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든 강의실이든, 너희가 있으면 간다화제의 무대 ' 상사주'에 더위가 ' 싹'주연 배우, 작가와의 가연이 거둔 결실

[한국 초대석] 한양대 최형인 교수
무대든 강의실이든, 너희가 있으면 간다
화제의 무대 ' 상사주'에 더위가 ' 싹'
주연 배우, 작가와의 가연이 거둔 결실


최형인(55ㆍ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선생이 특유의 활기로 수강생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학사 일정상으로는 전학년이 듣는 인기 과목 ‘연기 실기’가 막 끝나긴 했다. 그러나 방학중의 무학점 특강이라도 좋다는 50여 학생들의 눈망울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진행되는 강의다. 오뉴월 더위보다 더 뜨거운 현장의 열기가 모든 의문을 단 번에 풀어 주었다.

그 곳, 한양대 인문관 지하소극장의 움직임은 6월 23일 오후 4시가 되자 평소와 달라졌다. 며칠전부터 바싹 따라 붙어 취재중이던 EBS-TV의 특집 프로 ‘문화 –문화인’(권오승 PD) 제작팀이 나와서 펼치고 있던 수업 풍경 녹화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김지하(시), 함신익(지휘), 안은미(무용), 차범석(극작) 등 문화예술계의 이슈를 만들어 다니는 인물들을 심층 접근해 왔던 이 프로에 이번에 선생이 주인공으로 나와 7월초 제 43회분으로 방영된다.

이제 겉보기에 몸매와 말투는 수더분한 아주머니이지만, 또박또박한 말투와 몸짓은 전혀 흐트러진 구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니, 잘 나간다는 배우 뺨치는 명확한 딕션(말)과 게스투스(몸짓)에다 연륜까지 얹혀져 또 하나의 개성적 캐릭터가 수업이라는 또 달군 무대에서 창출되고 있었다.

한 편의 즉흥 드라마라 해도 손색 없을 정도로 학생들을 휘어잡는 그의 수업 광경은 이미 지난 2월 KBS1 TV의 ‘스승과 제자’를 통해서도 일반 공개된 바 있다. 그 말과 몸짓에 학생들은 몰입한다. 배우 출신 교수로서의 강점이 톡톡히 살아나는 셈.

녹화팀의 한 차례 북새통은 끝났다. 우르르 몰려 나가는 학생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선생은 인쇄물 뭉치를 꺼내 들었다. 한 영화사에서 부쳐 온 시나리오였다. “7월 중순에 크랭크인 하는데 마음에 드는 배역이 있는지 검토해 보래요.” 신축 도서관 앞의 자귀나무가 지어내는 얕은 그늘밑에서 빨리 훑어 본다. 배우로서 여전히 현역이라는 징표다.


- 방학 특강 현장, 한 판의 무대를 보는 듯

연극이란 결국 배우의 것이다. 제 아무리 테크놀러지가 발달한다 해도 텍스트를 쓰는 사람(작가)와 무대에 살아 있는 사람(배우)가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게 바로 연극이다. 배우가 연출자와 함께 무대에서 현실화시켜 내는 희곡이 곧 연극이다. 대학로의 극장 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공연중인 ‘상사주(相思酒)’ 역시 그렇다.

이 연극의 출발점은 1992년의 모노드라마 ‘봉숭아 꽃물’의 무대였다. 문예회관소극장과 연우무대 등의 객석을 휘어 잡았던 연기로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이 따냈던 무대다. “남북 분단이란 어둡고 심각한 문제를 한 소녀의 사적(私的)인 이야기로 치환시킨 점이 참 좋았어요. 요즘처럼 통일이란 문제가 피부에 닿아 오는 요즘 같은 때 한다면 더 좋을 텐데….”

이번 작품은 독특하다. 연극 동네란 게 원래 끈끈하고도 질펀한 인간 관계로 버텨나가는 데지만, 이 무대는 선생이 그 동안 엮어 올린 그물망이 얼마나 탄탄한 것이었던가를 증명하는 자리다. 선생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작품이 보다 각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은 두 개의 인연이 만들어 낸 무대다.

