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속에 흥망이 담겨있다재무관련 자료는 기업 경영의 중요 잣대, "영수증 챙기기는 곧 돈"

[직업의 세계-32] 세무사 임순천
숫자 속에 흥망이 담겨있다
재무관련 자료는 기업 경영의 중요 잣대, "영수증 챙기기는 곧 돈"


세무사 임순천(44ㆍ세림세무법인)씨의 별명은 ‘말뚝 세무사’다. 동기들이 임씨만 보면 그렇게 외친다. ‘영원한 세무사’의 동의어다. ‘말뚝’의 내력이 만만치 않다. 상업고교 3년, 군대 행정병으로 4년, 대학에서 4년, 줄기차게 회계학만 쫓아다녔다. 세무사 자격 시험에 합격한 것이 대학 2학년 때였다. 25살 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세무사로 뛰었다. 그리고 19년. 말뚝이 점점 더 깊이 박히고 있다.

“이상할 만큼, 한번도 지겨워 본 적이 없어요. 내가 길을 잘못 든 건 아닐까, 그런 생각조차도 한번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는 주로 중소기업들을 상담하고 관리한다. 세무사가 하는 일은 세금과 관련된 모든 업무다. 직원들의 급여에서부터 기업의 매출에 대한 각종 세금을 측정하고 처리하는 일까지, 세금에 대한 모든 문제 처리를 대행한다. 자체 회계부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은 회사나 매장의 경우에는 회계문제까지 맡는다. 개인 고객도 상담 대상이다. 개인 의뢰자의 경우엔 주로 상속이나 증여세 등 부동산 거래와 관계된 양도차익 문제가 대부분이다.

“장기적으로는 그 회사가 정상적인 재무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개인 상담자가 찾아올 때도 꼭 당부하는 게 있습니다. 이런 서류를 이렇게 모아라, 이런 자료는 꼭 챙겨야 한다. 가능한 한 카드를 이용해라. 영수증은 반드시 모아둬라 등이죠. 기업이든 가정이든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현재 그가 맡고 있는 기업들은 제법 큰 제조업체부터 월 매출액이 1,000만원 정도 되는 소규모 유통업체까지 업종도, 규모도 각양각색이다. 재무자료라고는 달랑 영수증 몇 장뿐이거나 심부름하는 여직원 하나밖에 없는 영세업체도 있고, 부부 둘이서 일하는 수퍼마켓도 있다. 갈수록 세무전문가의 역할이 사회 깊이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표시다. 동시에, 그만치 세금문제가 골치 아프고 복잡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 세무사의 생명은 신뢰

세무사의 생명은 신뢰다. 특히 이것은 의뢰자가 자신의 재산 상태를 타인에게 완전히 발가벗겨 보여주는 일이다. 믿음이 가지 않으면 선뜻 재산 자료를 맡길 리가 없다. 이 때문에 세무사들의 일거리나 의뢰자는 대개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타고 이뤄진다.

의뢰를 받으면 첫 면담에서 해당회사의 현재 재정상태, 문제점, 원하는 바를 찬찬히 들은 뒤 세무사가 맡을 역할을 정한다. 계약이 이뤄지면 바로 관리에 들어간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직원들의 급여에 대한 원천 징수 등의 일이다. 월급날이 임박할 때마다 자명종처럼 세무사측에서 회사쪽에 연락해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업무를 처리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회사의 재정상태에 대한 진단까지 가능해진다. 돈의 흐름을 보면서 몇 달 뒤엔 얼마나 매출이 늘거나 줄어들지, 분기별 매출 전망까지 예측이 잡힌다. 기업의 재투자 계획이나 경영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일로만 치면 거의 햇빛을 볼 일이 없다. 주로 내근이다. 모든 작업이 서류로 이루어진다. 그 분량이 적지 않다. 공식적인 기본자료만 세금계산서, 직원 급여대장, 신용카드 지불 영수증, 간이 영수증, 전화 요금이나 전기요금,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각종 공과금 영수증 등 한아름이다.

