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의 글을 담아내고 싶다"시류에의 복속을 거부한 올곧은 출판인

[한국 초대석] 출판인 소재두
"균형의 글을 담아내고 싶다"
시류에의 복속을 거부한 올곧은 출판인


소재두(42)씨가 ‘교수 신문’의 원고 청탁을 받아 들였던 것은 출판이라는 독특한 인생 여정을 간명하게 정리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가져 보자는 나름의 계산에서였다. 여타 출판사와는 다른 홍보용 신간 안내문의 필자가 바로 그였다. 8월 30일자에 실렸던 짧은 글은 도서 출판 한울 시절, 편집인으로서 겪었던 범상치 않은 일들을 압축하고 있다.

2003년 3월 이후, 그는 도서 출판 논형의 대표다. 지금은 직원 2명과 함께 꾸려 가는 작은 출판사이지만, 날로 심화돼 가는 인문학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 지를 증거해 주는 계기이기도 하다. 출판 인생 15년차, 출판사 경영 신인이라는 계단을 밟아 가고 있는 그의 삶이 그려 보이고 있는 궤적은 우리 시대는 어디를 가고 있는지를 효율적으로 투사해 내는 의미망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통념의 허와 실, 그 요체가 되는 학술 출판의 위기 상황, 구체적으로는 한 동양학도의 현재와 미래까지 비춰낼 투시경이기도 하다.

“아이고, 히트라니요?” 손사래부터 젓고 본다. 다분히 습관적으로 ‘이 출판사의 히트작이 뭐냐?’고 던진 질문에 대한 그의 반응이었다.

‘무엇 무엇하는 몇 가지 것들’식으로, 어떻게 해서든 일반인들의 구미에 닿게 내용물들을 재조립하는 콘텐츠 사업이 돼 버린 요즘 출판업계의 추세에 거스르는 듯한 길을 고집해 온 사람이 자연스레 취할 행동이었을 것이다. 현대 출판 비즈니스란 결국 매뉴얼과 콘텐츠 사업이라는 기초를 그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같은 시류에 복속할 만큼 만만한 사람은 더 더욱 아니다.

“지금, 한림대 사회학과 유팔무 교수가 쓴 ‘한국의 시민 사회와 새로운 진보’의 마지막 작업중입니다. 사회민주주의적 모델을 준거로 해 1980년대 이후의 우리 사회를 통찰한 책이죠. 논쟁 거리를 제공할 겁니다.”열 다섯번째 단행본에 대한 설명이다.


- 한국인의 자주적 이해 도울 책 준비

동양 문화를 근간으로 해, 균형 잡힌 정보와 시각을 제공할 것을 목표로 한 그의 출판사는 최근 일본 근현대 문화를 주제로 한 번역 시리즈물 ‘일본 근대 스펙트럼’으로 부쩍 주목 받고 있다. 백화점 – 박람회 – 스포츠 등을 주제로 해 격변기 일본을 그려낸다는 것. “일본 민족주의 같은 거대 담론의 구체적 실상을 파악해 보자는 겁니다.”

기존의 정치경제사적 접근을 벗어나, 사회사와 문화사 등 일상의 차원에서 되살려 낸 일본의 과거는 새로운 가치 정립의 단계로 진입한 한일 관계사에서 의미 있는 실증적 기준치를 제시할 전망이다. 한국어본을 위해 니혼 TV 사진 기자의 필름 32컷을 별도로 입수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송학(宋學)의 형성과 전개’, ‘동서양 사유 방식의 차이’ 등의 책이 예정표 안에 담겨져 있다. 날이 갈수록 예기치 않은 곳에서부터 첨예해져 가고 있는 동양의 역사 전쟁터에서 현대 한국인들의 자주적 이해를 실증적으로 도울 것으로 예상되는 책들이다.

그러나 직원 2명과 함께 꾸려 나가는 출판사 사무실을 벗어나 보자. 들리느니 암울한 소식이요, 보이느니 참담한 형국이다. 21세기와 함께 만개한 사이버 문물을 뒤집으니 인문학의 위기라는 역상(逆像)이 곧 바로 드러난다. 세계 제 1의 인터넷 왕국이라는 화려한 수사는 결국 인문학 전문 출판사들의 고사 위기라는 부토(腐土)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음이 갈수록 자명해 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땅은 실로 무시무시한 제로섬 게임의 왕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출판업계의 피폐상을 크게 다룬 모신문의 기사는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월급은 배 곯듯 한다’며 대문짝만한 제목을 달기까지 했다.

그는 출판인들의 팔을 들어 주었다. “대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연구자들의 입에서 나온 게 문제라고 봐요.” 그렇게 된 원인의 기저부에는 학자들의 안이한 태도가 가장 크게 자리한다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그 점을 알기에, 소씨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한일관계사학회에다 으름장도 놓았다. “함량 미달이면 자르겠다고 말이죠.” 논문에 빨간 줄을 그어 개작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사급 회원 150여명을 거느린 학회지만,그의 눈에는 흠결이 한눈에 들어 왔다. “평가, 교수 임용, 논문 편수 늘리기 따위의 의도가 다 보이죠.”‘교수님들’에 대한 그의 질타는 이어진다. 그들은 번역 작업을 도외시한다는 것이다.“연구 업적에 반영되지 않죠. 논문은 120점이지만 번역은 50점이니.” 번역할 때, 모든 관련 서적을 옆에 두고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하지 못 하는 탓이 ㈃鳴?그는 믿는다.


- '순국' 편집인으로 출판인의 길 들어서

세상과 학문에 대한 그의 태도는 민족주의자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의 가르침에 매료됐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시절 배태됐다. 1984년 광주민주화 운동 관련 가두 투쟁때 검거돼 강제 징집당했던 그는 교련 수업을 거부한 전력 때문에 3개월 혜택도 받지 못 했다. 복학한 그는 공자의 ‘논어’ 완독에 들어 갔다. “당대의 사회 혁명서로서 읽어 낸다는 차원에서였죠.”

