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안하니 좌절도 없었다'강함과 부드러움 조화된 성격에 유교식 교육받아 흐트러짐 없어'뜻이 있는 곳, 길이 있다' 좌우명으로 에버랜드 성공신화 창조

[성공의 조건]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포기 안하니 좌절도 없었다'
강함과 부드러움 조화된 성격에 유교식 교육받아 흐트러짐 없어
'뜻이 있는 곳, 길이 있다' 좌우명으로 에버랜드 성공신화 창조


나라가 없을 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애국자였다면, 지금은 기업을 일으켜 직업을 창출하는 사람이 가장 큰 애국자이다. 이 논리에 동의한다면 허태학 사장은 애국자다. 영빈관을 지금의 신라호텔로 만들고, 제주 신라, 호텔면세점을 만들어 지금의 호텔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동네 유원지 수준의 자연농원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테마파크 에버랜드로 만든 사람, 그래서 디즈니랜드조차 겁내는 회사로 일군 사람이 허태학 사장이다. 지금은 삼성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제조업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무엇이 이런 성공을 거두게 했을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할아버지다. 경남 고성의 한학자이자 한의학에도 조예가 있었던 할아버지는 땅도 제법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평생 한 번도 한복을 벗은 적이 없고, 상투를 튼 채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6대 종손인 그에게 거는 기대는 절대적이었다. “고향에서 농사만 지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내 밑에서 배워도 충분하다”는 할아버지의 철학 덕분에 그는 어렵게 공부를 했다. 동네 중학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서울로 유학 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진주에서 대학을 다녀야 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어떻게 하면 할아버지를 설득해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냐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 덕에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매너를 체득했다.


- 어린시절 조부의 절대적인 영향력

‘철저한 유교 집안 출신인 그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인 호텔과 테마파크 에버랜드에서 성공을 거두다.’ 어딘가 모순되어 보이고, 의문점이 있어 보인다. 가장 엄숙하고 경건할 것 같은 사람이 가장 자유분방한 직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 자체는 호기심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그의 첫 인상은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함이다. 옷 매무새, 머리카락 한 올, 걸음걸이, 얘기하는 매너 등등. 그에게서 허점을 발견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서비스업에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생겨난 습관이라는데, 필자 생각에는 완고한 유학자인 할아버지의 영향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호텔과 에버랜드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유학자 같은 느낌이다.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드러낼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가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는 목이 메인다. 어머니가 어떤 분이냐는 질문에 눈이 벌개지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그는 어머니가 김해 허씨 종가에 열 일곱에 시집 와 위로 딸만 셋을 낳은 뒤 태어났다. 그러니 그 동안 어머니의 고생, 그의 탄생으로 인한 희열, 그에게 거는 기대가 어떨 것인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하다. 4월 초파일에 태어나 같은 날에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의 인생은 장남만을 위한 삶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불공을 드리고, 아들에게 좋다는 것은 다 하고, 공부 때문에 길 떠나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시고, 입지 않아도 매년 명절 때면 한복을 새로 만들어 보내시고…. 말 그대로 ‘지극정성’ 을 다했다.

그는 강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움을 가진 사람이다. 엄격한 할아버지와 그를 감싸고 있던 자상한 어머니의 공동 작품이기 때문이다. 강하기만 한 사람은 부러진다. 부드럽기만 한 사람은 추진력이 없다. 성공의 조건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이루어진다. 슭풩?장조와 단조가 있어야 되고, 인생에도 슬픔과 기쁨이 섞여야 맛이 나오는 것이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농촌 계몽가인 류달영 선생이 지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역사에 관한 책이다. 또 오늘날의 덴마크를 만든 달가스, 그룬트비히 등도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다. 그래서인?그는 어릴 때부터 나라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는 나라이다. 부존자원도 없고, 땅 덩어리도 좁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정말 힘든 팔자를 갖고 태어난 나라다. 가진 것이라곤 사람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교육시켜 똑똑하게 만들고 이들의 힘으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의 브랜드는 사명이다. 매년 1월 1일이면 서울 근교 산에 간부급 임원들과 함께 올라 일출을 본다. 일출을 본 후에는 ‘선구자’를 부르고 만세 삼창을 한다. 대한민국, 삼성그룹, 자신이 속한 회사 순으로 한다.


