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는 눈물겨운 희생의 산물숭미주의와 교육사대주의 가 가져다 준 폐해'기러기 아빠' 연구로 국내 첫 박사학위 취득

[한국초대석] 기러기가족 연구 최양숙 박사
기러기 아빠는 눈물겨운 희생의 산물
숭미주의와 교육사대주의 가 가져다 준 폐해
'기러기 아빠' 연구로 국내 첫 박사학위 취득


이혼, 가정 폭력, 편부모…. 우리 시대의 한국에서는 낯설지 않은, 포스트모던 가족적 현상들이다. ‘가족 해체 상황’이라는 키워드 아래 옹송그리고 있는 풍경이다. 저기에 더하여 또 하나의 핵심어가 당당 입성했으니, 이름하여 ‘기러기 아빠’. 행여 잊을세라 날마다 세계화를 외치는 데 힘입어 약발이 제대로 먹히기라도 한 걸까, 급기야 해외의 유수한 언론도 맞장구치기에 이르렀다.

‘kirogi(wild geese) family’. 2005년 1월 9일 워싱턴포스트 지가 한 면을 할애해 보도한 특집 기사의 제목이다. 기러기란 한국어가 그대로 사용됐다. 그 단어는 본문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갈라져 사는 남한의 가족(South Korean families separated by an ocean)’이라고 풀이됐다. 그네들이 보기에 지금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신기한, 그러나 대단히 한국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 부모가 갈라서 살다니? 시쳇말로 웬수가 된 것도 아닌데? 부부보다 자녀가 우선인 이상한 나라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비동거 가족’. 최양숙(48) 씨의 규정이다. 기러기 아빠 현상을 중심으로,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사는 희한한 현상에 대한 연구로 2005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목회 상담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은 주인공이다. 2002년 가을에서 2004년말까지, 2년 반 동안 그가 매달렸던 실증적 연구의 결과다. 교육을 위한 국외 비동거 가족 문제, 즉 기러기 아빠라는 문제로 박사 학위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 200쪽에 달하는 논문은 결국 우리의 슬픈, 과학적인 자화상이다.

조기유학이 만든 '비동거 가족'
논문에서 그는 “자녀를 외국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 놓고 국내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자”라며 기러기 아빠를 정의한 뒤,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학력 중시 현상과 더불어 국제화 세계화 정보화라는 흐름 속에서 결국 자녀 조기 유학을 위해 가족 비동거라는 선택을 한다”고 요약했다.논문에 위하면 조기 유학생의 숫자는 2003년에 2만명선을 돌파했고 비용이 2조원을 넘더니, 2004년 5월로 접어 들어서는 유학 비용만 10조원을 넘었다. 이 중 나홀로 유학은 1만명, 부모 동반을 합치면 3만여명이 된다는 것.

그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는 내 자녀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는 주관적 판단에서부터 군복무, 공ㆍ사교육 문제, 과열 경쟁 등이 제시됐다. 일류 학벌 덕택에 한국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자녀들이 자신들처럼 안 될 개연성을 못 견뎌 한다는 것이고, 특히 한국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부패해 있으며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는 것이다. 또 한반도 이남을 뒤덮고 있는 영어 콤플렉스는 영어가 곧 돈이라는 ‘영어 자본론’으로 직결되는데, 이는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과 맞물려 ‘덩달아 유학’을 부추긴다.

“논문 통과후 인터뷰가 쇄도하더니, 웬 할아버지의 전화까지 걸려왔어요. 그 분의 아들이 바로 기러기 아빤데, 최근 사업도 안 되는데 홀로 허덕이는 모습이 너무 안 됐다며 제게 하소연해 오시더라구요.” 그러나 반대로 논문 발표 기사의 리플에는 “나도 돈만 있으면 (기러기 아빠 돼도 조기 유학) 보내고 싶다’는 글들이 올라 와 있더라는 것. 도대체 어떤 논문일까.

20명의 고소득 전문 직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사무실이나 연구실 등지에서 행해졌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된 논문이다. 평균 2시간 반, 최대 4시간까지 걸렸으니 화이트 칼라 기러기 아빠들이 ‘말 고문’깨나 당했던 셈. 선행 연구가 거의 없었던 까닭에 더욱 발품을 팔아야 하기도 했다. 정교한 연구가 적었던 데에는 어느새 너무 당연시 돼 버린 탓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거기에는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를 성공 신화?교묘히 중첩시켜 유포한 이 곳 매스컴의 탓이 크다. 중도 포기, 나아가 가족 해체라는 심각한 부작용은 외면된다. 그렇다면 논문에서 드러난 바, 그들의 속내를 따라가 보자.

