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아표 연기 "물 올랐대요"영화 에서 매혹적인 팜므 파탈로 개성있는 연기

[스타탐구] 염정아
염정아표 연기 "물 올랐대요"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매혹적인 팜므 파탈로 개성있는 연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큰 키의 말라깽이 여자가 올라탔다. 곁눈질로 흘낏 보니 염정아다. 사람들은 눈짓으로 입 모양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염정아야! 염정아!”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녀가 입을 뗐다. “저, 염정아 맞아요. <사랑한다 말해줘> 많이들 봐주세요.” 오잉~ 이 여자 생각보다 비위 좋게 언죽번죽한 면이 있다.

- 연기 갈증에 시달리던 초창기 시절

껑충한 키에 뾰족한 코, 큰 눈을 지닌 그의 겉모습은 차갑다 못해 서늘하다. 세상 오만가지 일에 예민해 무슨 일에도 귀를 쫑긋거리며 히스테리를 부릴 듯한 인상이지만 실제의 그는 수더분하고 털털하고 명랑하고 활달하고 동글동글하고 보송보송하다. 영화, 드라마 속에서의 인상과는 180도 다른 그를 보고 있자면 “그렇게 다른 성격을 어찌 연기하는가?”라는 물음이 저절로 쏟아져 나온다. 그는 그렇게 철저히 ‘진짜 염정아’를 숨기고 ‘배우 염정아’로 대중 앞에 서고 있다.

1991년 미스코리아 선에 당선되면서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초스피드 데뷔를 했지만 배우는 하루 아침에 꿈꾼 직업이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입만 열면 “연극영화과!”를 외치고 다녔고, 연기학원이란 학원은 죄다 다녀 일찌감치 대본 외우는 재미를 알았다. 그러나 데뷔 후 근 10년간은 긴 슬럼프가 이어졌다. <야망>, <모델>, <태조 왕건>, <연인> 등 현대극과 사극을 분주히 오가는 날들이었지만 2% 부족한 갈증이 쫓아다녔다.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발걸음을 옮겨 <재즈바 히로시마>, <텔미 썸 씽>, 등에 출연했지만 촬영 내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라마와 영화는 그야말로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었다. “<텔미 썸 씽>을 찍고 나서는 건강 상태도 최악이었어요. 장이 안 좋아 얼굴에 붉은 꽃이 막 피는 거에요. 얼굴이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람들 만나기도 꺼려지더라구요. 일년 동안은 집안에서 꼼짝도 안 하며 생각만 했어요. 그때 결심했죠. 죽더라도 촬영장에서 죽자.”

- <장화, 홍련>으로 연기력 재발견

비장한 결심 뒤 몸도 마음도 성숙해진 그에게 손을 내민 구세주는 바로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 신경 과민에 강박증까지 보이는 계모 역할을 찾던 김 감독은 단박에 염정아를 불렀고 그날부터 염정아는 히스테리컬한 새 엄마로 변신해 갔다. 영화는 대 성공이었고 ‘염정아의 재발견’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오랫동안 짓누르던 자기 질책과 답답함이 한꺼번에 해갈되는 날들이었다. “건방진 말일지 모르지만 그때 비로소 연기하는 맛을 알겠더라구요. 영화는 하면서 필(feel)이 오잖아요. 아, 이번 영화 되겠다, 안 되겠다 싶은…. 매 작품 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장화, 홍련>은 마음을 비우고 찍어서 그런지 촬영 동안에도 흥겨웠고 만족스러웠어요.”

바닥까지 떨어져 본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정상에 오른 적도 없었던 맨송맨송하기만 한 그의 연기 이력은 그제서야 급물결을 탔다. 신들린 연기란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 있었고,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가 주는 황홀감도 맛 봤다. 허나 한가지 목표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싶은 게 인간의 속성. 제대로 된 연기,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가 무엇인지를 경험한 염정아의 욕심은 더 커져갔고 그렇게 선택한 차기작이 최근 박신양, 백윤식과 함께 찍은 영화 <범죄의 재구성>이다. 은행에서 돈을 빼돌린 사기단과 경찰이 벌이는 범죄 미스테리물로 염정아는 매혹적임 팜므 마탈로 등장한다. 긴 다리를 요염하게 꼬고 앉은 포스터만 보더라도 ‘염정아표’ 연기를 재확인하고픈 욕구가 절로 든다.

- ‘로맨틱 코미디’하고 싶은 귀여운 덜렁이

염정아는 의외로 주위가 산만하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 눈치 빠르게 분위기 파악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뭐든 금방 싫증을 내는 성격이다. 2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 극장에도 잘 가지 않는다. “저도 신기해요. 이런 성격인 제가 어떻게 기다림의 연속인 연기를 하고 있는지….(웃음) 어디든 떠돌아 다니는 게 좋아요. 그래서 여행도 좋아하나 봐요.”

식성도 옷 취향도 그때 그때 바뀐다. 오래 생각하고 고민하기 보다는 그날의 기분과 감정에 따르는 편. 스포츠도 번지점프를 비롯해 승마, 격투기 등 스릴 만점의 역동적인 장르를 즐긴다. 마른 몸에 붙은 적당한 근육?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쪄요. 오종록 PD는 개소주를 해 마시거나 밤 촬영 때 야식을 잔뜩 먹으라고 하는데 그래도 살이 안 붙어 걱정이네요.” 다이어트 열풍으로 휘트니스 센터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마당에 이 무슨 부러운 소리냐만은 운동 좋아하는 성격으로 봐서는 쉽사리 살이 찌지는 않을 듯 하다.

요즘 열연 중인 MBC 수목 미니 시리즈 <사랑한다 말해줘>에서는 쿨한 자유연애주의자이면서 젊은 나이에 성공한 영화사 사장 ‘이나’로 출연한다. 희수(김성수)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면서도 병수(김래원)와 영채(윤소이)의 정신적인 사랑을 부러워하는 복잡미묘한 캐릭터로 그간의 염정아의 이미지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 시간이 갈수록 강한 성격의 캐릭터를 많이 주문받는데 본인이 실상 하고 싶은 분야는 로맨틱 코미디. 눈 치켜 뜨고 소리 지르는 역 말고 말랑말랑하면서도 둥글 둥글한 인간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단다.

세월과 함께 성장한 배우의 내외적 변화를 발견할 때 관객들은 흐뭇함을 느낀다. 염정아, 그녀만의 ‘각’을 뭉그러뜨리지 않고 지금껏 ‘또렷이’ 살아온 그의 연기 열정이 다음 작품에선 또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된다. 이번에도 관객의 뒷통수를 치면 좋으련만.

글 김미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3-11 17:21


글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