그 한 장 한 장마다 컴퓨터의 전산자료로 옮겨놓아야 한다. 세금 계산서 하나만 해도 그 안의 숫자 하나, 문자 하나, 버릴 정보가 없다. 거래처, 날짜, 금액, 세액, 거래내역 등, 100장이면 100장, 1,000장이면 1,000장, 낱낱이 타이핑을 해야 한다. 이렇게 입력한 정보로 세금 측정 작업을 할 수 있다. 결산기 때 대차대조표의 계정과목마다 나와 있는 단 한 줄의 숫자는 바로 이 같은 땀이 만들어 낸 마지막 결과다. 한 해 동안 입력시킨 산더미 같은 영수증이 속에 숨어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오차가 나기 쉽다. 잔뜩 긴장한 채 숫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혹시 실수가 나올지 몰라 전자계산기를 동원해 매번 이중으로 확인한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무사의 지휘 아래 이 작업은 상당부분 사무직원들이 거들어준다. 상당히 따분하고 피곤한 일이다. 머리 아픈 일이라면 무조건 피하는 요즘 세태에서는 새 사무직원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매월 파악된 자료를 바탕으로 결산보고서가 만들어지면 마지막 단계에서 세무사 임씨가 최종 검토를 맡는다. 일반인들이 봐서는 그저 항목과 숫자만 잔뜩 늘어서 있는, 말그대로 ‘보고서’일 뿐이다. 그런데 임씨에게는 용도가 다르다. 숫자속에 묻힌 문제를 잡아낸다.

- 숫자와의 숨바꼭질

“한번 쓱 훑어보면 직감적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세금 공과금 항목에 약 1,000만원이 적혀있다면, 원래 세금공과금이란 건 회사의 규모 성장에 따라서 급격하게 오르내릴만한 그런 성질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전년도나 상반기 기록에 비해 금액이 너무 많다면 뭔가 도중에 착오나 문제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요. 그럼 바로 관련된 세부 자료들을 처음부터 다시 뒤져가며 확인합니다. 원인이 뭔지 정확히 추적해봅니다.”

회사 규모를 봐서는 그 해에 수익이 높았음직 한데도 서류상 별 변화가 없다거나, 반대로 매출이 변변치 않은 상태인데도 서류상으로는 큰 이익이 나 있는 경우도 바로 재확인 대상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장 나쁜 것은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속인 경우다. 정황을 분석해 본 뒤, 회사의 불순한 의도가 드러나면 더 이상의 작업을 거부하고 그대로 기업과 손을 뗄 때도 있다.

이처럼 한번에 결산보고서의 빈 틈을 읽어낼 만한 수준이 되자면 아무리 짧아도 5년은 경험이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 완전무결이란 있을 수 없다. 한번 실수가 일어나면 적게는 몇 백만원에서부터 많으면 몇 억원까지 손해배상에 몰릴 수 있다. 자료를 잘못 이해하는 등 세무사의 판단착오로 문제가 생긴 경우다. 보험에 가입해 두는 것도 이러한 사고를 대비해서다.

“단위가 아주 클 수도 있죠. 예를 들어 10억원에 10% 가산세가 나온다 해도 벌써 1억원이잖아요.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제가 아는 어떤 분도 5,000만원을 배상한 일이 있어요. 회사쪽에서 ‘당신이 이렇게 내라고 해서 냈는데 문제가 생겼으니 당신이 책임지라’고 하는 거죠. 흔한 일은 전혀 아닙니다.”

회사가 망하고 흥하는 것도 최전선에서 지켜본다. 이미 서류속에서 세무사들은 이상 징후를 읽어내는 사람들이다. 미리 위험과 대책을 예고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자신만을 과신하다 자멸을 맞는 기업인들을 볼 때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7~8년 전쯤 있었던 두 회사의 경우가 그랬다. 30대 후반의 한 제조업체 사장은 ‘너무 똑똑해서’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체를 꾸려나가다 차츰 조직이 비대해지자 당연히 한계 시점이 찾아들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임씨가 ‘회사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빨리 이렇게 대처하는 게 좋겠다’고 알렸지만, 사장에겐 전문가의 경고가 소용없었다. 자신이 망해가는 것을 자신만 몰랐다.

