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눈뜨게 한 건 부대끼는 삶들"나벽수란 필명으로 오지의 삶과 문화를 전하는 고행의 작가

[한국 초대석] 여행작가 최종훈
"나를 눈뜨게 한 건 부대끼는 삶들"
나벽수란 필명으로 오지의 삶과 문화를 전하는 고행의 작가


이번 추석을 전후해 KTX 열차에 오른 사람들은 자리마다 하나씩 꽂혀 있던 ‘KTX’지에 실려 있던 글 하나에 기분이 야릇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속이 후련했을지도.

‘선의의 경쟁? 무조건 이기는 게 최고지!’아무리 컬트니, 엽기니 하는 데 목 맨 사회지만 귀성길의 읽을 거리 치고는 도가 지나치다 싶다. 그 글 속에 빠져 들어 한 줄 두 줄 읽어 가다 보면 아쉽게도 어느새 끝이다. 예를 들자면.

‘그러니까 무조건 남들보다 앞서서 달리려고만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란 말이지. 왜 앞에 있는 경쟁자들을 모조리 끌어 내리는 방법은 생각지 않는지 모르겠다니까.’ 어떻게 해서든 내가, 우리 가족이, 내 자식이 남보다 성공하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며 연막을 피우며 끝을 맺는 글 하단부에 이런 말이 보인다. ‘당신들의 성공을 염원하는 악마가’.

그 자가 들려 준, 자녀를 위한 기도문을 보자. 자녀에게 ‘위험 앞에서도 대의와 명분을 외면할 줄 아는 대담성을, 곤란과 고통의 길을 피해가는 지혜를 달라’는 등의 희구가 절절하다. 때 맞춰 5월에 발표됐던 글이다. 또 운전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어떤가. ‘빨간 불은 빨리 지나가라, 노란 불은 노련하게 지나가라, 파란 불은 파죽지세로 달려가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골계가 이쯤 되면 미국 작가 앰브로스 비어스가 1911년 펴냈던 독설과 역설의 전시장 ‘악마의 사전’이 바짝 긴장할 판이다.

최종훈(44), 바로 그가 나벽수(羅碧水)란 필명으로 악마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사람이다. 그런데 악마라면 이상한 악마다. 이전에는 번역가 또는 프리랜서 기고가라 불리웠던 사람이다. 아니면 오지 탐험가 혹은 실패한 386 운동권이라 해 둬도 좋을 것이다.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수술 하나 받고 나서, 지구상 어느 한적한 곳에 한참을 살러 간다는 사실.


- 악마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다

“종교나 지역 갈등 같은 문제는 빼고 연재해 달라는 KTX지의 제안이었죠.” 6년전에 펴냈던 책에서 흥미를 느끼고 맡긴 코너가 ‘KTX’지 창간 이래 명물이 됐다. 곧 가장 기다리는 코나라며 독자들의 e 메일이 몰려 들었다.

그러나 그 같은 재치만을 주목한다면 그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책 속의 ‘여행 에세이’란 난도 그의 것이다. 여기서는 본명을 밝힌다(독자들은 물론 이명동인(異名同人)이라는 사실을 알 리 없다). 세계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얻은 풍광과 경험을 재치 있게 풀어 헤치는 글이다.

이번 10월호에는 키르기즈스탄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만난 60대 일본인 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본디 체질적으로 일본인들을 좋아 하지 않는 그가 오지를 탐험하는 이들을 만나 함께 지낸 이야기가 자신이 찍은 선명한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나온다. “돈이 귀한 땅에서 300솜(약 1,400원)을 기꺼이 털어 주시더군요.”길 떠난 자들간의 묘한 연대감.

18일이면 그는 한국에 없다. 외교통상부 산하 코이카(KOICAㆍ한국국제협력단)의 일원으로 스리랑카에 1년동안 체류하기로 계약돼 있기 때문이다. 그스리랑카의 요청을 받아, 그 곳 직업훈련청에 소속돼 IBM 컴퓨터 편집을 지도하면서 원생들이 볼 교재도 만드는 일이다.

수도 콜롬보의 외곽에 살게 될 그에게 정부에서 지급될 돈은 한 달에 40만원인데, 그곳의 중류 생활은 가능하다고. 그러나 돈 벌 생각은 아예 없다. “현지에서 특히 절실한 구충제를, 월급 범위 안에서 구해다 초등학교 두 세 군데에 나눠 주고 싶어요.” 뿐만 아니다.막상 가 보면 추가 교재비나 의류 등 필요한 것들이 자꾸 생길 것이라는 예감이다. .

“몽고에서도 그렇지만, 원주민들에게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안 좋아요. 그들이 진실로 바라는 기술을 가르치고 싶어요. 기계요? 정부에서 넉넉한 지원을 받는 일본의 봉사단이 남기고 간 게 있죠.”그러잖아도 까만 그의 얼굴이 더 그을리게 됐다. 그러나 약간 나온 배는 그만큼 들어가리라.


