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일궈낸 경영승부사회생불능 기업을 3년 만에 초우량 기업으로 회생시킨 '기업닥터'

[리더탐구 성공의 조건] 이스텔 시스템 서두칠 사장
기적을 일궈낸 경영승부사
회생불능 기업을 3년 만에 초우량 기업으로 회생시킨 '기업닥터'


회생불능(cannot survive), 1997년 미국의 컨설팅 회사 부즈 알렌이 한국전기초자를 진단한 후 내린 결론이다. 이런 회생불가능 판정을 받은 회사에 서두칠 사장이 투입되었고 그는 거기서 기적을 만들어 낸다. 1999년 600억원 적자 기업을 307억원 흑자로 돌아서게 했으며, 2000년 에는 3년 만에 엄청난 부채를 털어내고 차입금 제로를 선언했다. 전체 상장 기업 542개 중 경영평가 1위의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난다. 자산 매각도 인원 감축도 없이 이루어 낸 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기적이라며 칭송했지만 서두칠 사장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기적이란 없다는 것이다. 위기를 절감하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임직원들이 밤을 새고, 휴가를 반납하면서 노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얘기를 “우리는 기적이라 부르지 않는다” 라는 책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런 엄청난 일을 한 서두칠 사장에게 예전부터 호감을 갖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노하우와 힘을 어디서 얻은 것일까? 재수가 좋아서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아니면 준비된 사람의 결과일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의 겸임교수라는 사실을 악용해(?) 오래 전에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그는 나중에 보자며 내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꼭 해야 하는 인터뷰입니까? 꼭 해야 한다면 하지요.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니까 맘이 편치 않네요.” 세상에 꼭 해야 하는 인터뷰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안면을 몰수하고 꼭 해야 한다며 날짜를 잡고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의 시작은 요청과 그에 대한 반응에서 출발한다. 거절했던 것이 맘에 걸려 다시 전화를 해 주는 이는 서두칠 사장이 처음이다. 강해 보이지만 감성적이고 따뜻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도전과 혁신의 삶

그의 삶은 경영스타일처럼 도전과 혁신의 연속이었다. 그는 1939년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고향인 경남 사천으로 귀국해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은 작은 과수원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았지만 자식 모두를 사천에서 진주에 유학 보낼 정도로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간도에서 기독교를 전파할 정도로 선각자적 면모를 지녔고 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는 그를 낳기 전 ‘큰 바위산을 타고 올라갔더니 정상에 있는 곧게 뻗은 죽순이 있어 이를 꺾어 치마폭에 담는’ 꿈을 꾸었단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늘 ‘곧고 바르게 살아라’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런 영향으로 그가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걸어온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이다. 대학부터 그랬다. 공부는 잘 했지만 어려웠던 집안 살림 때문에 대학 입학은 꿈도 꾸기 어려워서 진주농과대학 부설 중등교원양성소란 곳에 입학했다. 그곳은 당시 부족했던 교원을 속성으로 양성하기 위해 임시로 만든 학교였다. 당연히 졸업 후 2년간 중학교 선생을 했다. 그리고 진주농과대학에 편입해 졸업했다. 군대생활까지 포함하여 8년 만에 대학을 마친 것이다. 남들보다 졸업은 늦었지만 폭 넓은 경험을 통해 평생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기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해도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금융관련 회사가 유일했다. 50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그는 농협 중앙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경남 하동이란 촌에서 시작했지만 뛰어난 영어실력 덕분에 중앙으로 발탁이 되고, 지점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며 중앙회에 근무도 하고, 새마을 지도자로 특채 되는 등 농협에서 승승장구한다. 바쁜 와중에 연세대에서 MBA를 하면서 회계의 기초를 닦았다. MBA라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시기에 그런 공부를 한 것을 보면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농협에서 계속 근무하면 성공은 보장됐지만 은행업무가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그와는 맞지 않았다. 답답했다. 근무한지 10년이 되는 1975년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표를 던지고 대우그룹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 구조조정 전문가로 빛을 발하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그가 한국전기초자에서 했던 일도 그렇다. 그는 이미 대우에서 그와 비슷한 일을 수도 없이 했고 그 방면의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전기초자에서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뿐이다. 그는 인사 노무 관련의 해결사이자 전문가이다. 이런 재능은 대우중공업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당시 한국기계 인수 건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대우중공업에서 해결사로서 멋지게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대우전자와 대우전자부품을 거치면서 그의 이런 재능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망가진 기업을 진단하고 되살리는 구조조정 전문가이다. 기업을 치료하는 의사인 셈이다.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 그의 철학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실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보는 것, 그 사실을 전 직원과 공유하는 것, 위기를 공감하고 모두가 거기에 동참하게끔 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그의 최대 장기는 솔직함이다. 전기초자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솔직했다. 직원들에게 경영정보를 빠짐없이 공개했다. 어설프게 희망을 불어넣기 보다는 직원들 스스로 위기의식을 공유하도록 했다. 그런 후에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직원들을 참여시켰다. 그는 나를 따르라(Follow me)고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가자 (Let’s go)라고 얘기한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 그가 혁신에 성공한 것도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전기초자에 간 지 일 년 동안 그는 정말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매니저를 대상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부인을 따로 불러 모아… 직원 숫자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몇 번에 나누어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말 뿐이 아니라 글과 편지를 통해서도 이런 메시지는 수시로 전해졌다. 우리의 현황이 어떤지, 어떻게 해야 이런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지… 커뮤니케이션은 일방적이지 않았다. 사장의 이런 메시지에 대해 직원들도 답을 했다. 또 부인들도 합세했다. 그런 것을 모아 책도 냈다. “좌절과 혁신, 그리고 도약”이라는 내부용 책이 그것이다.