- 군 복무 때 싹 틔운 일에 대한 열정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국가에 대한 사명과 일에 대한 열정은 군대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ROTC 5기로 포병 장교가 된 그는 어느 날 수송관을 맡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포병은 통신, 수송, 화력의 삼박자가 필요한데 포를 운반하던 차가 고장으로 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새 부품을 팔아 먹고 대신 중고부품으로 갈아 끼운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는 워낙 부품이나 기름을 팔아먹는 사람이 많아 수송관을 하게 되면 불명예 제대를 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3년간 휴가를 반납할 각오로 일을 한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운동을 시키고 밥을 사주면서 팀 파워를 기른다. 덕분에 각종 시합에서 1등을 하고 그를 탐낸 상사가 장기근무를 권유하기에 이른다.

유교집안에서의 철저한 가정교육, 농촌계몽 운동을 비롯한 갖가지 책을 통해 가치관이 형성되는 학창시절, 야학과 계몽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대학시절, 직접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이를 성과로 연결시키는 군 시절, 삼성에 들어가 꽃을 피우는 장년 시절. 그의 삶은 이렇게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그는 강한 사람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게 그의 좌우명이다. 삼성에 들어와서도 늘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삼성 같은 곳에서 지방대 출신에다 학위 등 뭐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 사장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좌절의 경험을 물어봤더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포기한 적이 없다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강한 것만으로 그런 위치에 오르기는 불가능하다. 강한 것을 부드러운 것으로 감싸 안을 수 있어야 장기적인 성공이 가능하다.

그는 배려가 있고 세심한 사람이다. 직원들이 만족해야 고객들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서 에버랜드의 기숙사를 1인1실로 만들었다. 원가와 생산성만을 생각하는 보통 CEO들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헬스시설과 목욕탕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합치게 함으로서 직원들을 만족시킬 줄도 아는 사람이다.


- ‘직원 만족’ 배려하는 세심함도

“없는 것이 가장 더러운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늘 했던 얘기이다. 사람은 돈과 지식과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돈이 없으면 사람이 추해진다. 머슴을 부리려고 해도 농사 일을 알아야 가능하다. 무식한 사람에게 누가 오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늘 배우려고 노력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삼성경제연구소 웹사이트 등에 들어가 강의를 듣는 것이 주요 일과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다고도 얘기한다. 또 별다른 이해상관 없는 젊은 사람들과 수시로 만나 저녁을 하면서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기도 한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어떻게 받는가? 유전인자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가? 성공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은 엄격한 가정이 싫어 반항하고 뛰쳐 나온다. 자신과는 완전히 반대로 자식을 키우는 사람도 있다. 그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평생 서로 존대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부모님도 마찬가지란다. 보고 배운 대로 자신도 부인에게 존대를 한다. 아들 며느리도 서로 존대를 한단다. 예전 어른들은 집안만 보고 혼사를 성사시켰다. 그 집안의 교육을 보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What is next? 그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다. 제주도를 경영하게 하자. 내 답이다. 물론 그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았다. 이유는? 제주도처럼 자연환경이 좋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 조건만으로는 하와이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가지고 저렇게 엉망으로 경영을 하는 것도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혁신 중에 가장 큰 혁신은 그 자리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을 배치하?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역량도 있고,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기에 잘 설득하면 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를 보면 ‘큰바위 얼굴’이 생각난다. 늘 ‘큰바위 얼굴’이 나타나길 기대하다 보니 자신이 ‘큰바위 얼굴’이 되었다는 얘기 말이다. 덴마크의 달가스가 되길 희망한 소년, 이제 더욱 큰 사람이 되길 희망해 본다.

글 한근태 한국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입력시간 : 2004-07-15 11:14


글 한근태 한국과학종합대학원 교수 kthan@ass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