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루트의 목줄을 죄라'교묘한 수법, 험악한 현실과의 숨막히는 한판 승부엄청난 액수의 불법 외국상품 단속에 외박을 밥 먹듯

[직업의 세계-35] 서울세관 조사국 조사계장 이생기
'밀수 루트의 목줄을 죄라'
교묘한 수법, 험악한 현실과의 숨막히는 한판 승부
엄청난 액수의 불법 외국상품 단속에 외박을 밥 먹듯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울세관 5층. 방문객을 맞는 그의 주변으로 자리 곳곳이 비어있다. 직원들의 점심 시간이 길어진 걸까?

“ 팀원들은 지금 압수수색 나가 있습니다. 외국에서 다이아가 밀수된다는 정보가 있어서 용의자의 집과 가게를 뒤지는 중입니다. ” 이생기(53)씨는 밀수사범을 다루는 전문 조사관이다.

조사관 생활만 올해로 15년째다. 현재 서울세관 조사국 제1조사관실 소속 조사계장으로 현장을 뛰고 있다. 해당 분야가 밀수문제라는 것 뿐, 강제 수사권과 사법권 등 실질적인 권한과 역할은 경찰과 똑같다. 서울세관에 온 이후만 계산해도 지난 6년간 총 213건, 약 227억원 규모의 밀수품을 적발하고 처리했다.

“ 나간 분들이 저녁에 돌아오면 대충 큰 일은 끝난건가요? ”

“ 아뇨.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기초조사는 이미 오래전에 있었고, 오늘 갖고 들어올 관련 장부나 메모지 등 모든 자료를 가지고 본격적인 분석과 검토에 들어갑니다. 현장의 밀수품보다도 배후의 최종 공급책이나 유통경로 등을 밝혀내는게 특히 중요합니다. “

거액의 밀수사건을 처리한 지 한 달도 안 됐다. 지난 3월, 이씨팀은 녹용 1.5톤, 비아그라 7만7천정 등 중국 PVC 파이프 수입을 내세워 시가 18억원 상당의 녹용과 인삼, 비아그라를 밀반입한 사건을 맡은 바 있다.

첫 정보를 입수한 것이 2월 29일이었다. 그후 조사에 착수하면서 중국에서 물건이 출발하는 시각과 배 편까지 다 꿰고 있었다. 이윽고 물건이 국내에 입항한 뒤에도, 행여 중간 경유지인 부산항에서 화주가 물건을 내릴 가능성까지 대비해 이씨팀은 부산항에서 밤새 잠복하며 동태를 감시했다. 목적지인 울산항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확인한 것이 새벽 2시반이었다. 부두에서 직접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사실을 확인한 뒤 원래처럼 봉했다.

- 밀수꾼들과의 치밀한 두뇌 싸움

이후의 작전 일부는 수사기법의 보안을 위해 생략하기로 한다. 마침내 화주가 화물을 찾아가는 날, 화주로부터 운송을 부탁받은 컨테이너 기사의 차량 뒤를 따랐다. 100년만의 폭설로 전국이 아수라장이 된 날이었다. 악천후를 무릅쓰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몇 시간을 기다려도 화주가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뒤 화주의 연락을 받은 컨테이너 기사가 몇 번이나 다른 약속장소로 찾아갔을때도 여전히 화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듯 했다.

오전 11시에 울산을 출발해 이튿날 새벽 6시가 될 때까지 꼬박 그렇게 있었다. 할 수 없이 밀수품을 세관으로 가져와 정식으로 검사를 실시하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끈질긴 역추적 끝에 한달뒤에야 가까스로 실체를 모두 밝혀냈다. 주범은 외국으로 도주해 현재 지명수배된 상태. 밀수를 도왔던 3명은 검거되었다.

그래도 지난해 봄에 치른 사건보다는 수월했던 편이다. 당시 이씨팀은 경찰청의 도움으로 양주 밀수사범을 현장에서 붙잡았다. 차량으로 운송중이던 발렌타인 1,500병과 이를 사들이고 팔려했던 3명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후가 난관이었다. 무조건 잡아떼는 피의자들 때문에 숨어있는 실제 공급책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증거자료라고는 양주 박스 뿐이었다. 그후 모 공기관에 숨어있던 주범을 마침내 찾아내 관련자 총 3명이 구속되기까지 이씨팀이 치른 싸움은 고달프고도 집요했다.

