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낳게 한 브랜드는 '신용'섬유회사에서 반도체 관련사업으로 전환, 급속성장 이룩배려와 관심·친화력으로 안정적 경영 이끈 기업가

[리더탐구 성공의 조건] 최철수 코리아인스트루먼트 회장
성공을 낳게 한 브랜드는 '신용'
섬유회사에서 반도체 관련사업으로 전환, 급속성장 이룩
배려와 관심·친화력으로 안정적 경영 이끈 기업가


그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낼 모레가 칠순이지만 아직 정력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60~70년대 전 세계를 다니며 섬유 관련 수출을 해 경제적으로 많은 기여를 했고 이를 기반으로 부경통상이란 섬유회사를 만들어 20년 이상 운영했다. 부평에 공장이 있던 이 회사는 한때 2,000명 가까운 직원을 거느린 큰 회사였다. 여기서의 공로를 인정 받아 84년에는 수출탑을 수상했고, 88년에는 모범납세자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섬유산업의 여건이 나빠지자 이 사업을 정리하고 반도체 관련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해 코리아 코리아인스트루먼트(KI)란 반도체 검사 관련 회사를 설립해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20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급속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 '신용이 모든 것의 기본' 원칙

섬유회사에서 반도체 관련 산업으로 바꾸면서까지 변함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신용이다. 그 회사에 들어서면 입구에 ‘신시위본’(信是爲本)이 방문객을 맞는다. 신용이 모든 것의 기본이란 뜻이다. 그는 약속한 것은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40년 이상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성실 끝에 오는 신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도 100여명 가까운 바이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번은 유대인 바이어로부터 품질 문제 때문에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클레임 금액이 엄청났다. 관례상 심각한 것은 아니었고 맞고소를 하면 얼마든지 승소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고 이를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바이어 주장이 옳고, 두 번째는 설혹 우리가 이긴다 해도 얻을 게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단기적으로 돈은 잃었지만 그 덕에 회사는 신용을 살 수 있었다. 한 번은 납품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품질문제가 발생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물건은 만들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납기를 맞출 수 없었다. 그는 과감하게 전세기를 동원해 문제를 해결했다.

수송비를 빼고 나면 적자가 나는 것은 당연했지만 감동한 바이어는 다음 해에 엄청난 양의 수주를 줌으로써 보은했다. “모든 것의 기본은 신용입니다. 이것만 잃지 않으면 절대 실패할 수 없지요. 단기적인데 너무 급급하면 안 됩니다. 특히 사업에서는 그렇지요.” 그의 브랜드는 바로 신용이다.

- 일관성 있는 경영철학

그의 두 번째 좌우명은 ‘신종여시’(愼終如始)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는 의미다. 시작할 때는 그럴 듯 하다가 뒤에 가서 흐지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어로 얘기하면 일관성(Consistency)이다. 사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이것이다. 말을 자주 바꾸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큰 장애요소이다. 특히 이런 철학은 사람을 대할 때 나타난다.

한 고위 임원으로부터 들은 얘기이다. “회장님은 함부로 사람 자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왕 썼으면 믿어야지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하면 되겠냐는 것입니다. 설혹 그만 두게 하더라도 먹고 살 방편은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인지 직원을 비롯한 주변 사람으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사업에 있어서도 그는 철두철미하다. “섬유업은 원초적으로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사, 제직, 염색, 가공, 재단, 봉제, 포장 등 여러 단계를 거치고 어디서 무슨 문제가 발생할 지 모릅니다. 치밀하고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지요.” 그 때문인지 지금의 반도체 업에서도 그의 치밀함은 빛을 峠磯?

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높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노사 분규 한 번 난 적이 없다. 이런 배려는 주로 편지를 통해 전달했다. 1,800명 직원에게 매달 편지를 써서 보낸 얘기는 지금도 업계에 유명하다. 이런 것이다. 외지에 보낸 자식 걱정에 잠 못 드는 부모를 위해 월급날마다 편지를 보내 자식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지난 달에는 몇 번 외출을 했고, 잔업은 얼마나 했고, 봉급과 보너스는 어떻게 되고, 현재 저축 상태는 어떻다는 것 외에 자잘한 근황까지 알리면서 일을 잘 하고 있으니 염려 말라” 는 내용이었다. 편지 작성을 위해 전담 직원을 두기까지 했다.

