론, 무작정 ‘떠들어대는’ 것은 아니다. 텔레마케터도 어쨌거나 말로 먹고 사는 직업. 일에 대한 고민은 방송 성우나 라디오 진행자를 방불케 한다. 그들만의 원고도 있다. 보험 상품 정보에서부터 계약 절차까지 텔레마케터들을 위한 기본 원고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각 마케터들마다 이 원고를 얼마나 자기 것으로 잘 소화해내느냐가 관건이다. 1995년 무렵처럼 시간당 글자수 제한에다 ‘-입니다’ ‘-입니까?’ 등 말꼬리를 ‘다까체’ 로만 훈련시켰던 때도 있었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 보며 스스로 입 모양을 연습시키는 지침까지, 말 다루기 훈련 자체가 아나운서 저리가라다.

내용 중에서도 제일 고민은 도입부다. 라디오 DJ처럼 매일 ‘오늘은 첫 마디를 무엇으로 할까’ 로 머리를 싸맨다. “말하자면 오프닝 멘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고객이 귀가 솔깃해서 계속 이야기를 듣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흥미를 잃게 할 수도 있거든요. 이 도입부는 매일 바꿔요.”

그 한마디를 찾기 위해 평소 신문과 방송 등 주변의 모든 뉴스를 살핀다. 금융에 관계된 경제뉴스엔 특히 민첩하다. 때로는 ‘오늘 아침 발표된 뉴스를 보셨냐’로 첫 인사를 건넬 때도 있다.

종일 실내에 있으니 편할 것 같지만,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점심시간과 오후 한차례 잠깐의 휴식시간을 빼놓고는 거의 자리를 뜨지 못한다. 집중 콜 시간엔 화장실도 안 간다. 점심도 대부분 단체로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종일 수화기에 시달리다보니 청력도 약해진다. 텔레마케터 입문 몇 달만 지나면 통과의례처럼 귀앓이를 겪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만, 괜찮아지는 게 아니다. 조금씩 가는 귀가 먹는다. 너나없이 ‘사오정’이 된다.

물은 수시로 마셔댄다.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다 보니 입이 자꾸만 바짝 마른다. 물 마시러 가는 시간도 아까와 아예 물을 담은 페트병을 전화기 옆에 수두룩 세워놓고 일하는 억척 마케터도 있다. 수시로 사탕을 먹는 것도 목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다. 목 감기가 이들에겐 제일 무섭다.

“감기에 걸렸을 때도 집에서 혼자서 쉬노라면 다른 동료들은 그새 얼마나 실적을 올렸을까, 경쟁 때문에 오히려 마음만 더 불안해져서 못 쉰다는 마케터들이 많아요. 그래서 쉬지 않고 일하느라 더 악화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엄청난 체력과 기 소모

업무의 특성을 감안해 회사에선 수시로 간식거리도 제공해준다. 밖에선 다들 다이어트 때문에 난리법석이지만, 여기선 배부른 고민이나 다름없다. 몸매보다 건강이 먼저다. 체력이 떨어지면 엉뚱한 덫에 빠질 수도 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기(氣)를 많이 빼앗겨요. 기가 빠지면 어느샌가 머리가 멍해지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보이기도 하고, 바로 슬럼프로 이어져요. 너무 기를 소진해서 생기는 현상이지요. 체력이 곧 능력과도 직결돼요.”

보험이나 텔레마케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예의 바른 고객도 많아졌지만, 한편엔 여전히 짖궂은 고객들이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남자분들 경우 가끔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을 하는 분도 있어요. 예를 들면 자신의 신체 장애 등의 이유로 타 보험사에서 몇차례 가입을 거절을 당해 본 경우, 처음부터 아주 강하게 나가면 보험을 들어준다는 소문을 어디에선가 듣고 일부러 텔레마케터들한테 욕을 하며 심하게 대하는 거지요.”

가끔은 음담패설파도 있다. 몇 해전 박씨가 타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동료 텔레마케터들 사이에 ‘봉*이 고객’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던 인물이 있었다. 알고보니 번듯한 공기업의 직원이었던 이 유부남은 거의 1년에 걸쳐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시로 전화를 걸어대며 연결되는 텔레마케터에게마다 음란 전화방 수준의 해괴한 ‘상담’을 일삼다가 결국 참다 못한 한 직원에게 걸려 따끔하게 혼이 난 뒤에야 꼬리를 내렸다.

박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95년. 첫 직장은 국민생명이었다. 처음엔 사무직인줄 알고 나섰다가 갓 텔레마케팅을 도입한 회사측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 미래의 전망을 믿고 도전을 결심했다. 당시만해도 텔레마케팅이라고는 일부 투자신탁회사와 한 영어교재사에서 활용한 것이 고작이었다.

