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헤아리는 암호…바코드는 문명의 결정체국내 유일의 2차원 바코드 판독기 개발능력 보유

[직업의 세계] 바코드 전문가 이현곤
세상을 헤아리는 암호…바코드는 문명의 결정체
국내 유일의 2차원 바코드 판독기 개발능력 보유


건네받은 명함이 특이하다. 왼쪽 아래에 이상한 흑백 그림이 앉아있다. 얼핏 바코드처럼 보이지만 훨씬 얼룩덜룩하다. 이른바 ‘2차원 바코드’다. 판독기로 광선을 쏘자 곧장 무엇인가가 모니터에 나타난다. (주) 제일컴테크 기술연구소 대표이사 이현곤. T. XXX-XXXX. 나이 50세. 지금부터 이야기할 주인공이다.

“특히 수출업체들에게는 바코드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국내 모 식품회사가 캐나다에 통조림 20만개를 수출했다가 현지에서 바코드가 안 읽혀 전량 반품당한 일이 있습니다. 다시 바코드를 수정해 보냈는데 그사이 유통기한을 넘겨버려 결국 완전히 퇴짜맞았습니다. 상품을 잘 만들어놓고도 바코드 하나 때문에 돈도 신용도 날린 거지요. “


- 바코드 장비 개발에 뛰어들다

바코드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생필품은 물론 책에도 세금 고지서에도 바코드가 낙관처럼 따라다니는 세상이다. 이 씨는 이 현대문명의 결정체, 바코드의 전문가다. 관련장비를 연구 개발하는 한편, 바코드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문제를 상담하고 자문한다. 산업자원부에서 위촉한 바코드표준협회 전문 위원 중 일원으로 관련 국가정책에도 관여하고 있다.

바코드의 정체부터 살펴보자. 상품 포장에 찍혀 우리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바코드는 이렇게 태어난다. 기업에서 상품을 만든 뒤 한국유통물류진흥원에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면 고유 코드를 부여 받을 수 있다. 진흥원은 전세계의 회원국들과 연계된 한국 유일의 코드관리 기관이다. 고유 코드를 받고 나면 인쇄용 필름을 제작해주는 회사에 의뢰해 바코드 인쇄 원판을 만든다. 이 씨네 회사를 포함해 이러한 회사가 국내에 십여 군데 있다. 이 필름으로 제품 포장에 함께 인쇄하면 끝. 이것이 시중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상품 바코드다.

현재 나와있는 것은 대부분 1차원 바코드다. 바코드는 바(bar)와 스페이스(space)의 조합으로 이뤄진 일종의 기하학적인 암호다. 규격이나 용도 등에 따라 바코드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간단한 것은 흰 바탕과 검은 직선으로 구성된 1차원 바코드다.

검은 선의 두께가 얼마나 되는가, 흰 바탕의 간격이 얼마나 넓은가, 각 모양에 따라 해독되는 정보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검은 선은 표준형 10mil(1mil=1000분의 1인치) 두께에서부터 고밀도의 경우 최소 3mil까지 가늘어진다.

한글이나 한자, 그래픽이 가능한 바코드도 있지만, 대개의 바코드는 숫자를 담고 있다. 국제 규격의 경우 12자리, 또는 13자리 숫자가 담겨있다. 순서가 마치 국제전화번호와 비슷하다. 맨먼저 국가코드로부터 시작해 기업코드, 상품코드 등의 순서로 고유숫자가 뒤따른다. 이쯤에서 이 씨가 받아온 단골질문 한가지.

“바코드 안에 가격도 쓰여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건 없습니다. 단지 바코드가 읽는 건 상품 코드인데 그것을 판독기가 읽는 순간 자체 전산망에 들어있던 상품별 가격 DB가 동시에 물려 올라오면서 모니터엔 가격이 뜨는 거지요. “

숫자로 된 코드를 바코드로 바꾸는 일은 별도의 소프트웨어가 따로 개발돼 있어 사실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상황도 상황 나름. 포장 재질이 특별하면 바코드 제작도 더불어 까다로워진다. 종이에 비닐 코팅 처리를 하는 우유 팩도 요주의 대상 중 하나다. 종이 인쇄 때에는 바코드가 정확했다가도 코팅 과정에서 열기가 가해지면 비닐의 특성상 표면이 수축되고 만다. 당연히 바코드가 변형되면서 판독에도 오류가 생긴다.