추적과정이 워낙 길고도 복잡해, 최초의 힌트만 간단히 밝힌다. 양주 박스에 찍힌 바코드와 일련번호가 실마리였다. 이 단서를 시작으로 이씨팀은 두달간 고전을 치뤘다. “ 우리 경제질서를 지킨다는 보람이 있습니다. 관세를 포탈하는 것은 물론, 제대로 검사받지 않은 불법, 불량제품들이 유입돼 국민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해를 주는 것도 막는 일이지요. “

밀수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면서부터 조사관들의 활약은 시작된다. 정보는 여러 경로를 통해 잡힌다. 각자 발굴해 둔 정보원들로부터 제보를 받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조사관들 자신도 수시로 시장동향을 파악하며 이상신호를 살핀다. 달력만 보아도 웬만한 흐름은 미리 읽을 수 있다. 추석 무렵엔 수입 제수용품이, 김장철이 다가올 땐 수입 고추나 마늘 등이 밀수범들의 주요 타겟이 된다. 요즘같은 봄철엔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면세 맥주가 밀반입될 가능성이 높다.

정보가 포착되면, 뻠?보고를 거친 뒤 1차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문제의 현장에 직원을 보내 실태를 확인한다. 밀수품의 공급처로부터 유통경로, 공급책의 인적사항 등 최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수사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조사팀은 대개 5인 1조로 구성돼 함께 움직인다. 계획된 D-day에 맞춰 검거에 나선다. 이때는 수갑과 함께 3단봉, 전기충격기, 가스총 등도 만약의 상황을 위해 갖춘 상태다.

사건을 마무리하기까지 몇달씩 걸리는 일도 수두룩하다. 과거에는 인삼, 녹용, 밍크, 보석, 금괴 따위가 전부였던 밀수 품목도 이제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농수산물, 마약, 공산품, 건강보조식품 등에다 가끔은 총기류까지 끼어들기도 한다.

- 현장서 칼에 찔려 죽기도

밀수 수법도 점점 교묘해진다. 은폐 방법만 해도 다리미, 전기밥솥 등을 해체해 밀수품을 숨긴 뒤 재조립하거나 심지어 바깥에서 보면 말짱한 성경책이지만 펼치면 한가운데만 종이를 잘려진 채 금괴가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이씨가 맡고 있는 수출입 화물의 경우엔 특히 사람까지 숨는다는 데 더 큰 어려움이 있다. 무역업체를 가장해 정상적인 수출입처럼 위장시켜 밀수를 저지른다. 와중에 밀수범인 자신의 실체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가명에다 허위 주소, 휴대폰마저 소위 ‘대포폰’을 이용하는 등 겹겹으로 베일을 친다. 이를 밝혀내기 위한 조사관들의 두뇌싸움도 함께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

“ 그렇게 고생해서 검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땐 허탈감이 몹시 크지요. 또 주변 정황상 분명히 이 사람이 범인인데도 본인이 계속 부인해 할 수 없이 스스로 자백하도록 유도하는 수 밖에 없을 때 특히 어렵습니다. “

‘한남동 땅굴 사건’이 있다. 작년 6월에 있었던, 웃지 못 할 사건중 하나다. 한남동 외국인 아파트 근처, 미군부대 담장 바로 바깥에 한 커피숍이 있었다. 간판은 커피숍이지만 실제로는 인근 미군부대 PX로부터 맥주를 빼내오는 아지트였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발했던 이 용의자는 가게 바닥을 뚫고 땅굴을 만들어 담장 바로 안쪽에 있는 미군 부대내 컨테이너까지 직통 연결시켰다.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해 심지어 탄광처럼 레일까지 깔았다. 이 비밀통로를 통해 주한미군들에게만 판매가 허용된 면세 맥주를 부지런히 바깥으로 실어 나르며 차익을 챙긴 것이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씨팀이 검거한 중간 판매책만 총 27명에 이르렀다. 맥주가 약 5만8천 상자, 와인이 약 4천 상자 등 총 20억원대 규모에 달하는 대규모 관세 포탈 행각이 드러났다.