- 기업의 흥망성쇄를 지켜보다

50대 후반의 한 건설업체 사장도 자기 고집만 믿다가 파국을 맞았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에나 통하던 건설업계 특유의 ‘불도저 경영’만 고집하다가 앞으로는 남고, 뒤로 밑지는 상황만 길게 연장한 끝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부도가 나서 한 사람은 행방불명되고, 한 사람은 해외로 도피하는 결말로 끝났어요. 그 정도 큰 규모의 회사라면 사실상 재기는 어렵다고 봐야지요. 사전에 그만큼 충분히 충고했는데도 결국 그렇게 끝나는 걸 봤을 때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두 기업의 공통점은 경영시스템이 너무나 갖춰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임씨가 떠올리는 IMF의 잔상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 IMF 상황을 치른 뒤, 기업인들의 자세가 확연히 달라졌다. 아집과 성공에 대한 도취, 우이독경의 고집이 사라지고 경영 투명화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 세무사를 비롯해 전문가들의 조언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위기의 모진 경험이 기업을 건강하게 깨어나게 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과 경사도 함께 지켜본다. 4년 전 초라한 점퍼 차림으로 임씨의 사무실을 찾아왔던 한 기술자 출신 사장은 현재 세계 시장 제패를 노리는 코스닥 상장기업의 대표가 되어 있다. 시작할 당시만 해도 손바닥만한 허름한 방 한칸이 전부인 회사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장이 준 인상은 각별했다. 경영에 갓 입문한 상황이었지만, 그 어떤 정보나 자료도 철두철미하게 계산하고 분석해 반드시 이를 토대로 미래를 계획하고 회사를 이끌어나가려 했다. 그의 성공은 단지 운이 아니다. “아주 경영개념이 철저한 사람이었어요. 제가 보기에 자신에겐 철저하고 상대방에겐 관대한 사람들이 대부분 성공하는 것 같더군요.”

임씨가 세무사 자격증을 쥔 것은 1984년. 대학 졸업반 때인 86년 신당동의 한 사무실을 빌어 이 일을 시작했다. 현재의 독산동으로 옮긴 것이 그 이듬해다. “처음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찾아왔던 분들이 그냥 돌아가버리는 일도 적지 않았지요. 하지만 원래 어릴 때부터 어른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 성격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믿고 편하게 일을 맡기시더라요. 비교적 별 어려움 없이, 별 실수 없이 순탄하게 오늘까지 왔습니다.”

- 인간적으로 살아야 성공한다

오랫동안 기업체에서 강의를 펼쳤고, 회계수사와 관련해 경찰들을 대상으로 교육한 일도 있다. 요즘은 한 대학에 출강하는 한편, 세무사회 연수이사를 맡아 약 700명의 새내기 세무사들에게 실무를 가르치는 일로도 분주하다. 그 내용을 줄이고 줄이면 결국 이 세 마디가 남는다. 모임에 열심히 참여해라, 파일 관리를 잘 하라. 돈에 대한 집착보다는 인간적으로 살아야 성공한다.

세무사 가장을 둔 ‘덕’에 그의 가족도 귀가 따갑도록 교육을 받았다. 그의 집에는 사무실에서나 봄 직한 노란색 사무용 파일이 총총 정리돼 있다. 각종 공과금 영수증부터 계약서, 물품 구매서 등 모두 그 안에 들어가 있다. 임씨에게 워낙 철저히 훈련받은 결과다. 20년전에 팔았던 집 서류도 버리지 않았다. ‘일에서든 수입에서든 별 불만을 모른다’는 행복한 세무사, 임씨. 이번엔 당신이 ‘귀가 따가울’차례다. “찾아오는 분들마다 꼭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어떤 서류든 반드시 가지고 계시라구요. 최소한 5년 이상!”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3-24 22:16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