학점이 좋을 리 없었던 그가 처음으로 닻을 내린 일터가 바로 출판사였다. 1988년,의 아들 신수범(당시 72세)씨의 순국선열유족회가 내던 무가지 ‘순국(殉國)’의 종합 편집인이 돼 유가지 창간호를 낸 것으로 그는 출판의 길로 접어 들었다. 당시 월급이 30만원. 이어 조희연 정요성 등 소장파 진보 학자들이 의기 하나 믿고 근근이 이어 가던 한울출판사로 가, 그는 출판의 실제를 몸으로 배워 갔다. 당시 그를 한울로 불렀던 이가 현재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인 김형욱.

대학 현장과 서점을 담당하던 영업부장이었으나, 호기심이 왕성하던 그는 서울대 등지에 일을 나가면 도강을 서슴지 않았다. 필진 물색 등의 별난 이유에서였다. 책의 콘텐츠를 판매ㆍ영업과 결합시킨 최초의 출판맨이 바로 그이다. 그는 한울과 비슷한 성격의 사회과학 출판사들, 이를테면 청년사 사계절 동녘 등에서 출판된 도서 목록도 수서 담당자에게 건넸다. 컨텐츠를 매뉴얼화 해 셰어 웨어로 제공한 셈이다. 저자 – 출판사- 독자 – 서점의 연결 고리를 누군가가 정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몇몇 서점 사장들은 수금하러 올 것이라는 지레 짐작에 그를 피해 다닌 일까지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6년 동안의 한울 시절은 그러나 가벼운 신문 칼럼 거리로만 묻어 두기에는 아까운 것이었다. 전국 4년제 대학 도서관 사서들한테 발품을 팔았던 그 기간은 한국의 출판 유통 현실을 선명하게 체감하는 시기였다. “출판진흥과 등 국가 기관의 차원에서 문화 인프라에 관한 정보를 구축해 국가적 차원에서 유통을 현대화 작업에 나서야 합니다. 국감 때가 아니면 공식 보고서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는 국회위원들의 자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또 오락 프로처럼 진행되는 책 관련 TV 프로의 자세도 문제지만, 비교적 이야기 하기 쉬운 인문학 관련 논의만 반복되고 있는 상황은 크게 잘 못 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눈만 뜨면 세계화, 세계화 노래를 부르는데 정작 외국 학자를 초청하는 사례는 보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출판 프로은 진정한 정리 작업이 될 수 있는 거죠.”


- 세계화 논리에 직격탄 맞은 출판계

한국의 풀뿌리 출판은 살아 남을 것인가? 중앙일보 산하의 출판사 중앙M&B와 도서 판매 분야의 세계적 공룡인 랜덤하우스가 합작한 출판사 ‘랜덤 하우스 중앙’은 구미에 당기는 콘텐츠와 막강한 자본으로 우리 출판 시장을 종횡으로 누빌 태세다. “한국측이 과연 서양의출판사(史), 그들의 논리를 어느 정도로 아느냐 하는 겁니다. 출판업의 새로운 마케팅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사재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1998년, 국내 최대의 도서 도매상이 경쟁사의 덤핑탓에 부도를 내고 만 사태가 생생한 우리 출판계는 이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직격탄을 맞은 꼴이다.

자본과 인력면에서 주먹구구식 운영을 벗어난 전문화가 답안이라고 그는 말했다. 보다 급하게는, 유통면에서 ‘사전 마케팅 제도’를 시행해야 할 때라는 강조다. 1개월 정도 안에 발간 예정인 도서의 목록을 영풍이나 교보 등 대형 출판사가 인터넷 도메인으로 올리면 당장 현실적으로 효과가 온다. 반품률이 줄어드니, 고질적인 주먹구구식 제작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출판업에서 잔뼈가 습?그는 이 일이 치고 빠지는 사업이 아님을 너무 잘 안다. 그 흔한 홈 페이지도 생각하지 않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500만원 들이면 (홈 페이지를)만들 수 있지만 우리 책만 보고 말텐데, 그런 일을 왜 해요? 외국의 관련 도서들과 링크할 수 있게 하기까지는 아직….” 자기 출판사의 안팎을 속속들이 아는 웹디자이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미지수로 남겨 두겠다는 다짐이다.

동양학 덕에 체화된 느긋함의 미덕도 이 각박한 전쟁터에서 버텨낼 수 있는 힘이리라. 그는 말했다. “인터넷의 등장이나 인문학의 위기 때문에 출판이 위협 받지는 않는다. 출판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또, 우리가 출판이라는 걸 언제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있느냐? ” 그 말에는 번듯한 외형을 추구하는 등 갈수록 자본주의적 공식을 따르는 우리 출판업계에 대한 계고가 담겨 있다.

출판사 이름, 논형(論衡)이란 한나라의 학자 왕충이 쓴 논저에서 따 온 것이다. 논리의 저울, 즉 균형 잡힌 문장을 뜻한다. “좌우의 균형을 잃지 않은 글을 내고 싶어요. 나의 행위가 결국 논형이라고 믿어요.” 그 믿음이 결국 출판사 이름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틈이 나면 소수서원이나 안동서원 등 학문의 도량을 찾는 것이 취미다.

그것은 결국 보다 큰 논형을 위한 준비 작업인지도 모른다. 하드 웨어(손ㆍ발품)와 소프트 웨어(아이디어)가 하나로 통합돼 새로운 컨텐츠로 혁명을 꿈꾸는 신생 출판사 논형이 주목 받는 이유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9-08 16:16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