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음악적 진정성의 장'EBS SPACE 공감' PD, 라이브무대 꾸며내는 감성의 무대 사령탑

[한국 초대석] EBS TV 총감독 김준성
'공감'은 음악적 진정성의 장
'EBS SPACE 공감' PD, 라이브무대 꾸며내는 감성의 무대 사령탑


2004년 12월 28일 오후 6시 30분 서울 강남구 도곡동 EBS TV의 스튜디오 ‘스페이스’. ‘TV는 바보 상자’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드는 100% 라이브 무대의 산실이다. 비록 강남이라지만 후미진 곳. 게다가 쌀쌀한 바람에 날씨마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녹화를 위한 실제 무대가 시작되려면 30분 남았다.

그러나 이날 역시 긴 대열이 늘어서며 일찌감치 분위기를 띄운다.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해 둔 사람들이 현장에 와서 티켓을 받으려는 줄이다. 애석하게도 좌석(151석)을 지정 받지 못 한 사람들은 오늘도 계단이나 보조석에 앉아 갈증을 푸는 수 밖에.

연주자에게는 설레는 라이브 무대
널찍한 홀 벤치에 앉아 그 광경을 잠시 바라 보던 김준성 총감독(41)이 다시 홀로 들어가 오후 4시부터 이어 온 리허설을 마무리 짓는다. 이날은 주목 받는 첼리스트 양성원과 일본서 건너 온 피아니스트 야마구치 히로야키 듀엣이 이끌어 가는 무대다.

거쉰의 ‘서머 타임’을 재즈 뮤지션 뺨 칠만큼의 즉흥으로 연주하던 양씨, “좁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의 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국에서 라이브 연주의 기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며 이 프로가 지금껏 보여 온 갖가지 시도에 대해 “아주 성공적”이라는 딱지를 하나 붙였다.

이렇듯 출연자부터 설레는 이 프로의 실제 공연을 본 사람들은 가히 선택 받은 자들이라 할 만하다. 공식 인터넷 도메인(www.ebs-space.co.kr)에 정규 가입한 회원 3만9,000여명 중 특정 공연의 관람을 희망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있기 닷새 전에 추첨 과정을 통해 뽑혔으니. “예술의전당 – 세종문화회관 – 국립극장 – LG 아트센터, 그 다음이 저희랍니다.” 온 라인상으로 가입한 회원 숫자로 봤을 때의 순위를 김 감독이 일러 준다. 그러나 현장의 열기로 치자면 단연 으뜸이다.

한 공연당 평균 1,000여명의 참가 희망자 중 참가한 사람들은 ‘선택받은 소수’라는 동질감 하나만으로도 언외별전(言外別傳)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출연자가 김창완이나 이루마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사람일 경우, 신청자의 수는 거기서 적어도 서너배 증가했다. 군데 군데 이틀 공연을 치렀던 것은 그런 경우다. 매달 22차례의 특급 라이브 무대가 펼쳐지는 속내를 들여다 보자.

가까운 예로 12월 16~17일, 이틀동안 펼쳐졌던 그루브 올 스타즈의 무대에 이 조그마한 공연장을 날려버릴 듯한 환호가 가득 찼다. 1970년대의 주류 음악이었던 디스코와 펑크를 주조로 한 10인조 밴드의 음악에는 라이브가 아니면 흉내낼 수 없는 아우라(靈氣)가 넘쳐 문자 그대로 뒤집어지게 만들었다.또 지난해 10월에는 명인시리즈를 시작, 황병기ㆍ김영동 등 국악계의 거장들을 불러 냈다.

뭐니뭐니 해도 2004년 4월 1일 있었던 개관 공연만 할까. 세계적이란 수식어가 조금도 지나치지 않는 디바 신영옥과 이정식ㆍ한충완 등 한국의 대표적 재즈 뮤지션 5명으로 이뤄진 수퍼 밴드가 가졌던 65분간의 협연이었다. 돈으로 따지자면 부르는 게 값이라 해도 좋을 자리였다. VIP 초청 공연 형식으로 치러졌으나, 보조석(방석)을 급히 설치하고도 모자랐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홀에는 지금까지의 포스터는 물론 참가자들 각각의 사인이 곁들여져 있어, 그날의 감흥이 생생히 되살아 나는 듯 하다.

연주가 중심이 되는 유일한 공중파 프로
김 씨는 PD 2명, 작가 4명, 조연출 2명, 무대감독, 티킷 매니저, 홍보 등 10여명으로 이뤄진 제작진을 총괄하는 사령탑이다. EBS TV의 단일 프로로서는 최다의 팀이다. 한 달에 갖는 무대가 무려 22개니 그럴 법도 하? 시청률이라는 변덕스런 성감대가 지시하는 대로 프로 하나를 제멋대로 살렸다 죽였다 하는 이 땅의 공중파라면 꿈도 못 꿀 현상이 이 라이브 무대 덕택에 보란 듯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진정한 마니아들은 재즈나 언더 그라운드 등 연주가 중심이 된 음악쪽에 있죠. 조용필이나 보아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라이브 팬들이 뜻밖에도 많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무대 바깥 홀에서 현재 진행중인 설치예술전 ‘쉼展’의 독특한 작품을 배경으로 자신의 신념을 들려주는 김 총감독의 말에 힘이 실려 있었다. 상업 방송의 엄청난 물량 공세속에도 이 공간이 저렇듯 오롯이 커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존재에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다.