처음엔 우편 등을 통해 광고지를 발송한 뒤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상담하는 정도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96년 한 일간지 광고를 통해 국내 생명보험사에서는 첫 시도로 텔레마케팅 사업이 발표되면서 전문 텔레마케터로 뛰기 시작했다. 첫 반응부터가 고무적이었다. 양 손으로 쉴 새없이 전화를 받아야 할 만큼 상담전화가 밀려들었다.

“원래 저는 학교 다닐 때 말 한마디 안 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고객과 전화를 할 땐 아주 적극적으로 변하는 제 모습을 처음 발견하게 됐어요.”

초창기엔 선배나 참고할 자료조차 없어 직접 궁리해가며 원고를 만들고 하나 하나 경험을 통해 고쳐나가면서 실무의 기반을 일궜다. 이듬해에 15명으로 구성된 텔레마케터팀이 별도로 만들어졌고, 박씨는 팀장 겸 텔레마케터로 활약했다. 지난해 이맘때 현재의 회사로 오기 전까지 소속회사가 몇차례 합병 등으로 자리를 바꾸었지만 내내 텔레마케터이자 텔레마케터를 키우는 관리자로서 두 몫을 해 왔다. 그러면서도 여느 마케터들에게 뒤지지않은 개인 성적을 기록, 고참의 저력을 과시했다. 실적 또는 급여 순위에서 수시로 1등을 차지, 그 해의 최고 실적을 올린 사람에게 주는 연도대상을 받은 일도 있다. 그만큼 열심히 뛴 결과다.

“옛날엔 빌딩 수위 아저씨들이 제 이름을 다 알고 계셨어요. 꼭 한밤중에 맨 마지막으로 퇴근하는 사람이 저였거든요. 새벽 7시 반에 출근해 밤 11시반쯤 되면 ‘미미야, 집에 안 들어오냐?’ 는 어머니 전화를 받고서야 퇴근을 하곤 했어요. 일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거든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입사 2년차 때, 목을 지나치게 혹사시키다 감기에 걸린 뒤 영영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던 소동도 있었다. 이제껏 함께 한 텔레마케터들을 합치면 수백명, 직접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텔레마케터만 헤아려도 백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엔 텔레마케팅 전문가 박씨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온 신청자가 절반 이상이다. 실제로 박씨와 함께 일했던 후배들의 경우 3명중 한명꼴로 8,000만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웃바운드와 인바운드를 막론하고 DM시절부터 텔레마케팅 시대까지 고루 거치며 실전을 다져온 박씨의 노하우가 아낌없이 나눠진다.

물론 텔레마케터 자신의 노력 없이는 성공이란 불가능하다. ‘성실’의 위력을 박씨는 도처에서 목격해왔다. “50대의 한 텔레마케터는 처음엔 국어책 筠資?원고를 읽는 분이었어요. 이 때문에 전화를 받은 고객들로부터 ‘지금 장난치냐’는 항의도 많이 받고, 회사에서도 곧 자를까 말까를 고심하던 분이었는데, 4개월 뒤엔 상위권에 올라서 오히려 다른 마케터들이 그 분의 원고를 보고 공부하게 될 정도였어요. 하루 4시간씩 3개월 동안 계속 다른 선배들의 녹음 테입을 듣고 녹취하면서 공부하고 익힌 결과였어요.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만큼 결과가 달라져요.”

회사나 개인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박씨 주변의 텔레마케터들의 경우 평균 소득 월 250만-300만원선이다. 많게는 월수입 1,000만원을 넘어서는 텔레마케터도 있다. 전화라는 도구만 다를 뿐, 일반 세일즈의 매력과 장점은 그대로 살아 있다. 수많은 텔레마케터들을 지켜보아온 박씨. ‘톱 클래스’만의 공통점도 보곤 한다. “선두권의 텔레마케터들은 절대 전화를 쉬는 법이 없고 항상 컨디션이 일정해요. 이들은 체력이든, 실적이든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들이죠. 집에 우환이 있어도 일단 일을 시작하면 흔들림이 없어요. 이유없이 상위권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고 봐요.”

텔레마케터들만의 직업병이 하나 더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객님’이란 호칭이 무차별로 튀어나온다. 직접 전화를 걸던 얼마 전까지도 박씨 역시 수시로 남편조차 ‘고객님’으로 불러대 가족을 웃게 만들곤 했다. 실수를 깨닫기라도 하면 그나마 양반. 심지어 텔레마케터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는 서로가 서로를 무심결에 손님 취급 하고도 아예 그랬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연스레 이야기가 넘어간다.

박씨의 희망사항은 훗날 언젠가 그럴만한 기회가 생긴다면 직접 유통관련 사업을 벌여보고 싶다는 것.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유통에 대한 관심과 재미도 함께 얻었다. 장래에 벌이게 될 사업이 어떤 것이 되든, 한가지 단서는 있다. 짐작하겠지만, 텔레마케팅을 꼭 써먹으리라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텔레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니 다시 물어보나마나 한 얘기다.

정영주 프리랜서


입력시간 : 2004-01-28 16:20


정영주 프리랜서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