“이 때문에 코팅을 했을 때 수축되는 정도를 미리 계산해 그 만큼 바코드를 더 크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고도 직접 샘플로 만들어 확인해가며 오차가 완전히 잡힐 때까지 계속 수정해야 되지요. 포장재질이 특수할수록 이런 문제때문에 바코드 제작업체의 전문성이나 실력차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


- 바코드와의 20년 인연

이 씨가 맡은 더 중요한 일은 바코드 장비를 직접 개발하는 일이다. 바코드 장비로는 바코드 프린터와 판독기가 있다. 프린터는 상품 포장에 직접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스티커처럼 만들어 붙일 수 있게 한 바코드 인쇄기다. 판독기를 포함해 그가 그간 직접 개발한 장비가 20여종. 특히 판독기 개발에 있어서 그는 국내【?손꼽히는 전문가다. 발명특허를 받은 것도 몇 가지 된다. 감지 거리가 30cm 이내인 일반 판독기와는 달리 2.5m 떨어진 거리에서도 바코드를 읽어내는 무선 원거리 판독기, 초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바코드 판독뿐 아니라 해당 상품이나 바코드 인쇄 실물까지 즉석에서 전송 가능하게 한 카메라형 판독기 등을 직접 개발했다.

특히 2차원 바코드 판독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는 그가 국내 유일하다. 2차원 바코드는 한글과 한자, 사진 등 1차원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바코드의 일부가 손상되거나 가려져도 완벽하게 원래의 정보를 재생해낸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씨가 바코드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20년째. 한 음향기기회사의 수리기술자로 출발해 모 시계제조회사에 재직하던 중 바코드 장비를 처음 접했다. 당시 자신이 몸담고 있던 기업의 컴퓨터 사업부에서 한 외국회사의 컨트롤러와 터미널의 OEM생산을 맡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바코드까지 붙여서 보내달라며 한국측에 바코드 프린터와 판독기 일체를 보내온 것이다. 그 장비의 셋업을 맡은 것이 이 씨였다. 문제는 그 자신도, 또는 국내의 어떤 전문가도 바코드에 관한 한 당시로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1년 반 동안 혼자서 프로그램을 공부하며 해결해야 했어요. 관련 자료도 국내에는 거의 없어 주로 외국 서적을 찾아야 했고, 어떨 땐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 어렵게 구해 읽기도 했어요. 얼마나 열심히 봤는지 그때 책들은 전부 ‘걸레’가 됐어요.”

예나 지금이나 집중과 성실은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갓 신설된 컴퓨터 사업부에 들어섰을 때도 컴퓨터의 기초를 빨리 익히기 위해 자신의 집 방안 가득 16진법을 써서 펼쳐놓고 눈에 보일 때마다 외어댔다. 그 무렵 3년 동안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주위의 수많은 뛰어난 동료들 틈에서 자신을 인정 받자면 그들보다 몇 배 더 피나는 노력을 하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 집중과 성실로 일궈낸 과실

그의 진로와 이름을 바꿔놓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회사에서 외국의 한 테스트 장비를 들여올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수입장비를 사는 대신 직접 만들 수만 있다면 수입비용의 10분의 1도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한 총책임자가 자체 연구소 직원들에게 직접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꺼냈다. 그러나 연구원들의 응답은 한결같이 ‘우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총책임자가 실망감에 빠진 사이 돌파구는 전혀 다른 곳에서 터졌다.

