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세상"감각 일변도로 치닫는 세태에 암담함, 단선적 시각 버려야

[한국 초대석] 이화여대 김혜숙 교수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세상"
감각 일변도로 치닫는 세태에 암담함, 단선적 시각 버려야


이화여대 전철역에서 학교 정문까지 200여m의 길을 20대 여성이 순조롭게 관통해 내기란 쉽지 않다. 우선 화장품 가게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에 가까운 호객용 테크노 음악이 행인들을 기선에 제압한다. 여기 들어 선 여대생들은 학교 안으로 들어 가려면 또 하나의 관문을 더 통과해야 한다.

헤어 커뮤니티(hair community)나 스킨 인스티튜트(skin institute)라는 제법 ‘학구적’인 말을 단 간판들이 이 일대에 살포돼 있는 허영심을 도발한다. 두드러져 보이는 가운데, 선탠, 바디 샵, 피부ㆍ비만 관리실 등 거의 한국화된 옥호(屋號)가 도열해 있다. 문외한이라면 무슨 기관으로 착각하기 딱 좋을 법한 그 건물들 주변에는 일단의 아주머니들이 늘어 서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발길을 재촉하고 있는 여학생들에게 착 들러 붙어 “어느 곳에 가서 머리 한 번 해 보라”고 권유한다. “붙임머리가 12만원, 싸게 모신다”라며. 더도 덜도 말고, 미장원 삐끼다. 3~4년 전부터 생겨 난 풍경이라 한다. 눈썰미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물에 콩나듯 ‘미용실’이라는, 이 일대에서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간판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2002년부터 가져 오고 있는 수요 집회에서는 대학 앞 시장가와 신촌역 일대를 돌며 피킷 시위까지 해 오고 있어요. 저도 동참하죠.” 인문학 연구원 원장 임기를 막 끝낸 이 학교 철학과 김혜숙(49) 교수가 인문대 연구관에서 말했다. 이 학교의 ‘교육 환경을 위한 교수 모임’이라는 단체의 대표라고는 보기 힘든, 아담한 풍모의 주인공이었다. 회원 교수들과 함께 ‘대학 앞 상업화 반대’, ‘교육 환경 보호’, ‘전면 공원화하라’ 등의 문구가 씌어진 피킷을 들고 학교 일대를 행진하거나, 가끔은 대규모 집회도 가지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애썼으리라고는 얼른 믿기지 않는다.

△ ‘멋부리는 여학생’ 편견은 잘못

서울시장과의 면담 요구는 이뤄지지 못 했다. “민원인은 만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도시 계획국장 면담으로 끝났어요.” 그러나 국장은 일단 수립된 계획은 번복할 수 없다는 방침만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었다. 교수 모임이란 결국 임의 단체라는 현실적 한계성을 새삼 지적하면서. “역세권과 상가를 결합하는 방식은 일본의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 돈이면 다 된다는 발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요. 한 가지, 중요한 게 또 있습니다.” 여대생들이라면 멋 부리기에나 신경 쓸 것이라는 통념탓이라는 지적이다. 위기 의식을 느낀 교수ㆍ학생을 상대로 대대적인 서명 작업이 시작됐고, 이어 서대문구청과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 관련 기관으로 보내졌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앞에 서면서 동료 교수들이 뒤를 따르게 한 최대의 현안은 무엇이었을까? 철도청이 발안한 ‘신촌 민자 역사 신축안’. 이화여대와 맞닿아 있는 국철 신촌역 인근의 땅에 1999~2003년 중으로 4,500여평 넓이의 빌딩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지하 2층에 지상 8층, 연건평 8만9,000여평의 넓이로 역무ㆍ판매ㆍ위락ㆍ생활 시설 등을 건축한다는 설명이었다. 당초 1999~2003년중으로 고시돼 있던 이 사업안은 신촌역사㈜ 등의 자체 수정을 거치면서 지하 7층에다 지상 23층의 주상 복합 빌딩으로 눈덩이 굴러가듯 불어 났다. 현재 이 계획은 주상 복합 13층으로 잠정 결론난 상태다.

