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사랑앓이 였어요"영화 서 치열한 사랑 몸으로 표현

[스타줌인] 영화배우 이은주
"지독한 사랑앓이 였어요"
영화 <주홍글씨>서 치열한 사랑 몸으로 표현


“ 정사 장면에서, 단지 섹스가 아니라 정서(emotion)를 표현했다.” 최근 린든 바버 시드니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공개된 영화 ‘ 주홍 글씨’(감독 변혁ㆍ제작 LJ필름)를 보고, 이은주(25)의 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쯤 되면 격찬이다. 흔히 “ 얼마나 벗었는가”에 관심이 쏠리기 쉬운 정사 장면, 그 안에 무엇을 담았길래.

“ 촬영해 놓고 모니터를 보면서 한참 울었어요. 속살을 보여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진짜 힘든 점은 따로 있었죠. 치명적인 사랑을 앓는 내면을 전라의 정사 장면을 통해 드러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요.” 그래서일까, 이은주는 눈에 띄게 야위었다. 19일 ‘ 주홍글씨’의 언론시사회 직후 서울극장 인근의 한 까페에서 만난 그녀는 원래 마른 몸이 더욱 수척해져 무척이나 가냘픈 인상을 주었지만, 눈동자 만큼은 맑은 기운이 흘러 넘쳤다.

- 정사장면, 좀 아니까 더 힘들어

“ 영화 ‘ 오! 수정’(홍상수 감독ㆍ2000년) 때도 정사 장면은 노골적이었어요. 그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 어떻게 해요?’ 라며 물어 가며 찍었죠. 그런데 지금은 세상을 살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상태에서 찍으니까, 훨씬 더 어렵더라고요.”

‘ 처절하게’ 찍었다는 본인의 표현처럼, 작품에 워낙 몰입하다 보니 시나리오에 없던 대사를 내뱉아 스스로 놀라기도 했단다. “ 소파에서 격렬한 정사 연기를 펼치다가 ‘ 내가 다 가질 거야, 가지마’라고 울부짖었죠. 감독님이 언제 그런 대사를 생각했냐고 칭찬하시는데 쑥스러웠어요. 저도 모르게 나온 대사라서.”

이은주가 이렇듯 혼신을 다한 ‘ 주홍 글씨’는 너대니얼 호손의 동명 작품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에서 알 수 있듯, 불륜이 빚는 욕망과 일탈의 비극적 파국을 그린 작품. 이은주는 단짝 친구(엄지원)의 남편인 기훈(한석규)과 사랑에 빠지는 비운의 가희 역으로 열연했다. “ 너무 복잡해서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책 같은 간접 경험에서조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을 만큼 독특했죠. 겉 모습은 쿨 해도 속으로는 혼자 앓는…. 그래서 그녀가 불쌍해 보였어요.”

이은주는 이어 “가희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성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실제의 내 모습과 닮기도 했다”며 애착을 보였다. 그러나 “ 가희처럼 위험한 사랑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 주변에서 어른들이 그러시는데, 가희 같은 사랑(불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대요. 그런 세상이 두려워요.”

신비롭고 서늘한 이미지를 지닌 때문일까. 이은주는 유독 죽음과 인연이 깊은 배우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영혼의 사랑으로 주목 받은 영화 ‘ 번지 점프를 하다’(2000)에서는 교통 사고로 운명의 연인을 남겨두고 떠나더니, ‘ 연애소설’(2002), ‘ 하늘정원’(2003) 그리고 ‘ 주홍글씨’에 이르기까지 매번 극 중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번에는 트렁크 안에서의 비극적인 종말. 그야말로 “ 딱 죽고 싶을 만큼 고생했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 지옥에 들어 갔다 나온 기분이에요. 사실 촬영 전 날, 집 주차장에서 차 트렁크에 들어가 봤었거든요. 1시간 정도. 처음엔 아늑했는데 조금 지나니 무척 갑갑했어요. 그런데 실제 촬영은 나흘이나 걸렸어요. 촬영 내내 씻지도 못한데다 피투성이를 한 채 갇혀 있으니,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이 같은 혹독한 고통을 이겨낸 이은주는 “ 이전까지의 작품 어떤 것 보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 부산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머니가 많이 우셨어요. 영화 촬영기간 ‘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딸의 눈물들이 화면에서 보였나 봐요.”

- "가장 기억에 남을 작품"

고 3때 영화 ‘ 송어’로 데뷔한 뒤 ‘ 오! 수정’, ‘ 번지 점프를 하다’, ‘ 태극기 휘날리며’ 등 그 동안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고루 후한 평가를 받으며 정상의 영화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은주는 올해로 스물 다섯. 나이에 비해 깊이 있는 표현력을 지닌 그녀의 10년 뒤 모습이 궁금하다.

“ 10년 뒤요? 금방 올 것 같아요. 전혀 감은 잡히지 않지만. 계속 연기 생활을 할 수도 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 수도 있겠죠. 무슨 일이든, 행복을 위해서 살 거에요.” ‘ 나이를 먹어도 오래도록 좋은 연기를 펼치겠다’는 식의 모범 답안을 슬몃 비껴 날 줄 안다. 여하튼 29일 ‘주홍글씨’ 개봉을 기다리는 그녀는 지금, 행복한 연기자다. 자신의 정신과 에너지를 이번 연기에 쏟아 넣었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10-27 13:40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