그는 실용적인 사람이다. 실제 이 일이 영양가가 있는 것이냐를 냉철하게 따진다. 그와 관료주의는 상극이다. 관료주의는 실용적인 것보다 관념적이고 명분에 치우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권위주의, 온정주의, 형식주의 이 세 가지를 가장 싫어한다. 그래서 그는 최고경영자란 이름 대신 대표경영자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최고경영자에서는 권위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경영자는 직원들과 화합할 수 없다.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것이다. 직원들을 권위와 힘으로 누르기 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 공감대를 갖고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어설프게 봐주고 인정을 베푸는 것보다는 성과와 실력에 따라 냉정하게 평가하여 조직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겉치레나 형식보다는 실제 내용이 알차야 한다.


- 변화를 추구하는 솔선수범의 자세

그의 브랜드는 솔선수범이다. 지도자가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어느 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전기초자 시절, 그는 13평 아파트에서 자취를 하고 손수 운전을 하며 출퇴근을 했다. 큰 아파트에서 부인의 시중을 들며 생활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직원들에게만 열심히 일하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심은 천심이다. 사장이 앞장서서 그러는데 안 따라오는 직원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그런 솔선수범이 없었다면 직원들은 절대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철학은 지금의 이스텔시스템에서도 이어진다.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급여도 스톡옵션도 없다. 배수의 진을 치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긴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보다는 항상 변화를 꿈꾼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도약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2000년 한국전기초자는 위기를 벗어나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환갑도 훨씬 넘은 그는 훌륭한 경영인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얼마든지 나머지 인생을 즐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어려움에 빠진 이스텔시스템?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그의 취미는 일이다. 한가하게 골프를 치거나 유유자적하는 그는 상상이 안 된다. 그 또한 아무런 취미가 없다고 고백한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사는 그에게 유일한 취미는 독서와 가끔 하는 산행이다. 그는 대단한 독서광이다. 특히 어떤 분야에서 혁신을 일구어낸 사람들에 대한 에세이집을 좋아한다. 박정희, 마가렛 대처, 아덴하워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뚜렷한 소신과 비전으로 온갖 장애를 물리치고 성과를 이루어낸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支大本)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기업이 천하지대본이다. 기업이 쓰러지면 국가도 사회도 개인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망가진 기업을 되살리는 서 사장 같은 사람은 국보급 인물이다. 기업을 망가뜨리는 것은 쉽지만 되살리는 것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CEO가 바로 서두칠 사장이다. 아무쪼록 서 사장의 노하우가 대통령에게 잘 전달되어 국가와 사회도 한국전기초자가 일어서듯이 우뚝 일어서기를 기대해 본다.

입력시간 : 2004-09-15 14:1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