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배우는 무당이야"특유의 해학과 개성으로 연기공력 뿜어내는 빛나는 조연

[스타탐구] 변희봉
"허허, 배우는 무당이야"
특유의 해학과 개성으로 연기공력 뿜어내는 빛나는 조연


나이 좀 먹은 배우다 싶으면 뭉뚱그려 부르는 말이 있다. 선생님. “아니, 내가 왜 지들 선생님이야? 난 연기자 변희봉이라고.” 근 40년 동안 배우로 살아왔지만 ‘선생님’이라는 애매한 존칭보다는 그냥 ‘변희봉 씨’로 불리고 싶다는 변희봉. 최근 들어 한국 영화계와 브라운관에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 그는 ‘중견’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베테랑 연기자다.

- 딸들 울린 사기꾼 전문 배우

“딸만 셋인데, 하루는 큰딸이 학교에서 울고 오더라고. 제발 도둑놈 역 좀 그만 하라고….” 변희봉이 젊은 시절, 그만의 개성있는 연기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그의 딸들은 학교에 가면 놀림받기 일쑤였다. 그 시절 그가 단골로 맡았던 역들을 보면 죄다 사기꾼 아니면 간첩, 제비족 등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춘기의 감수성 예민한 딸들을 위해 담당 PD를 찾아가 이미지가 다른 역들 좀 달라고 애원 아닌 애원을 해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찾아오는 역들은 비슷한 부류(?)의 것들. 생각다 못해 아예 집에 있는 TV를 없애기도 했다. 아니면 딸들을 일찍 재우던가.

방송 데뷔는 성우로 했다. 1965년 MBC 성우 공채에 합격해 라디오 <법창야화>에 출연하면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실제 사건을 재연하는 추리극이었는데 범인으로 단골 출연했다. 어찌나 실감나는 연기였는지 “그 사기꾼 꼭 좀 잡아라. 그 파렴치범은 실제 인물을 데리고 온 거냐?” 등의 문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 법학 전공의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

대학에서의 전공은 법학. 연기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던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일단 전공을 그 쪽으로 정하긴 했다. 마흔 두 살의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늦둥이 치고도 엄청난 늦둥이였으니 부모의 기대가 컸던 것은 당연지사. 아버지가 임종 순간까지도 연기자의 길을 허락치 않아 한때 심적, 육체적으로 혼돈의 시간을 겪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다짐했지. 그래, 이 놈의 연기 때려치우자. 이제 그만하자. 그렇게 반대하시는 걸 왜 지금껏 미련하게 붙들고 왔나!” 그만두기로 단단히 결심을 하고 방송국에 부음 감사 인사차 마지막 방문을 했는데 그만 거기서 또 한 PD에게 발목을 잡히고 만다. 신인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연출가라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면서 출연을 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됐다.

극단 <산하>라는 곳에서 10년 동안 연극을 하기도 했다. <대리인> <진흙 속의 고양이> 등의 작품으로 국립극장에 섰을 때의 그 감흥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TV 탤런트로 발을 넓히면서부터는 <수사반장> <113 수사본부> 등에 고정으로 출연했는데 시골 고향집에 칩거해 있던 그를 <수사반장> 제작진들이 경찰서를 통해 찾아내 깡촌 형사 역을 맡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촌스럽고 허둥대는 못말리는 시골 형사 역은 훗날 영화 <살인의 추억>에 출연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준호 감독의 삼고초려

사극에서의 활약도 빛났다.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에서의 유자광 역으로 당시 신문기자들이 주는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국동 아씨>에서의 점쟁이 역은 실제 점술가에게 점술법을 사사하며 장안을 시끄럽게 했는데 초등학생들이 그 흉내를 여기저기서 내고 다니는 바람에 국가에서 드라마의 조기 종영을 재촉하는 압력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때 얼마나 열심히 했다고. 서울의 용하다는 점집은 한번씩 다 가보고, 점쟁이가 하는 말 몰래 녹음도 하면서 말이야. 허허.”

최근 들어 영화에 자주 출연하면서는 ‘800만 배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선생 김봉두> <살인의 추억> 등 그가 출연한 영화의 관객수를 합산한데서 나온 닉네임이다. 영화건 드라마건 일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기를 지켜봤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새까만 얼굴로 연필에 침 묻혀 가며 글씨를 쓰는 <선생 김봉두>의 최 노인, 초반 걸출한 미끄러지기를 보여주는 구식 복덕방 주인 같은 <살인의 추억>의 구 반장, 황혼의 로맨스를 즐기는 <불어라 봄바람>의 나이든 작가 역은 연기자로 인생의 반을 넘게 산 변희봉만의 공력이 느껴진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더스의 개>에서 혼자 10분 가까이 보일러 김 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신은 스님이 불경외우듯 단 한번에 줄줄 외워대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 “원래 영화를 할 생각은 없었거든. 죄다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하고 비슷한 것만 원하더라고. 근데 봉 감독은 다르더군. 보아하니 젊은 사람인 것 같은데 내가 나온 70년대 드라마를 훤히 꿰차고 있는 거야. 입이 쫙 벌어졌지. 그 후 몇 차례를 졸라대 결국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하고 보니 생각보다 재밌네. 허허.”

- 특유의 해학과 개성 충만한 연기

늦바람이 무섭다고 영화에 심취한 변희봉은 <살인의 추억>에서 그의 연기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듯하다. 완벽한 시골 형사처럼 보이기 위해 아랫니에 틀니도 끼우고 현장 감식 장면을 위해 논두렁에서 하루종일 굴러 떨어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배우는 무당이야. 신이 씌어야만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지. 남의 인생을 표현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살 떨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뿌듯해. 난 아직도 연기가 뭔지 잘 몰라. 최선을 다할 뿐이지.”

툭 튀어나온 턱과 눈, 그 눈을 동그랗게 뜰 때의 기이하고 독특한 표정. 어찌 보면 지나치게 강한 마스크인데 변희봉 특유의 해학과 개성 충만한 연기는 오늘도 여러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다. 젊은 날의 고민과 번뇌가 있어서인지 그의 연기는 인생이 뭔지를, 사람이 뭔지를 겸손하게 내비치고 있는 듯하다. 그 특유의 질박한 향기가 오래토록 빛나는 연기자로 우리 곁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3-18 20:53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