“ 그때 저는 수리보수실에서 일할 때였는데 저희 부서장이 어느날 회사 내부에 그런 일이 있었다며 지나가는 얘기처럼 들려주는 걸 우연히 듣고 ‘그럼 제가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제게 농담하지 말라며 툭 치시더라구요. 그날 꼬박 밤을 새워 회로도를 만들어 다음날 가져가 보여줬지요. 하지만 ‘어디서 베꼈냐?’며 여전히 제가 만들었다는 걸 전혀 믿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제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씩 믿기 시작하더니 얼마 뒤엔 담당 이사님에게 보고가 올라가 결국 제게 그 임무가 떨어졌지요. “

한달 반 만에 장비를 만들어내자 이 씨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달라졌다. 회사의 표창도 받았고 타 기업의 스카웃 제의가 사방에서 찾아 들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바코드 장비 수입 전문 회사로부터 끈질긴 러브콜을 받아 ‘86년 현재의 회사로 옮겨 오늘까지 왔다. 초창기엔 고생도 많았다. 특히 몸담은 곳이 신생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기본 개발장비를 구하는 일조차 간단치 않았다. 카메라형 2차원 바코드 판독기를 개발할 때도 그랬다. 어느날 우연히 외국 잡지를 보다가 자신이 마침 찾고 있던 카메라 ICC 부속을 발견했다. 외국회사로 바로 이 메일을 띄워 샘플을 요청하자 ‘이름도 모르는 회사라 샘플을 줄 수 없으니 원하면 직접 돈을 주고 사라’는 차가운 답변만 돌아왔다. 실제로 돈을 들여 부속을 구한 뒤 한달 만에 그 부속으로 조립한 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첨부자료로 붙여 다시 이 메일을 띄웠다.

“얼마 뒤 그 외국회사의 직원들이 직접 저를 찾아 왔더라구요. 카메라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부속을 조립한 것도 더욱이 그것도 한달 만에 화면까지 찍어 보낸 사람은 처음 봤다며 놀랐다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태도가 싹 달라졌어요. 그런데 나중에 국내의 한 기업에서도 비좡?제품이 나온 걸 보고 가능하면 우리나라 부품을 쓰겠다는 생각에 부속을 국산으로 바꿨어요. 그러자 이 외국회사측에서 왜 자기네 것을 안 쓰냐며 계속 쫓아다니며 난리를 쳐서 애도 많이 먹었지요.”


- 재고관리 등에 획기적인 기능

바코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국내에 대형 할인점이 등장한‘88년 무렵부터다. 왜 우리에게 바코드가 중요한가? 언젠가 국내의 모 섬유공장에서 재고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처리할 때엔 한번 재고조사가 있을 때마다 1주일간 공장 가동도 멈춘 채 온 직원들이 달라붙어 1주일 만에 겨우 작업을 마치곤 했다. 그런데 바코드를 쓰자마자 게임이 싱겁게 끝나버렸다. 1주일짜리 일이 단 하루 만에 끝난 것이다. 이 씨가 끊임없이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사실상 이 기록마저 더 단축하기 위한 노력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처럼 빠른 속도로 번지는 바코드 문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거북이 걸음이라는 데에 있다.

“ 바코드가 안 읽혀도 별 문제없이 계산원이 직접 손으로 키보드를 쳐서 입력하고 넘어가는, 이런 너그러운 나라는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선진국에서는 상품 단 한 개만 바코드가 안 읽혀도 곧장 매장에서 전량 철수합니다. 바코드를 쓰는 가장 큰 이유가 시간과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니 만큼 불량 바코드에 대한 관리가 아주 철저합니다. “

지금도 책상 앞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코드 장비 부속만 매만지며 산다. 20여년째 지루한 줄 모르고 반복해 온 일상이다. 머릿 속에 그렸던 장비가 하나씩 실체로 완성될 때마다 남모르는 재미와 흥분을 느낀다. 기술분야에서 나이 50대까지도 현장을 지키며 직접 장비를 만드는 사례로도 그는 희귀한 베테랑이다. 아직도 5년은 더 끄떡없다. 도전하고 싶은 숙제들이 머릿 속에 잔뜩 줄지어 있다.

“ 앞으로 만들 장비 계획들이야 지금도 많이 쌓여있지요. 하지만 몸이 한 개이다 보니 한걸음씩 차근차근 나갈 수 밖에요. “

정영주


입력시간 : 2004-07-29 11:16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