- "넉넉해서 돕는건 아니다"

그는 그것을 가리켜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반명제라고 말했다. “일정한 나이가 됐을 때, 자신이 해 왔던 일을 토대로 남을 돕는다는 예가 됐으면 해요. 넉넉해서 누군가를 돕는 건 아니죠.”21세기 한반도에 자욱하게 깔린 이기심의 급소를 찌르는 듯 한 말이다. 이 통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시간을 거쳤다. 아니, 탐색해 왔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최고 9개까지 했어야 할 정도로, 편모의 외아들에게 세파는 짓궂었다. “강남의 한 건설업체 사장집에서는 전화로 뇌물 거래하는 것도 듣게 됐죠.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해 삐뚤어진 마음만 생기더군요.”그의 갈증을 풀어 준 곳은 맑시즘을 공부하던 지하 서클이었다.

그런데 가투(가두시위)를 할 수 없었다. 배부른 재수생들의 공부를 봐 줘야 하는 팔자에, 기득권자들에 대한 미움만 꽉 차 갔다.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운운’하는 노래가 자욱하던 3학년, 상황은 최악이었다. “바로 옆에 있던 동료나 후배가 신념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못 이겨 자살해 갔어요.” 개인적 한계에 몸부림 치던 그 시절, 그를 구원했던 것이 교회.

1988년 졸업한 그는 모 종교 잡지사에 들어 가 이 사회의 진실을 더 생생히 보게 됐다. “난지도에서 썩은 감자를 도려 내 먹는 사람들을 보고, 내가 넉넉한 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썩은 부분을 도려 내고 나와 사진 기자에게 대접하는 그들에게서 감동도 받았구요.”그러나 3년을 못 넘겼다. 저임금과 수익금 유용 등을 문제 삼고 회사 생기고는 처음으로 노조를 결성해 위원장으로 나서자, 사측은 그에게 떠나 줄 것을 종용했다. “노조 만든 사람과는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감성적 차원의 대응이었죠.”

기독교에 비판적인 기독교 출판사를 이끌게 된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아, 내 안에 하느님이 없다’,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 등은 대학 시절 본격 형성된 반골 기질을 그대로 이어 받은 셈이다. 그것은 이노베이션의 원동력이기도 했다.최근 출판계의 고질적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된 1인출판사를, 그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맹아적 형태로 시도했던 것. “내 부하 직원은 모두 딴 데 가면 편집장은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죠.”그렇게 거쳐 온 출판사가 모두 14개.


- 인도여행에서 새로운 삶을 보았다

1996년, 그는 직장을 그만 두고 아내와 배낭 여행을 뜬다. 삶과 죽음이 묘하게 공존하는 나라, 인도로. 뭄바이 공항을 내리지마자 새까만 손을 내미는 사람들, 억수 같은 빗속에 아기를 안은 채 잠 자고 있던 중년 여성 등의 모습은 그를 눈뜨게 했다.이후 인도행 네 번, 네팔행 세 번.

“삶에 회의가 드는 분은 꼭 한 번 가 보세요. 캘커타의 뒷골목을.” 테레사 수녀의 활동지다. “항생제가 없어 사소한 염증으로 썩어 가는 사람들, 시궁창에 쳐박혀 자는 노인들이 지천이죠. 상상을 초월하는 궁핍의 현장이죠.”이후, 그는 선교사들의 소개를 받아 네팔, 태국의 산악, 인도의 섬, 카자흐스탄,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등지의 오지를 전전했다. “가이드 북에 안 나오는, 진하디 진한 감동의 세계가 널려 있었다. 그러나 보통 한국인은 접할 수 없다. 왜? “그런 데 관광하는 것은 수입을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차단되니까요.”

2002년 봄, 그는 두 계단만 올라가도 숨 차, 협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몹시 급하다는 진단이 내려져, 그 순간 바로 튜브 수술을 받았다.그리고는 활동을 자제하며 그야말로 운기조식해 오던 터에 ‘KTX’의 제의를 받은 것이다. 마침 극동방송(FEBC)에서는 제 3세계 여행담을 부탁해 와, 생생한 여행담으로 마니아 청취자도 제법 생겼다.

잘 정리된 그의 거처 한 켠에 서적이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글로 된 볼거리가 부족한 사우디아라비아 교민들에게 우송할 책들이다. “소설, 교과서, 실용서 등 한 100권 돼죠. 좀 있으면 그들한테 보낼 책이 한 300권 더 오죠.” 3년전부터 친구 등으로부터 모은 책들을 그는 국내 대안 학교 같은 데 보내 오고 있다.지금까지 보낸 책이 약 5,000권.

스리랑카에서는 원한다면 체류 기간이 연장 가능하다. 그는 말한다. “더 있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현재는 이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발견하지 못 했으니까요.” 첫 직장이던 출판사에서 만나 지금껏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다는 부인 이나경씨가 물론 동행한다.

부부는 자식이 없다. 막무가내로 울기 마련인 아이들을, 그들은 “선험적으로 무서워 한다”고 했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이기적 동기에서 자유롭고 싶어요.” 마침내, 그는 ‘악마’로 부터도 자유롭게 되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른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10-14 11:05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