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국면 해결할 조정자 절실"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 마련에 주력, 노동문제 권위자

[인물포커스] 김원배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대치국면 해결할 조정자 절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 마련에 주력, 노동문제 권위자


지난 1998년 대통령 자문 기구로 출범한 노사정위원회가 요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노사정위를 탈퇴한 민주노총을 다시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여 명실상부한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다. 노사정위의 활동이 정상화돼야 참여 정부가 목표로 내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 통합적 노사 관계 구축이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비 정규직 보호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데다 공무원 노조의 노동3권 요구 등과 맞물려 노정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노사정위의 정상화가 요구되고 있다.

“지금 노정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양자간 진지한 대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치 국면을 해결할 조정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노사정위원회의 운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김원배 노사정위 상임위원(53)은 “대화로 풀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마구 달리는 기관차처럼 대립각만 세우고 있다”며 이 같이 강조한다.

한마디로 지금의 대치 국면을 해결할 수 있는 조정 기능의 부재를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 김 위원의 솔직한 심경이다. 그래서 김 위원은 빠른 시일 내에 노사정위의 활동이 정상화 돼야 하고 당 – 정 – 청 간에 유기적인 관계를 정립해 정책의 효율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 "민주노총, 노사정위에 복귀해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년 1월 중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야 노사정위가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습니다.”김 위원은“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노사정간 대화가 절실한 시점이며 따라서 민주노총이 복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 중”이라며 이같이 강조한다.

김 위원은 우선 현재의 내쇼날센터 차원과 기업별 교섭 단위의 중간 형태로 업종별 교섭 체제가 노사정위 안에서 가동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쇼날 – 업종별 - 기업별 교섭의 3중 협의체를 확립해야, 보다 합리적인 타협의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다. 또 논의의 주제도 좀 더 넓혀 노동과 관련된 사회,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다룰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그리고 김 위원이 가장 중점을 두고있는 것은 바로 ‘노사 관계 법제도의 선진화 방안’이다. 언제까지 대립과 갈등의 노사 관계가 지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제노동기구(ILO)나 선진국 수준의 국제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 정리 해고, 복수 노조 가입, 대체 근로 등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절차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선진화된 법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법 테두리 내에서 노사 자율에 의한 타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노사 대표와 진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현 제도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논의, 노사관계 제도를 선진화시켜야 합니다. 합의가 안 된다 할지라도 논의 자체만으로도 입법 과정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위원은 ‘노사 관계 법제도의 선진화’는 참여정부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사 문제가 국가 경제 발전에 더 이상 악재로 작용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노동 현안과 관련 공무원 노조의 노동 3권 요구에 대해 김 위원은 “공무원 노조 문제는 정부가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는 문제”라며 “공무원 노동권의 인정 범위는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그것은 정치, 사회적 여건에 따라 국민들이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김 위원은 국민의 87%가 반대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무원 노조의 파업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무분별한 파업과 장외 투쟁은 더 이상 설 땅이 없으며 따라서 사회적 대화 기구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 "명분없는 투쟁 설자리 잃어"

김 위원은 지난 여름 20여 일의 불법 파업을 펼치며 노동계의 선봉장에 섰던 LG칼텍스정유 노동조합이 민주노총을 탈퇴했을 때나, 지난 7월 서울지하철노조 지도부가 파업을 주도했을 때 많은 조합원들이 “국민적 지지를 못 받는 명분 없는 투쟁엔 참여할 수 없다”며 파업 대열에서 이탈,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고 있다.

또 현대중공업 노조가 사 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의 자살 문제를 놓고 민주노총과 팽팽히 대립하다 제명 당하는 길을 택한 것도 노동현장에서 일고 있는 커다란 변화의 흐름이 반영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제 현장 조합원들이 명분없는 지도부의 투쟁노선에 등을 돌리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정치지향적 노동운동에 대해 과거에는 단위노조가 공감을 했지만 이제는 단위노조가 조합원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 내부에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참여를 꺼리는 것도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갈 경우 투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로 들린다고 설명한다.

“노동조합도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한국 경제가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노조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경제 전반의 산업구조와 맞물려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노사정 대화가 더욱 중요하고 절실합니다.” 급변하는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시야를 크고 넓게 가져야 노동 운동도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그 대안의 하나가 바로 사회적 대화 기구의 활성화라는 것이 대치 정국을 푸는 그의 해법이다.

김 위원은 30여년을 줄 곳 노동청, 노동부에 재직하면서 노동문제 해결에 열과 성을 다해 왔다. 노동 문제에 관한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김 위원이 공무원으로서의 첫발을 노동청(현재의 노동부)에서 내 디딘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김 위원은 대학 시절에는 장래에 전자 산업이 유망하다는 전망에 따라 이에 관한 기초 이론을 습득키 위해 응용 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기업과 정부의 R&D투자 여력을 감안할 때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결국 그 때의 실망감은 김 위원을 공무원으로서의 새로운 길을 모색케 했고 김 위원은 결국 1973년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합격 후 1974년 첫 발령을 받은 곳이 바로 노동청이다. 노동청에서 근무 하던 중 김 위원은 제 1기 공무원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경제학과)에서 일반경제이론과 노동경제학을 전공했다.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것은 앞으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동 문제란 사회학적 접근도 필요하겠지만 경제학적 측면이 함께 고려되어 풀어나가야 한다는 판단에서 였습니다”

- 민노총 합법화 기틀 마련한 장본인

김 위원의 이 같은 노력은 그가 노동부에 근무하면서 일궈낸 여러 업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 위원은 무엇보다 지난 96년 청와대 노동비서관 시절에 노사 개혁을 위한 대통령의‘신 노사 관계 구상’발표와 ‘노사관계개혁위원회’발족 이후 여야 합의로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됐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김 위원은 당시 노개위를 발족시키기 위해 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성북구 삼선동을 수 없이 오가며 민주노총을 설득, 끝내는 국내 최초로 노사정간 대화를 통해 노사 문제 해결에 나선 점을 무척 자랑스럽고 보람 된 일로 생각하고 있다. “당시 합법 단체로 인정을 받지 못한 민주노총을 끌어 들이기 위해 합법 단체인 한국노총과의 인원 구성 문제를 놓고 무척 진통을 겪었으나 다행히 민주노총을 대변하는 공익위원을 참여시켜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김 위원은 이후 노정국장 시절 민주노총을 합법화해 제도권 내에서 합리적인 노동 운동 단체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또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시절에는 전력 산업 구조 개편 방침에 따른 한전 분할과 관련한 파업을 합리적으로 조정, 노사간 합의를 도출해 정부의 구조 조정을 뒷받침했다. 기획 관리 실장 때는 대우자동차 매각에 따른 분규 해소는 물론 민주노총과 합의에 의한 발전노조 파업, 보건의료노조 파업 해결 등 굵직한 노사 문제를 풀어나갔다.

올해 노사정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돼서는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을 체결하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노동 행정은 첨예한 이해 대립 집단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원칙에서 벗어나면 매도 당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사무관 시절부터 이러한 훈련을 받습니다.”정통 관료의 기질이 흠뻑 몸에 밴 김 위원은 “노동부 직원들이 열린 마음으로 행정에 임하고 있는 것도 다 이 같은 훈련 덕택”이라고 설명한다. 김 위원은 중립성의 원칙을 지키면서 갈등 조정 능력을 배양해야 진정한 노동행정가가 될 수 있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최영규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4-11-17 16:21


최영규 편집위원 choiyk56@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