소설 ‘봉숭아 꽃물’의 원작자가 바로 이번 작품의 각색자 김민숙씨다. 그 일을 계기로 한 살 차이(선생이 연하)인 두 사람은 “ 집안 경조사는 다 챙겨주는 십년 친구”가 된 것. “개 기르는 것 싫어하다 지금은 누구랄 것도 없이 좋아하는 것까지 꼭 같군요. 개들끼리는 종종 싸우지만….”

“같이 놀러 다니다, 10년전 뉴욕에서 공연되는 걸 본 이후 언젠가 한 번은 우리말로 올려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이 작품이 생각나더군요.” ‘에쿠우스’로만 알려진 피터 셰퍼의 유일한 희극 작품이다. “셰퍼 하면 에쿠우스라는 고정 관념도 깨고 싶었고, 배우의 연기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이 아쉬웠던 터였어요.” 배우로 출발했다는 사실이 새삼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그 영광의 배우는 누가 됐을까?

임유영. 방송과는 인연이 먼 연극 배우라 일반들과 낯을 트지는 못 했지만, 그 연기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에게는 쉬 잊혀질 수 없는 신인 여배우다. 아 참, 신인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1996년 ‘맨발을 공원을’에서도 주역으로 나왔으니. 그러나 그 작품은 그에게 불운의 무대였던가. “교통 사고를 당해 너댓 차례나 대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배우에게 특히 중요한 얼굴 부위는 함몰되다시피 했죠.”

그런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바람에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하더라는 것. 주변 사람들의 호의적 무관심과 본인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그의 제자, 임유영은 재기에 성공했다. “배우를 하겠다고 본인이 그렇게도 말한 걸보면 배우란 (머리가) 돌지 않고는 못 하는가 봐.”짐짓 그렇게 말하는 의뭉스러움, 그러나 눙치는 말은 아니다.


- “연극 품위, 스스로 떨어뜨리는 자들은 죽어야!”

그는 “서로 감정이 통하지 않으면 못 하는 게 연극”이라 했다. 이 즉물적이고 무매개적인 심리 구조는 21세기의 일반적 심리로는 쉬 이해되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은 연극이라는, 반시대적 행태를 존립하게 하는 심리적 구조를 통찰하고 있다. 연극은 이 시대에까지 왜 존립하는가, 누추하게? 이 지점에서, 연극의 존재론적 의미를 짐짓 낮춰 물어 보았다. “이제 연극은 여타 장르의 인재 풀(pool) 정도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질문을 받은 선생, 선선하게 받았다. “맞아요. (단, 그 같은 현상을)좋게 봐야죠”라고. 그러나 단서 조항을 단다. “연극 특유의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존립하는 게 점점 어렵게 돼 가요. 특히 순수 연극인들은 경제적으로 버티기 힘들어가는 이 시대 한국적 상황 탓도 크죠.”이야기는 한국 연극의 존립 구조로 자연스레 넘어가고 있었다. 연극이 춥고 배고프다는 것은 다 아는 일.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비영리 단체(non-profit organization)의 후원이죠. 연극에서는 기부나 메세나 운동의 혜택이 전무해요.” 그렇게 된 게 연극 후원자에 대한 세재 혜택 방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김민기씨의 극단 학전이 그나마 이뤄낸 ‘1단체 1년 후원’이라는 제한적 원칙이 타파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 방안으로서, 그는 “ 현행 연극 티켓값이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파출부도 한 시간에 2만원 아닌가요? 연극 티켓 가격은 5만원은 돼야 한다고 봐요.” 한국인이 연극에 대해 갖고 있는 타성적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브로드웨이의 티켓갑은 100 달러 이상, ‘난타’가 간 오프 브로드웨이는 60 달러예요.”한국 연극의 악순환은 표값이 오르기 전에는 해결이 난망하다고 재삼 강조했다.

