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인간의 감성을 보듬어주죠"소행성 다섯개에 한국인 이름 명명하는 쾌거, 별 헤는 마음으로 고도으 일상 견뎌

[한국 초대석] 보현산천문대 전영범 대장
"별은 인간의 감성을 보듬어주죠"
소행성 다섯개에 한국인 이름 명명하는 쾌거, 별 헤는 마음으로 고도으 일상 견뎌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3월 24일, 구름이 낮은 포복으로 지면을 훑고 있었다.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날 좋으면 왼쪽으로는 포항 앞바다까지, 오른쪽으로는 팔공산까지 시야가 트인다고 했다. 경북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산 6-3 보현산 천문대.

예상했던 대로 전형적인 구절양장 고갯길이었다. 해발 1,124m에 달하는 보현산 꼭대기로부터 가파르게 이어지는 경사면의 일부는 지난 여름 장맛비에 시뻘겋게 파인 속살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밑둥치가 패여 뉘엿뉘엿 드러 누운 철책을 수리하는 불도저의 몸놀림이 힘겹다. 해발 차이 때문에 단번에 귀가 멍해져 오는 길로 취재차는 용케 올라간다. 그래도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포항 앞바다에서 대구 팔공산까지는 시야에 들어 오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쌀뜨물을 팍 뿌려 놓은 듯, 종잡기 힘든 초봄 하늘은 그 같은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했다. 낮게 깔린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쾌청한 하늘인데…. 그래서 사람은 하늘을, 별을 보는 것일까. 그러다 운 좋으면 윤동주 시인이 되는 걸까.

한국에서 가장 찬란한 별밤을 맞을 수 있는 곳이다. 높다랗게 솟아 오른 운무가 세상과의 은폐 작업에 들어 가면, 세상의 번뇌와는 완전히 결별된다. 거기, 전영범(45ㆍ이학박사) 보현산 천문대장이 연구원 8명과 함께 지낸다. ‘보현산 천문대 준공 기념 우표’가 발행된 1995년 이래 출퇴근과 철야 근무를 겸하며, 이 곳의 터줏대감으로 모든 일을 관장해 오고 있는 터다.

“어젯밤에 찍은 127파섹 거리의 NDC5053(구상성단) 변광성 사진이예요. 아, 광년으로 따지면 400광년 거리죠. 참고로, 여기서 북극성까지는 1,000광년입니다.” 가장 빠르다는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동네 이정표 보듯 하는 사람이다. 까만 바탕에 크고 작은 흰 점들만 가득할 뿐, 일반인이야 설명 없이는 알기가 난망하다. 문자 그대로 밤을 하얗게 지새기 일쑤라, 전 박사는 오후에야 일어나는 날이 허다하다.

- 8m 급 망원경에 도전

이곳 관측팀이 구동중인 국내 최대 규모의 직경 1.8m짜리 광학 망원경이 최근 빛나는 업적을 성취했다. 흔히들 생각하듯 렌즈가 아니라, 오목 거울이다. 렌즈를 통해 빛을 집적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하나의 점에 모은 뒤 다시 쏘는 역할을 하는 거울이다. 그렇게 모아진 빛의 정보를 바로 아래인 2층의 분광실에서 분석ㆍ종합한다. 광선 파장 대역에 행여 영향을 미칠까, 항상 0.2도를 유지해야 하는 곳이므로 사람의 출입은 엄금돼 있다. 그 모든 일을 관장하는 조종실인 1층에는 수퍼 컴퓨터 2대와 각종 장비들이 연구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여기서 새 별을 다섯 개나 발견해 한국 사람의 이름으로 명명 ,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쾌거가 일어났다. 그 속내를 파고 들면 더욱 큰 놀라움이 드러난다. 우선, 국제천문연맹(IAU)이 3월 16일 한국인의 이름으로 최종 승인한 소행성 다섯개부터.