그 같은 진행 상황에 대해 관할 구청측은 팔짱만 끼고 있었다. 이미 결정난 사안이며, 더욱이 적자를 만회하려는 철도청의 사정을 두고 나몰라라 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캠퍼스밖에 모르는 교수들이라 실체적 진실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다는 딱한 사정이었다. 결국 국회의 힘을 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교수단은 모 국회의원과 선이 닿아 철도청에다 공식적으로 자료 요청을 할 수 있었다. 그 직후 철도청이 들고 온 자료 뭉치에는 대우 등이 입안한 ‘신촌 민자 역사 주식회사 계획안’이 들어 있었다. 상상 이상이었다. “안락한 부르주아의 삶을 암시하는 갖가지 이미지들을 보니 차라리 섬뜩하더군요.”

1999년 11월 교내에서 그의 진행으로 가졌던 ‘이화 환경 대토론회’는 그 같은 위기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이대의 환경 지수는 학교 인근에 밀집한 미용실의 숫자가 150여개에 이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족할 지 모른다. 그들의 논리란 게 점입가경이다. “압구정의 마용실이 고급화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한 이 지역 미용실의 반발이라더군? 보다 세계적인 미용 타운으로 개발하겠다는 거예요.” 이 같은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호객꾼을 동원해 길가는 여학생들을 당당하게 붙잡는 데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었던 것.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여학생들의 소리에 이대 학생회에서도 업주측에 자제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었다.

△ “국철 신촌역 일대는 원래 어린이 공원”

“국철 신촌역 일대는 원래 일제 식민 치하 당시 한국의 어느 독지가가 어린이 공원으로 개발하라며 무상으로 기증한 것으로 돼 있어요. 아직도 행정적으로 그 곳은 어린이 공원이죠.” 그러나 6ㆍ25 당시 남한 북한 동포들이 모여 살면서 커다란 판자촌이 형성되더니, 상가 군락이 됐다는 김 교수는 향토 사학자가 다 됐다. “당초 공원으로 지정됐으나 공원으로 쓰이지 않는 곳도 이 곳이 유일할 거라 봐요.” 이 일대 지역 문제의 핵심은, 이를 테면 떠난 땅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부재지주의 문제다. “행정상의 땅 주인들 85세대는 사실 딴 데가서 살면서도 재개발권을 얻어 복합 공간을 짓겠다는 거죠.” 그들이 내민 개발안의 속내도 대학 공동체에게는 불만 투성이다. “상가는 대로변에, 공원은 뒷편에 짓겠다는 계획을 전면 공원화쪽으로 바꾸라는 겁니다.”

담담하게 차근차근 논점을 짚어 가는 그는 이렇듯 행동주의자가 돼 버린 현재의 맹아를 대학 시절부터 찾는다. “나의 이런 모습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사회적 존재라는 신념의 자연스런 귀결이 아닌가 해요.” 참하게 공부 잘 하던 이화여대 영문과 72학번인 그의 변신은 ‘새얼’이라는 이념 서클에 가입하면서 본격화됐다. “이영희, 프란츠 파농 등의 책을 파고, 농활(농촌 활동)과 빈활(빈민 활동)은 다 참여했죠. 여공, 버스 안내양, 이화여대 앞 양장점 시다(재봉 보조) 등에 대한 부채 의식에 어찌할 줄 몰랐어요.” 그는 당시를 이렇게 압축한다.

“20대에는 유신의 암울한 풍경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아직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집에서는 착실한 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꿈도 못 꿨다. 그러나 그는 거듭 나고 있었다. “대학 시절은 휴교의 연속이었지만, 서클을 하면서 동지애란 새로운 인간 관계에 눈떴죠. 이전의 비교적 순탄했던 삶을 깨우치게 한 계기였어요.” 그 중요한 인식론적 각성의 계기가 바로 이화여대 앞이었다. “이사벨라 같은 고급 양장점, 미장원 등이 도열해 있던 풍경은 1980년대가 되자 웨딩 드레스점이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서면서 새 단계로 들어섰다고나 할까요.” 여대생이라는 지성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 바꿔 말하면 이화여대는 상업성에 대해 새로운 알리바이를 제공한 형국이 되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 의식이 지금까지 그를 올곧게 지탱시켜 주고 있는 힘일 지 모른다.