그렇다면 섹스 등의 깃발을 흔들며 연극의 품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사람들은? “죽어야지!”과연 연극에 관한 한, 가차 없다. 그런 그를 후학들은 유독 따른다. “나의 투사적 이미지 때문에 그런가 봐요. 적어도 유명 배우나 불러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 동양인 최초의 미국 연극대학 석사

설경구, 유오성, 권해효, 장동건, 이영애, 박광정, 박상원, 채시라, 임은경…. 모두 그의 지도를 받고 배우로 거듭 난 사람들이다. “일단 영화판에 갔다 하면 너무 바빠지죠. 나는 조재현 같은 배우가 기특해. TV와 영화를 하면서도 ‘칼면’이나 ‘에쿠우스’ 같은 연극 무대에 서니까요.” 그가 권해효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 역시 같은 이치다.

그들처럼 연극 무대라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 올 줄 아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그는 “자신의 생(生)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 편 했다 하면 6달은 쉬어야 재충전되는 연극 특유의 생리 구조에서 단련돼 온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그는 1969년 연세대 교육학과 재학중 미국으로 건너 가, 뉴욕ㆍ필라델피아 등지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동양인 최초로 연기 석사 학위(뉴욕대 연기학 MFA)를 따냈다. 1984년, 공부를 모두 끝내고 한국에 안착한 그에게 언론은 서슴없이 ‘국내 최초의 연기 전문가’라는 별호를 얹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길이 결국 교육에 있음을 안다. “진정 사람으로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최대의 목적이라면, 연극은 하나의 유효한 방법이라는 믿음이예요.”최근 들어 사상과 표현의 걸림돌이 거의 전방위적으로 해제된 한국의 변화는 연극적으로 분명 순기능을 한다는 믿음이다.

“우리의 연극을 보고 표정들이 순수해졌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연극론을 막 펼치려 하는데, 예기치 못 한 훼방꾼이 끼어 들었다. 3년 전 뉴욕에 뮤지컬 공부 간 제자가 밤잠이 잘 안 오는 모양이다. 얼마 안 가 선생의 말투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반가운 이웃 만났을 때 그렇듯 코맹맹이로 바뀌었다. “거기 가 봤자 꽝이야 꽝. 맨땅 헤딩 하다 마빡 깨지는 데야. 막판 가서는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걸린다구.”


- “ 컬렉트 콜로 해”… 한국 연기자의 대모

어떻게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한 번 서 보려 기웃거리지 말고, 여기 와서 정당하게 하라는 당부였다. “내가 안 해 봤냐? 절대 걔네(미국인)들이 너 때문에 자리 안 만들어줘. 인생 낭비 마.”구구절절 감정이 그득하다. 그런데 제자로서는 어쩌면 다음 말이 더 고마웠을 지도 모른다. “콜렉트 콜로 해도 좋으니, 전화해.”

당초 6월 27일까지만 하려던 ‘상사주’는 오뉴월에도 보조 좌석을 까는 등 만원 사례를 빚는 등 뒤로 갈수록 호응이 따라 7월 25일까지로 연장키로 결정, 상연중이다. 자기 극장이 없는 극단이라면 누리지 못 할 기쁨이기도 하다.

1990년 펴냈던 ‘백세 개의 모노로그’을 비롯, ‘연기 여행’ 1ㆍ2편은 배우 최형인의 연극적 깊이가 녹아 있던 책이었다. 이제 교수 최형인은 다시 그 이름에 값하려 한다. “앞으로 연기에 대한 종합적 서적을 펴 내고 싶군요.” 강단과 무대 등 현장 작업 줄 잇고 있는 터라, 그 꿈이 언제 이뤄질 지 꼭 집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연극만들기, 인간 대 인간의 부대낌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한국 연기자의 대모(代母)로 생각하므로, 즐겁게 생활해 나가죠.” 군더더기 한 마디 없이 자신의 현재를 압축하는 능력도 과연 큰 복이다. 현장감이 팍팍 살아 오는 직설 화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전달할 줄 아는 능력 역시.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6-30 15:19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