과기부 산하의 국가지정연구실 중 지구 접근 천체 연구실(Near Earth Object Pretrol)이 2000~2002년 보현산천문대의 망원경을 이용해 발견, 국제천문연맹으로부터 최종 승인을 얻은 일련의 소행성들이다. 최무선, 이천, 장영실, 이순지, 허준 등 일찍이 과학에 눈 뜬 위대한 선각자들의 이름이 곧 별의 이름으로 된 것이다.

또 하나는 그 같은 업적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망원경이다. 이 망원경은 본체에 선명히 찍혀 있듯 텔라스(TELAS)라는 프랑스의 컨소시엄 회사가 만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것은 그 상표뿐이다. 이 회사는 원래 8m급 대형 망원경 전문 제조업체라 한국측의 주문을 정확히 충족시키지 않았다. 완전 한국형을 만든 까닭이다.

자신들의 주종목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시험용 제품을 만들어 보낸 프랑스측의 탓이다. 그들은 게다가 주문자의 사정을 무시, 한국의 자연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우까지 범했다. “천체 관측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악조건이죠. 우리는 습도가 높은 데다, 흐린 날이 많아요.” 원래 고가의 정밀 제품은 수리에 엄청난 품을 들이는 게 상식인데다. 프랑스 사람들은 행여 기술이 새나갈까 봐 세밀한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팀은 한술 더 떴다.

우리는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동원, 망원경 구동부와 관련 소프트웨어 등 필요한 지식의 절반 이상을 자체의 힘으로 습득ㆍ축적했다. 사실상 직접 제작이었鳴?하는 말이 여기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죠.” 3억원까지 가격이 추정되는 현재의 망원경은 그의 표현을 빌면, “껍데기 제외하고는 다 바꾼 셈”이다.

이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와 시행착오는 결국 한국 과학의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이제 세계적 수준의 8m급 망원경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습니다.”지금보다 3배는 더 큰 돔이 필요할 뿐 아니라, 망원경의 뒤틀림을 상쇄시켜 줄 구동기만도 100여개는 있어야 한다. 현재는 팬티엄급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8m급에서는 수퍼 컴퓨터 두 대는 있어야 한다고. 망원경이 수천, 수만 광년으로부터 오는 별빛을 추적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인 터에 그 같은 정밀한 구동은 수퍼 컴퓨터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 “별을 보는게 가장 큰 즐거움

“보는 재미”라 했다. 인간의 인지 범위를 넘어 선 까마득한 곳에 있는 성운 ‘IC433’이 내뿜는 빛의 예술을 포착한 슬라이드에 감탄하고 있던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기초 과학 발전, 자료 축적, 정보화 등 낯익은 수사들이 동원될 법도 했으나, 그는 그렇게 일축했다. 그것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대해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어느 등반가의 초월적 태도를 언뜻 닮아 있었다.

전 박사는 “본격 연구에 들어가기 직전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이렇게 찍어 둔 것들을 다 합치면 하나의 천체가 된다”며 “낯선 천체 현상을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일몰 후 20여분 뒤, 깜깜해 지기 직전까지의 시간에 관측 가능한 광경을 일기 쓰듯 모아 하나의 거대한 천체 사진으로 재구성한다는 말이다. 비록 자기 연구의 본령은 아닐지라도, 즐거움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나는 별을 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전 소장은 단언한다. 원래 부산대 물리학과 79학번이었던 그는 3학년때 천문학 수업을 듣고 전과를 결심했다. 이어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석ㆍ박사를 따 낸 그의 주요 목표는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 연구에 있다. 이번에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 받은 소행성 연구는 그 길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셈이다.

망원경실 한쪽 구석에는 이런 글귀가 보일 듯 말듯 붙어 있다. ‘옵션-충분한 간식을 준비합시다.’외딴 산 정상에서 하늘만 보고 사는 연구원들의 일상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고즈넉한 이 곳도 북적일 때가 있다.