그러나 4학년으로 접어 들자, 그는 외부 활동을 부쩍 자제한다. “운동권 특유의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자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거죠.” 그는 그 해답은 ‘전문인이 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대졸후 시사영어사 편집부에 다니며 철학과 대학원행을 결행했던 것은 그래서다. 그러나 당시 이화여대에 철학과는 학부에 밖에 없었다. 현실적 해결책으로 그는 철학적인 문제를 가장 심도 있게 다루는 기독교학과 대학원으로 결행했다. 직장 생활과 대학원을 병행했던 그는 2년반만에 마쳤다. 비트겐슈타인의 분석 철학과 언어 철학이라는 보배를 가슴에 안고. 이어 시카고 대학의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 7년 동안 수학해 철학 박사(Ph.D.)에 이르렀다. “영화 배우(레이건)가 대통령 되는 것이나, 약자인 외국인 유학생을 공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과정상의 투명성과 인간다움 등의 가치를 확인시켜 준 때였죠. 요즘은 9ㆍ11 이후 많이 변했다고들 하던데….”

△ 외모지상주의 사라져야

대학에서 교과서로 즐겨 쓰이는 ‘예술과 사상’(1995ㆍ이대출판사 刊) 등 예술, 여성, 인식론을 주제로 저술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그는 “요즘 같은 세상에 더욱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영상, 쾌락 산업, 최근의 몸짱 신드롬 등 감각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세상에서는 멈춰 서서 자신을 점검해 보고 싶은 갈구가 증가하고 있어요. 그러나 전문 철학은 너무 멀리 나아갔어요.” 지나친 상업 문화, 과도한 물신주의 등 현재의 문제에 대해 짚어 주는 발언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다짐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몸만은 온전한 자기의 것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나의 몸마저도 나 자신으로부터 대상화됐어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평가한다는 거죠.” 그에게 철학적 대안을 구했다. “이런 현상들에 숨은 배후의 논리를 직시하고, 거기로부터 나 스스로를 떼어 놓아야 한다는 거죠. 자본의 이윤 창출을 그 배후의 논리로 지목한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가 좋은 책이 될 겁니다.”

“예전 같으면 매춘부가 아니고서야 육체만을 가지고 할 일이 없었죠. 그러나 육체자본과 외모지상주의에 지배돼 있는 우리시대는 단적으로 말해, 마주 대한 사람을 물건으로만 인식하는 세계죠. 육체 관리는 곧 부의 축적이고.” 이렇게 된 데는 우리의 단선적 시각과 편견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와 관련, “전망은 암담하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특히 한국은 보다 더 그렇다는 것. “미국은 나라가 넓어 영향이나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약한데, 한국에서는 최상류층의 것들이 그대로 전파되니까요. 한국은 압축판이예요.” 최근 조류 독감과 관련, 닭 판매량이 수직 강하했던 한국 아니던가. 그렇다면 상황의 전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는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백화점에 거의 안 간다. 이것은 내 삶의 속도를 어떻게 늦추는가와 직결된 문제다.” 학교앞 미용실 문제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미용실에 안 간다고 해서 외모지상주의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결국 ‘마음이 중요하다’는 철학의 화두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가의 문제다.” 인문학연구원 원장직은 막 끝냈지만, 그는 이대교수협의회의 초대 회장으로서 여전히 바쁘다. 교수의 정년 보장 문제, 총장 선출 방식의 개선 등 두 세개의 굵직한 현안들이 그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기업의 사원 선발 때 용모를 제한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여성민우회와 함께 위법성을 고발해 둔 터다.

그렇게, 그는 노화의 속도를 늦춰 가고 있는 것일까?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2-18 14:03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