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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조건] 이채욱 GE한국 사장
주어진 환경서 최선…한걸음씩 정상에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밑바닥서 다양한 경험 인생의 밑천
늘 감사한 마음과 겸손한 자세, 삼성·GE 두 곳서 모두 우뚝 서


125년 전 에디슨이 만든 회사 GE, 그 지분의 31%만 팔면 한국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모든 기업을 살 수 있다는 회사, 그 회사의 한국 책임자가 이채욱 GE한국 사장이다. 원래 그는 삼성맨이다. 삼성물산으로 입사해 인사분야를 거쳐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재직 중 삼성-GE의 의료기기 합작회사의 경영 책임을 맡게 되면서 GE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 합작회사는 누적된 적자로 폐업 위기에 처했는데, 그가 구원투수로 투입되어 알짜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그에게 얽힌 신화 이야기 하나. 어려운 회사를 멋지게 재기시키는 그를 눈여겨 본 GE는 그에게 눈독을 들였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ㆍ태평양지역 사장으로 그를 영입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삼성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래서 파울로 프레스크 부회장 (현 피아트 자동차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편지를 썼다. “CW(이채욱 사장의 영문 이니셜)를 GE에 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것이 힘들면 GE가 비용을 다 댈 테니 몇 년간 빌려 주면 고맙겠습니다.”


- GE측 이건희 회장에 친서 보내 영입





삼성 입장에서는 이 사장을 놓치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GE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이 회장은 고심 끝에 이 사장을 GE에 빌려주기로 했다. 덕분에 몇 년간 그는 삼성의 호적을 갖고 GE 사장으로 일을 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삼성과 GE처럼 세계적인 기업이 서로 끌어가려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시아 태평양 사장을 거쳐 그는 GE한국의 사장이 됐다. 그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 책임자를 한 덕에 많은 한국인들은 글로벌하게 일할 기회를 가졌다. 드물게 그는 한국기업과 외국계 기업에서 동시에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이채욱 사장은 열정적이고 오픈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다. 그렇게 바쁜 사람이 대학생을 위해 3시간 동안 강의를 해 준 것도, 아무런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거리낌없이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는 것도 신기하고 궁금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매료되었고 점점 궁금해졌다. 강의 후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스’를 했다. 하지만 스케줄을 잡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빽빽한 수첩에는 잠시의 틈도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빠른 것이 2주 후였다. 그것도 이른 아침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다할 입장이 아니었다.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는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물론 본인은 전혀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밑바닥 경험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은 그의 큰 자산이다. 덕분에 그는 강하다. 웬만한 고생은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촌사람이다. 경북 상주 농사꾼의 아들이다. 집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는 데 애로가 많았다. 고등학교는 장학생으로 다녔는데 2학년 때 장학생에서 탈락되어 몇 달간 쉰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철공소를 다니면서 기술을 배우려 했다. 다행히 의사 집 아들 가정교사를 하면서 복학해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고교 시절 그의 꿈은 5급 공무원이었다. “자전거에 도시락을 매달고 출근하는 공무원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그의 고백이다.


- 고교시절 5급 공무원이 꿈

공부를 잘 했던 그는 영남대 법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한다.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렸다. 등록금은 면제를 받았지만 생활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잣집에 가정교사로 다시 취직(?)을 했다. 고교 시절부터 해온 과외선생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비록 시골 출신이지만 그는 고2 때부터 가정교사를 한 베테랑 아닌가?

이 사건으로 그는 “학벌이나 가정도 중요하지만 경력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도 해보고, 무전여행도 해 보고, 돈을 벌기 위해 월남전에도 지원해 근무해 보고…. 그는 또래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런 것들이 쌓여 그는 유연하면서도 강한 사람으로 변한 듯하다.

그는 기독교 신자이다.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며 나를 인도하고 내게 손을 내민다” 는 시편 23편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그래서인지 감사함이 몸에 배어 있다. 가장 힘든 시절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도 별로 힘들지도 않았고 실망한 적도 없었다고 대답한다. “저는 늘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철공소 직원을 하려던 사람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면 서기가 꿈이었던 사람이 대학까지 나와 삼성에 들어가게 되고 과장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게다가 글로벌 기업의 CEO까지 되었으니 저는 늘 감사할 뿐입니다.” 그는 삼성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던 때가 가장 기뻤던 순간 중에 하나라고 기억한다. 참으로 소박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 부드러운 사람이다. 마음이 약해 평생 독한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간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쉬운 그런 것이 안 보인다. 세상에 나보다 잘 난 사람은 없다는 거만함, 탐욕과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함에서 오는 원망, 남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는 분주함, 경쟁에 지쳐 나타나는 피곤함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강점이 있다. 격의도 없고 무언가 감추는 것도 없는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을 갖고 있다.