작년 어린이날, 오후 2시부터 자정까지 이 곳을 개방한다는 소식에 무려 6,000여명이 들이 닥쳤다. 북적대는 관광 버스로, 때 아닌 주차 전쟁까지 벌어졌다.어스름은 물론 대낮에도, 목성이나 통성 같은 밝은 행성은 희미하게 볼 수 있다는 이유뿐 아니라, 탁 트인 경개와 어우러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시인들을 끌기에 족했다.

그러나 오는 5월은 다르다. 군데군데 유실된 도로 사정으로 천문대에서는 제대로 치를 수 없게 된 터라, 장소를 옮겨 15~16일에 펼치기로 했다. 산자락의 ‘별빛마을 쉼터’와 박물관 등 어느덧 제법 관광지의 구색이 완연한 초입의 마을에서 영천시 주관으로 치를 예정인 ‘별의 축제’가 그것이다.

자연과 멀어져 가는 것만 같은 시대이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별을 보고 싶어 한다.

그에게 천문학을 홀대했을 때의 부작용이 무엇인지를, 딱딱하게 물었다. 다분히 ‘기자적으로’ 던진 우문은 의표를 찌르기라도 하듯, 대단히 윤기 넘치는 운문이 돼 돌아 왔다. “삶의 질에서 굉장한 차이를 야기시킵니다. 천문학이란 결국 인간의 감성에 관계된 문제가 아닐까요? ”그는 결국 인문학적 가치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 청약에 만사 팽개치고 달려 들어 아우성치는 우리, 육안으로 밤하늘의 별을 본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됐던가?

‘사성백무독래영(使星百武獨來瑩)’. 뜻밖에도 연구실 한쪽벽에는 붓글씨로 일필휘지한 칠언절구 한시가 가득하다. 부산에 사는 한학자인 부친 가산(嘉山) 전언진(68) 선생이 아들이 있게 될 천문대의 준공에 맞춰 내린 작품이다. 여기서 ‘백무’란 ‘하쿠다케’라고도 불리우는 혜성을 가리킨다.

준공식 당일 그 별이 밤 하늘 한쪽에서 천체쇼를 펼치리라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위해 친필로 하사한 한시 중 일부다. 해석하면, ‘사신별 백무가 홀로 와서 밝혀 주네.’ 그 빛은 아들 전영범씨 팀에 의해 오목거울 렌즈에 모여져 분석되고, 컴퓨터를 통해 인간의 언어로 번역됐을 터이다.

외진 곳이라 특정한 날이 아니면 연구자나 단체 견학자 등이 아니면 별 달리 내왕객도 없다. 그러나 행여 천체를 연구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천문대측은 드문드문 설치된 표지판에는 이런 메시지가 씌어져 있다. ‘천체 관측중, 상향등 끄시오.’ 그래서일까, 보현산에서는 겸손을 배우게 된다. 거기서 인간은 한낱 먼지만도 못 한 존재일 터이므로.

인터뷰 도중 시민에게서 전화 문의가 왔다. 엿들어 본 즉, 태양을 보는 법과 찍는 법에 대한 질문이었다. 전 소장은 충분히 설명해 줬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는 집 한 채만한 소행성 B612호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낯선 별의 존재 또는 존재감에 대해 작가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라고 써 둔다.

밤잠까지 반납하고 천체의 진리를 궁구하는 전 소장에게는 몹시 주제넘은 예측이겠지만, 만일 그 시민이 B612호에 대해 물어 왔다 쳐도, 그는 또 웃으며 그 별을 보는 법에 대해 일러 주지 않았을까?

현재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2007년을 목표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구축 사업을 추진중이다. 연세대, 울산대, 탐라대 등지에 지름 20m의 첨단 안테나를 설치하는 이른바 ‘한국우주전파관측망’ 사업을 2007년까지 완수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현재 지상 최대의 광학망원경보다 1,000배가, 우주 망원경보다는 수십배가 정확한 천문 자료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4-03-31 16:01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