국내 환경에 대한 불만이 쌓여 온 그들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자녀만은 잘 키워야 한다는 절박한 요청에 싸이게 된다는 것. 이미 공교육은 붕괴됐고 사교육은 자녀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며 비용도 만만찮다. 설혹 자녀가 공부를 잘 한다 해도 지독한 입시 경쟁에 휘말리면서 몇 년을 보내게 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을까, 청년 실업은 날로 심해 가고 국내 정치ㆍ경제 상황도 복잡해만 가는데….

그 이면은 어쩌면 더 심각하다. 이미 외국 생활에 익숙해 지고 외국 교육의 장점 등에 길들여진 기러기 엄마와 자녀는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 가고 싶지 않아 한다. ‘엄마 잘 만나야 대학 간다’는 말에 떠밀리듯 부인과 자식을 보낸 아버지는 갑작스런 독거 생활에 사실 처자식의 귀국이 아쉽기만 하다. 고독감, 정서적 불만, 성적인 욕구 불만 등은 그들이 맞닥뜨리는 보편적 문제라고 최 씨는 지적한다.

“오죽하면 잠 자는 곳이 무덤 속 같다고까지 했겠어요? 아이들이 공부 잘 한다,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돈 열심히 부치는거죠.”그가 면접한 기러기 아빠 중 최고참이 11년차였다. 일중독으로 자신을 다잡아 간다는 그는 “기러기 가족이라면 결사 반대”라고 하더라는 것. 더욱이 한창 사춘기인 아들에게는 남성 모델에 대한 갈망이 최고조인 시기여서 그에 대한 아쉬움은 보기에도 딱하더라는 전언이다.

부부의 경우, 별거 초기에는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짜 고생하는 쪽은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굳어져 간다는 점도 주목된다. 특히 딱한 것은 사업 등 직장에 매어 있는 기러기 아빠의 경우. 1년에 2~4차례 만날 수 있다지만, 많아야 1주일 여가 최대, 평균 2~4일 머무르는 것이 고작이다.

근거없는 낙관주의, 자녀의존 이상현상
“그들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입니다. 삶의 일정 부분을 완전히 포기하더라도, 학벌과 성공만 성취하면 된다는 집착말이예요.” 결국 기러기 아빠란 엄청난 희생의 산물이라는 것. 그러나 자녀가 영어만 잘 한다면 무엇인들 못 바치랴. 참여자 전원이 자녀의 유학지로 선택한 곳은 영어권이었고, 13명은 미국이었다. 교육명품주의, 대학입시 지상주의 등과 더불어 ‘영어 = 미국’이라는 통념과 교묘히 맞물려 빚어진 한국적인 숭미주의(崇美主義)의 결과라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시기심이 한몫 단단히 함은 물론이다.“그들을 비난하자는 게 아녜요. 한국 사회부터가 획일화된 가치의 사회잖아요.”

조기 유학생의 숫자로 미뤄짐작할 때, 현재 기러기 아빠는 3~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그들이 감내하는 경제적 규모는 엄청나다. “1년이면 학비만 해도 4,000만원에서 1억까지 들어요. 봉급 생활자의 경우, 자신은 안 먹고 다 부친다는 거죠.”심지어 한 달에 7,000만원을 보낸다는 말까지 들었다는 것. “최근 들어 한국이 매력 없는 나라가 돼 가고 있어요. 시민권을 따내기 위한 원정 출산 증 방출 요인만 늘어 가잖아요.”

그러나 진짜 더한 문제는 수량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속내야 어떻든 상관없이 성공한 사람의 모델로 인식되는, 한국적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홍정욱의 ‘7막 7장’이 가져 온 효과가 컸어요.“ 조기 유학의 동경과 환상이 싹튼 동기였다는 것. 게다가 한국 특유의 ‘동조 심리’도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 “교육이라면 대치동이라는 식의 선입견말예요. 강남쪽에는 조기 유학붐 때문에 학급 수가 줄기도 했다잖아요.”그 같은 특유의 심리에다 미국 유학파가 조장한 교육사대주의도 끼어 들었다.

그는 한국의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너무 집착한 결과, 오히려 부모가 자녀에게 의존적이 되고 마는 현상이 만연한 까닭이라고 지적했다. 부부보다 자녀가 우선하는 현상이 당연시되는 상황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화란 보편 이념마저도 한국적으로 왜곡되고 만다. “인류 평화라는 공동체적 목표가 아니라, 파워 지향적으로 변할 수 밖에요.” 그 궁극에는 미국이라는 초(超) 국가가 버티고 있음은 물론이다.

“유학 가고 싶다는 제 아이들(중1, 고1)에게 반대했어요. 특히 아버지가 자식들과 떨어져 있는 상황이 좋다고는 안 봐요. 나는 그럴 용기는 없어요.”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란 말을 그는 덧붙였다. 2월 28일 학위수여식을 치르는 그는 우선 연세대 상담전문반 과정에서 상담 실습 과목을 강의한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3-02 19:06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