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최고의 가치"산사랑·자연사랑 일념으로 시민운동 대열에 헌신한 환경운동가

[인물 포커스] 이수용 우이령보존회 운영위원장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최고의 가치"
산사랑·자연사랑 일념으로 시민운동 대열에 헌신한 환경운동가


“제 종교(宗敎)는 산(山)입니다.”

이수용 우이령보존회 운영위원장은 어느덧 종교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연유로 산을 이렇게 오르내리고, 이렇듯 산에 대한 책만 줄곧 펴내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결국 그의 종교 활동은 산을 오르내리는 것. 틈만 나면 산으로 강으로 나설 정도로 ‘종교 활동’이 잦은 탓에, 집에서는 소홀한 이단(異端) 가장이다. 산이 주는 평온함으로 심신 수양은 기본, 대한민국에서 그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누비고 다닌 탓에 대신 건강은 덤으로 얻었다. 환갑을 넘겨도 벌써 넘긴 나이지만 산에서는 훨훨 날아 다니는 20대. 산이 좋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개의치 않은 서로의 나이이지만, 젊은 사람들보다 산을 잘 오르는 그는 내심 미안한 마음에 그 간 나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 주눅들게 하고, 무안 주는 것 같아 지금껏 나이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 올해 예순 둘입니다.”

허연 암벽을 드러낸 북한산 인수봉이 손 뻗으면 닿을 듯한 우이동. 그가 대표로 있는 수문출판사가 있는 곳이다. 출판사 사무실은 그가 산 밑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명(名)은 출판사지만, 실(實)은 등정(登頂) 대기실이다. 4층 사무실을 오르는 계단에만도 등산용 스틱과 등산화 너댓 켤레가 자릴 잡고 있고 옥상의 별채에는 배낭, 침낭 등 온갖 등산 장비들이 꽉 들어찼다. 마음만 먹으면 백두대간이라도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돼있다.

산업훈장 받은 '환경지킴이'
이 사장이 몸담고 있는 우이령보존회는 북한산국립공원의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의 고갯길, 우이령의 확대 포장을 막기 위해 결성된 시민단체. 이후 동강 영월댐 건설, 수도권 외곽 고속도로 건설, 국립공원 내 송전탑 건설 등 달걀로 바위 치기에 비유 될 정도로 불가능해 보이던 국책 사업들을 저지시켰다. 특히 동강 영월댐 건설 계획 백지화로 동강의 생태계와 비경을 지켜낸 쾌거는 대 정부 정책 반대운동의 첫 승리로 시민운동의 등불로 기록되고 있는 사례다. 산사랑 일념으로 국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서 열심히 운동한 그에게, 아이러니하게도, 2003년엔 철탑산업훈장이 수훈됐다. 산업 훈장은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자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적 자연 보호 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동강 위원장으로서 동강 살리기에 앞장서 오고 있는 그가 산, 강 등 자연 환경에 대해 가지는 애착은 남다르다. “서울 청계천 복원 공사 한 번 보세요. 서울의 자동차가 줄어서 필요 없어진 도로를 걷어내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산허리 잘라서 길을 내고 댐 쌓는데, 나중에 살만 해지면 다 걷어내야 할 것들입니다.” 불편한 걸 참지 못하는 인간은 얼마나 근시안적인 속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후손들을 생각해서라도 약간의 불편만 감수한다면 자연은 우리에게, 개발로 누릴 수 있었던 이익의 몇 갑절은 베풀어 줄 겁니다.”

출판사 사장으로 보다는 환경 운동가로 더 알려진 그답게 정부의 환경 정책에 대한 비판이 없을 리 만무하다. “환경 의식이 없는 정부의 책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관광 산업에 눈은 뜨고 있다지만, 내 놓는 정책들을 보면 하는 말과 달라요. 천성산, 새만금. 이 모든 게 대선 공략을 뒤엎는 것들 아닙니까.” 일정 비율의 세수(稅收)를 자체 충당해야 하는 자치 단체들의 무분별한 개발에도 일침을 가했다. “돈만 되면 뭐든지 하려고 달려드는 게 자치 단체들입니다. 아름답다는 데에는 모조리 숙박 시설들을 허가합니다. 그런데 외국에선 우리와는 반대로 비경 안에는 숙박 시설 같은 것 절대 앉히지 않습니다. 자연은 자연대로 지키면서 수입은 수입대로 늘릴 수 있기 때?訣?”

숙박 시설을 안에다 짓지 않으니 자연이 보존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다면 수입을 늘린다는 얘기는 무슨 얘길까. 동강의 경우를 보자. 절경들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사행(巳行)의 물줄기를 가로지르는 ‘줄배’처럼 환경에 맞는 운송 수단이 필요하다. 아니면 두 발로 걷거나 래프팅을 이용해 동강을 따라 흘러가야만 동강의 비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힘들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지만 이 방법이 결국 그 여행객들을 더 머무르게 하면서 더 많은 돈을 쓰게 하고, 동시에 제대로 된 관광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다시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산 골짜기까지 반듯하게 닦은 도로를 차로 와서 휙 둘러 보고 가게 한다면, 잘 하면 점심 한 그릇 팝니다. 결국 쓰레기밖에 남기고 가는 게 없는 거죠.” 환경 운동의 목표를 환경 보존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경제적 측면과도 연관지은 부분이 이색적이다. “사계절 뚜렷하고 자연 경관이 아기자기해 한국만큼 아름다운 나라도 드뭅니다. 몇 년 전에 외국 대사들을 초청해서 동강 나들이를 간 적이 있는데 원더풀, 원더풀만 연신 외치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환경 운동 단체가 어떤 목적을 위해 노력해서, 그 목표치의 50%만 이루어도 크게 성공한 겁니다. 성공 못하더라도 4차선으로 날 길을 2차선으로 줄이는 등 그 개발 규모를, 자연의 훼손 범위를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시민 단체들의 환경 운동이 큰 실적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지론의 근거다.

출판사 운영도 곧 환경운동
산과 강으로 틈만 나면 다니면서 출판사 일은 언제 볼까. 그의 말대로라면 등산가서 보고 느끼는 것이 곧 사업이다. 지금까지 수 많은 책의 일부만 보더라도 ‘우이령 사람들’ , ‘숲을 걷다’, ‘하얀 능선에 서면’, ‘숲과 한국 문화’ 등 대부분이 산과 환경에 관한 것들이다. 결국 출판사를 꾸리는 것도 환경 운동의 일환인 셈이다. “자연과 환경 등에 관한 책을 출판함으로써 종합 대학 하나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기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결국, 동지를 규합하는 과정이라는 얘기.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2-01 15:03


정민승 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