- 상대 존중하는 마음, 적이 없어

그에게는 적이 없다. 대기업에 다니다 보면 본의 아니게 적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는 다르다. 비결을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한다. “삼성 입사 동기가 120명입니다. 다들 쟁쟁한 사람들이더군요. 집안도 막강하고 학벌도 화려하더군요. 지방대 출신은 저를 포함해 두 사람이 전부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그래서 원만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를 존중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저를 존중하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인지 어렵게 살아온 사람에게 보이는 시기, 질투, 독함, 비뚤어짐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누구에게든지, 계속해서 배운다는 것은 그의 철학이다. 성균관대 무역대학원, 외국어대 어학연수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와튼스쿨과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 그가 마친 과정들이다. 보통은 인맥 때문에 배운다는데 그는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 배운다고 고백한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사랑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은 그의 철학이다. 주어진 장소에서 주어진 일을 지극 정성으로 하면서 그는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삼성물산 시절 그는 금속을 수입하는 일을 했다. 한 번은 업무 때문에 미국 출장을 갔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고 선박이나 폐 선박을 싼 값에 구입해 해체하여 그것을 고철로 비싼 값에 팔고 있었던 것이다. 무릎을 치면서 쾌재를 부른 그는 회사에 돌아와 이 사업을 제안하고 추진한다. 예상대로 이 사업은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욕심이 생긴 그는 고선박 5대를 한꺼번에 수입한다. 크게 베팅을 한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태풍으로 5대가 몽땅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어마어마한 손실을 일으킨다. 보험 처리도 되지 않았고, 당시 자본금이 120억 정도였는데 43억 정도의 손해를 끼친 것이다. 최선을 다해 일을 마무리하고 그는 사표를 제출한다. 도저히 면목이 없어 회사를 다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상사가 그에게 전화를 한다. “그 동안 수고 많이 했으니 해외에 나가 얼마간 쉬다 오라”는 것이다. 해외지사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열심히 잘해 보려다 손해가 생긴 것이지 개인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위에서도 안 것이다.


- 천당과 지옥 오간 삼성물산 시절

그는 두바이 지점장으로 4년을 일하는데 중간에 한 번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한다. 죽음에서 구해준 회사에 대한 충성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해외에서의 이 경험은 GE에서 일하는 데 귀한 자산이 된다.

무엇보다 그는 가정에서 성공한 남편이고 아버지이다. 그런 성공 여부는 쉽게 알 수 있다. 가정에서 실패한 사람은 가정에 대해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할 얘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는 가정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고, 한 번 시작하면 웬만해서 그칠 줄 모른다. 그는 딸만 셋이다. 예전에는 딸?있는 사람에게 “딸딸이 아빠”니, “아들 하나 더 낳아야겠네요”라는 식의 동정을 보여주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완전히 바뀌었다. 오히려 아들만 있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보낸다.

그가 딸에 대해 얘기할 때는 자부심과 사랑이 넘쳐난다. 얘기하고 싶어 못 견뎌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대 경영학과를 나와 휴렛 패커드에 근무하는 맏이, 서울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도전 중인 둘째, 코넬대를 나와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막내, 모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새끼들이다. 특히 막내는 고1때 아버지를 따라 홀로 싱가포르로 갔다. 대학생과 고3짜리 딸은 함께 갈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막내 딸만을 데리고 간 아버지나, 그 아버지만을 믿고 따라간 딸이나, 보통 이상의 애정이 없으면 힘들다. 아버지가 딸을 보살핀 게 아니라, 딸이 아버지를 보살피고 독립심을 키웠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의 브랜드는 겸손함과 성실이다.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그 사실을 배웠다. “제 선생님은 선린상고를 1등으로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선린상고는 가장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갔으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보통 한국은행으로 자동 입사가 되는데 불행히 그 해는 자리가 없어 산업은행으로 갔습니다. 그는 늘 불만을 갖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정을 못 받아 촌구석의 선생님으로 밀려 온 것이지요. 그 선생님은 뒤늦게 이를 깨닫고 학생들에게 겸손하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GE에서는 그를 CW LEE 라고 부른다. 그는 이를 “Challenge and Win, CW” 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매력적인 것은 균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과 일 사이의 균형, 성과와 인간미의 조화, 성공을 뽐내지 않는 겸손함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

입력시간 : 2004-07-0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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