- 헝그리 정신과 효심이 성공의 동인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로 어머니이다.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어머니 얘기를 할 때는 목이 메고 눈물이 맺힌다. 천석꾼의 딸로 태어나 중농의 집에 시집와 온갖 고생을 했다는 그의 어머니, 4대 봉제사를 지내는 영천 최씨 종가집에 시집 온 맏며느리, 어려운 살림에 그나마 마흔에 남편을 잃고, 홀시아버지까지 모셔야 하는… 그 모습이 어떠할지는 비디오를 보듯 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를 강하게 키웠다. 성주가 고향인 그는 대구에서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그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얘기한다. “집안 살림도 어렵고 하니 내년부터는 독립을 하도록 해라.” 그의 회상이다. “앞이 캄캄하데요. 도대체 어디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하나”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고민하던 그에게 귀인이 나타나 미군 부대 안에 도서관 사서 자리를 마련해 준다. 덕분에 그는 집안의 도움 없이 대학까지 다닌다.

그의 성공 동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헝그리 정신, 또 하나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는 효심이 그것이다.

성공은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의 경우는 미군 부대 도서관에서 알바를 하게 된 것이 행운의 시작이었다. “특별히 힘든 일은 아니었어요. 흩어진 책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떨어진 휴지나 치우는 정도의 일이었지요. 나머지 시간은 공부를 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성실을 통해 기회를 행운으로 만든다. 그 도서관에는 미 문화원장(USIS. 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인 맥그루더씨가 자주 드나들었는데 열심히 근무하는 그를 눈여겨 보았다. 조건이 좋은 미 문화원 도서관에 취직을 시켜주고 나중에는 서울에 있는 미 원조기관에 취직까지 시켜준다.

덕분에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미국인들과 친분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데 이것이 무역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소하게 시작된 우연이 이런 행운을 가져 올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찾아온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행운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실해야 한다.

- 변신과 도전이 일군 오늘

그는 끊임없이 변신하고 도전하는 사람이다. 전쟁 이후 그는 미국 원조기관에서 근무했다. 다른 곳보다 월급도 많고 근무 여건도 편했다. 다들 들어가지 못해 안달을 하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그들은 언젠가 떠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비록 월급은 적었지만 그는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들어간 회사가 동신섬유란 회사이다. 딱 10년만 근무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최선을 다해 일한다. 영어와 성실을 무기로 전 세계를 다니며 일감을 따오고 덕분에 회사는 많은 돈을 번다. 그래서 31살이란 젊은 나이에 중역이 된다.

하지만 거기 머물지 않고 독립을 하기로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큰 결심이자 도전이었다. 또 대기업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오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과감히 뿌리쳤다. 그리고 20년간 한 우물을 팠다.

시대 변화 앞에 그는 또 한 번 도전장을 던졌다. 생소하지만 전망이 밝은 반도체 관련 사업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

그는 보수와 진보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 남의 돈을 안 쓴다는 면에서는 철저한 보수주의를 택하고 있다. 40년간 사업을 하면서 한 번도 대출을 받은 적이 없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이자는 잠을 자지 않는다”는 철학 때문이다. 하지만 도전적으로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신용금고를 인수하기도 하고, 리스회사를 만들기도 했는데 별 다른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자식들 바르게 키워 반듯한 사회 동량으로 만드는 것, 둘째, 사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하는 것, 셋째,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세 가지 모두 달성했다.

그는 부인과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연세대를 나와 스위스 IMD를 졸업한 장남은 코리아인스트루먼트를, 힐러리가 나온 웰슬리와 하버드를 나온 둘째는 공연기획사 사장을 맡고 있다. 셋째는 디자인 전공 후 결혼하여 잘 살고 있으며 막내는 콜로라도에서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하고 있다.

또 그는 독실한 캐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인생의 양대 축을 사업과 종교라고 할 정도이다. 평신도 회장을 두 번씩이나 역임했고 지금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종교에 두고 있다. 그는 그 동안 받은 것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 주위를 사랑으로 가꾼 성공한 인생

성공이란 무엇일까? 성공을 함부로 얘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첫 번째이다. MBC 프로그램 ‘성공시대’에 나왔던 인물 중 반이 나중에 실패한 것은 그것을 말해준다.

또 하나는 대외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실패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건강을 잃기도 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성공의 모델로서는 손색이 없다. 우선 건강하다. 지금도 술과 담배를 즐기고 필드를 찾아 골프를 친다. 도저히 칠순 노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 성공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평생 사업을 했지만 즐기면서 했기 때문에 별다른 스트레스가 없어 보인다. 가정에서 성공했고 부인과 자식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요즘은 막내가 쌍둥이를 낳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관련된 많은 일들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를 만나고 나올 때 ‘저 나이에 저 정도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한근태 서울과학종합대 교수


입력시간 : 2004-10-27 18:31


한근태 서울과학종합대 교수 kthan@ass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