양친이 음악 애호가인 데다 여동생(정희)이 피아니스트라는 천혜의 환경 덕분에 그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취미로 기타를 잡은 그는 서예와 그림까지 넘보며 중고 시절을 보냈다. 대학(한국 외대 )에서 스페인 어학과를 택한 것이 클래식 기타의 본고장으로 유학 가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다 할 정도로 음악 사랑이 지극했다.

“4년 내내 거의 수업을 빼 먹고 학교(서클룸ㆍ미네르바 동산)에서도, 하숙집서도 기타만 쳤어요.” 수준급에 이른 그의 기타를 KBS가 주목해 방송 막간 음악 연주에 썼고, 결국 EBS에까지 인연이 닿았다. “온화하고 인간적인 분위기에 매료됐죠.”군을 마친 그는 1991년 EBS 최초의 음악 전문 프로 ‘EBS 음악실’의 PD로 세상과 만났다. 이어 ‘예술의 광장’을 맡으면서 인접 장르에의 지식과 경험을 쌓아 갔다.

그가 맡은 프로의 장면 하나 하나를 유심히 본 사람들이라면 상업 방송사들의 음악 프로와는 분명 다른 감각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자신이 음악을 알기 때문이다. “먼저 악보를 보고 난 뒤, 콘티를 짜죠. ‘예술의 광장’때는 뮤지컬 악보까지 분석했어요.”그래서 그가 맡은 음악 프로의 카메라 시선은 ‘노래방 영상’이 아니다. 연주자들이 음을 만들어 내는 순간 순간, 그들의 육체 언어가 렌즈에 포착되는 것이다. 협소한 공간 속, 대형 스튜디오의 허장성세를 비웃는 공감의 세계가 그렇게 일반인의 눈앞에 재현된다.

그럼에도 그는 아쉬움이 있다. 공연 그 자체만을 충실히 전해주기를 원하는 스탭진과 방송 조직 사이에서의 정체성이 요즘 슬슬 그를 헷갈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2004년 봄부터 틈틈이 짬을 내 보고 있는 책이 고우영의 ‘삼국지’다. 연재 당시 쿠데타 정권측의 제제로 잘렸던 부분까지 다 나오는 무삭제판이다. “내 역할이 유현덕인지, 조조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내부 네트워크와 외부 자문단 사이에 위치한 자로서의 갈등이겠죠.”

현덕이라면 그는 팀의 인화를 최고의 덕목으로 쳐야 한다. ‘공감’은 유독 촬영이 늦다. PD의 말빨이 최고인 일반 방송이라면 전횡을 해도 좋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값을 하려는 연주자측의 입장을 감안해 심야 작업도 마다 않는다. 이에 반해 조조로서의 그는 특히 장기 프로젝트의 경우, 작품 속으로 빠지지 않고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 어느 쪽이 진정한 자신의 몫인지, 그의 말을 빌면 “아이덴티티가 헷갈린다”고. 경영진과 실무진, 양측의 중간에 선 자의 고민일 터.

사실 ‘스페이스’에는 작은 방송사 EBS로서는 큰 것들이 걸려 있다. 여타 강당과 같았던 곳을 5억의 돈을 들여 연주 공간으로 만든 것부터가 모험이었다. 여기에 하루 공연하는 데 500만원, 방송하는 데 300만원 등 1년이면 13억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방송국측은 자체 기획으로 거의 매일 공연을 벌인다는 사실, 특히 좌석을 어떻게 매꾸느냐의 문제를 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실 처음에는 그도 두려웠다. 그러나 그에겐 1년에 52개 프로그램을 만든 13년 경력이 최대의 자산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맺어 둔 인적 네트워크가 그를 ‘공감’의 세계로 내몬 것이다.

거장들의 생생한 음악 들려주고 싶어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 형태는 어떤 게 돼야 할까? “공연과 방송을 긴밀히 연결시켜 보자는 게 우리의 의도라면, 외형적으로는 성공이겠죠. 이런 류로는 한국 방송 최초라는 자부심도 있고요. 그러나 방송국의 전폭적 지원덕택에 꾸려가고 있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죠.” 그는 현실적 형평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공연 무대를 TV 매체로 옮기려는 공중파 방송들의 숱한 착오에도 불구, 이 무대가 방송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분명 다행에 속한다.

현장의 열기를 놓친 많은 사람들을 위해 매주 토ㆍ일요일 밤 10시부터는 ‘EBS SPACE 공共ㆍ감感’이 방송되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방송 채널로. 하고픈 말이 있단다. “우리는 회원한테는 완전 무료예요. 비회원이시라면 클릭해서 가입하세요.” 일류들을 출연진으로 확보해 놓고도 저렇듯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운영 방식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6시가 넘으면 한둘씩 모여 들어 어느새 홀을 가득 채우는 대열은 ‘공감’에 대한 가장 확실한 공감의 징표일 터. 맨날 보던 스타들만 나오는. 그것도 입만 뻥긋거리지 않을까 하는 의심까지 자아내는 공중파 방송의 행태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가 앞으로 꼭 출연시키고 싶은 사람 혹은 콘텐츠가 있다. 실력 있지만 기회 못 잡은 사람들, 상업 방송에서는 보기 힘든 실력파들, 잊혀져 가는 거장들(신중현, 조동진 등)의 생생한 음악 등을 그는 꼽았다. 또 독일이나 일본 등지의 기획사가 슬슬 자료를 요청하는 터에, 방한하는 외국 연자들이 한 번은 들르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2005년부터는 라이브 음반을 만들어 연주자들에게 기증, 그 동안의 미안했던 마음을 뒤늦게나마 풀어 보고도 싶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1-04 16:47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