달아난 주범을 잡는데 두 달이 넘게 걸렸다. 9월 1일 마침내 자신의 어머니 집에서 나오는 용의자를 체포하려는 순간, 액션 영화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승용차로 달아나는 상대의 도주로를 차단하려 이씨팀이 차량으로 앞을 가로막자 멈추기는 커녕 그대로 돌진해 조사관들의 차를 들이박고 내뺐다. 계속 쫓아가며 다른 차량으로 재차 가로막았을 때도 같은 광경이 반복됐다. 아찔한 자동차 추격전과 격투 끝에 어렵게 주범을 붙잡았다.

“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가 많죠. 아주 오래 전엔 조사 도중 칼에 찔려 사망한 조사관도 있었고, 이 한남동 사건때는 특히 조직폭력배와도 연결이 돼 있어 도중에 조직폭력배로부터 ‘당신한테는 가족이 없느냐’는협박전화가 걸려 오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달라졌지만, 옛날만 해도 사안이 큰 경우 밤샘 조사가 잦았다. 새벽쯤 되면 피의자도, 조사관도 피차 녹초가 되곤 했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그 틈을 이용해 달아나기를 시도하는 피의자들도 있었다. 잠 한숨 못 잔 채 근무자가 출근하는 아침 9시가 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조사내용을 컴퓨터 작업으로 옮기는 사이, 잠시 담배를 피라고 소파에 앉혀 둔 피의자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으면 그만큼 황당하고 가슴 내려앉는 일이 없었다.

- 밀수범의 가족, 궁핍의 끝

이씨는 1970년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세관에 들어선 것이 1976년부터다. 김포세관 등을 거쳐 1998년 서울세관 식구가 되었다. ‘보세과’에서 맨 처음 출발해 휴대품 검사, 수출입 화물 검사, 마약, SOFA 관련 업무 등, 조사국으로 오기 전 세관내 업무란 업무는 거의 모두 거쳤다. “ 조사관이 된 뒤 처음엔 실수도 많았지요. 절차나 규정을 잘 몰라서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잠복을 하면서 범인인 줄 알고 계속 뒤를 좇았는데 나중에 우연히 고개를 휙 돌리는걸 보니 딴 사람이었던 일도 있구요.(웃음)”

가족의 이해 없이는 편치 않을 일이다. 업무성격상 수시로 출장이 뒤따른다. 지난달만해도 지방출장으로 1주일을 통째로 외박했다. 일요일이든 명절이든 상황만 터지면 바로 달려나가야 한다. 마음 안타깝기는 밀수범의 가족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 몇억, 몇십억원씩 밀수를 하는 만큼 밀수범들이 다 잘 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잘 사는 집이 별로 없습니? 범인을 구속시킨 뒤 가족에게 연락해 부인이 찾아올 때 보면 부인 행색이 다들 아주 초라합니다. 밀수로 번 돈마저 정상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위해 쓰지 않고 개인적인 유흥이나 환락으로 탕진한 거지요. 그런 모습을 볼 때 참 안타깝습니다. ”

고교 졸업 후 공무원이 된 그는 주경야독으로 공부, 자력으로 대학공부를 마친 데 이어 '88년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학구파다. 관련 전문인들을 대상으로 ‘피의자 심문 기법’등을 강의하는 한편, 일주일에 한번씩은 대진대에 출강해 ‘국제 매너’를 가르치는 예절맨이기도 하다.

15년간 그가 치른 흥미진진한 사건 사고들이 많지만, 나머지는 다른 기회를 기약하거나 또는 직접 조사관이 되어 체험해보시기를! 경제와 범죄, 은폐와 추적, 긍지와 위험이 거미줄처럼 교차하는 이 길의 지망생들을 위해 7~9급 과정의 관세직 공무원 시험이 열려 있다.

글ㆍ사진/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4-22 14:08


글ㆍ사진/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