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코드가 아닌 시스템 창출에 있다"인적청산·개혁조급증·실천과욕서 벗어나야

[한국 초대석] 한국개발연구원 김경동 교수
"개혁은 코드가 아닌 시스템 창출에 있다"
인적청산·개혁조급증·실천과욕서 벗어나야


‘대통령도 고관도 재벌도 은행장도/국회의원, 말단 세리, 조합의 여직원도/경찰관도, 여교사도/쇠고랑 차는 모습 날마다 보는 심정’(‘모두가 네 탓이오’, 1999년 민음사) 닫혔던 시절, 세인의 마음을 후련하게 했던 민중 담시를 연상케 한다. ‘문학 저널’ 등 이념을 휘발시킨 문예지를 통해 여전히 시를 발표하는 그로서는 시라는 형식을 통한 세상에의 발언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우리 나라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나아가 요즘의 추세는 누구나 입만 뻥끗하면 권리 주장 또는 자기 몫 챙기기에 바쁘지, 자기 책임 다 하겠다고 앞장 서는 예는 거의 없다.’(‘선진 한국, 과연 실패작인가?’, 2000년 삼성경제연구소) 과연 서릿발은 조금도 눅어 들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실에서 만난 김경동(69) 교수와의 허두는 조금 뜻밖에도 시에서부터 떼어졌다. 1987년의 ‘너무 순한 아이’까지 합친다면 정규 시집을 두 권이나 펴냈으니 미상불 그는 시인일 터이다. 그런데 시집을 일별해 본 사람들은 틈틈이 배치돼 있는 펜화에 독특한 감흥을 받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자신이 그린 그림이다.

2001년 퇴계 탄생 500주년을 맞아 안동 출신의 학자들이 함께 가졌던 서화 전시회에서는 그의 그림 ‘시사단(詩士壇)’이 있었다. 도산서원 앞 수몰 지구에 있던 선비 방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그는 화가이기도 한 셈인데, 시서화(詩書畵)라는 문인의 전통을 자기류(自己流)로 버전 업 시켰다 해야 할 것이다. 진작부터 호산(浩山)이란 호까지 있지 않았나.

책임있는 사회 위해 종아리를 걷다
잊을만 하면 새 읽을 거리를 하나씩 들고 나와 세상과 만나 왔던 그가 최근에는 좀 별난 방식을 택했다. 종아리 맞기였다. 신문들은 크게 사진 싣고 1면 톱으로 다뤘던 그 화제의 현장에 선생이 있었다. 단상으로 나가 바지를 걷고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세 대 때렸다. 물론 혼자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잘못 했습니다’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씌어진 대형 휘장앞에서 원로급 인사 20여명과 함께 회초리를 들고 자신의 종아리를 많게는 5대씩 때리던 자리였다. 2월 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서의 해프닝이었다.

“아 예, 그 행사를 주최한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은 4년째 참여하고 있지요. 김태길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손봉호 동덕여대총장 등 이번에 함께 나섰던 원로들은 물론 일반 시민 60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해 펼쳐 오고 있는 시민 윤리 운동입니다.” 김 회장, 손 총장과 함께 제 3대 상임 공동 대표로 있는 선생이 낯선 퍼포먼스에까지 나서게 했던 저간의 답답한 심경을 풀어 놓았다. 정연한 논문처럼, 그의 말에는 허튼 구석이 없다.

“작년에는 내가 주관해서 청소년 질서 의식 심포지엄을 개최했어요. 관찰 조사까지 거쳐 기획한 행사였는데, 언론들이 그렇게 무심할 수가 없어요.” 순수한 만큼 힘 없는 모임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언론의 관심을 끌 퍼포먼스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선생에게서 장외 운동가의 모습마저 겹쳐지는 연유다. 그에 앞서 2002, 2003년에는 ‘변사또의 생일 잔치’라는 제목으로 관리의 비리를 풍자하는 마당극을 선보이더니, 2004년에는 경기도의 ‘실학잔치’에서 다시 선보인 바 있다. “올해는 ‘인성 교육 망가진다’는 주제로 토론을 가진 뒤,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같은 이벤트를 벌였던 거죠.”유별난 행사 소문에 정작 카牝窄풩湧?주최측보다 더 많을 지경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뭣보다 책임 의식이 망가졌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바로 선생이 주장하는 바, ‘책임 있는 사회(responsible society)’로 다가서기 위한 일보전진이다. “어떻게 된 게 상층부로 갈수록 더 심각해요. 일이 터지면 중간자만 책임지고 옷을 벗죠.” 목숨 걸고 간언하다 사약 받기를 마다 않았던 선비 정신은 어디 갔느냐는 말이다. 백주대낮에 종아리 걷기를 마다 않게 한 선생의 책임론은 국경을 뛰어 넘는다.

1998년 UN이 인권헌장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면서 발표했던 ‘인류애적 책임 천명(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esponsibilities)’ 사업에서 선생은 3인의 고위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위촉됐다. 독일 신부, 캐나다 학자 등과 함께 실질적 작업에 들어 갔다. 1990년대초 독일 사민당의 슈미트 수상 등을 중심으로 해 국제적 공감을 얻었던 일이 이제 한국에서 꽃 피어나려 하는 것이다. 이후의 갈등과 혼란이야 어쨌든 우리가 권력을 잡고 단 한 번 만에 혁파하자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선생은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관리들의 부패에 있어요. 국가 운영을 두고 가문과 개인의 영욕에 직결시키기 때문이죠. 지금 한국에 얼마간 낙관적인 요소가 있다면 미래를 향한 의미의 탐색에 있을텐데, 그나마도 특권 따먹기에 정치가 휘둘리는 형국이죠. 패거리ㆍ친족 정치 같은 집단 이기주의는 한국에만 있는 용어입니다.” 선생을 만난 때는 마침 3월 9일, 정ㆍ재계 대표 40명이 모여 ‘투명 사회 협약’에 서명한 날이었다. 선생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합법 절차를 따져 사회의 규칙과 법규를 확립해 내는 것은 결국 권력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반부패 역시 실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금이야말로 권력 담당 주체가 스스로를 개선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진지하게 자문할 때입니다. 그렇지 못 하다면 유일한 희망은 시민사회, 즉 자발적 부문 밖에 없습니다.”1970년, 미국서 ‘자발적 실천’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코넬대학교)을 준비하던 중 한국의 사례에 착목하게 되면서 유념해 온 대목이다. 시민 문화(civic culture)라는 기존의 한정적 개념이 그가 창안한 시민 사회(civic society)라는 개념으로 보완되던 순간이었다. 귀국한 뒤인 1978년, ‘자발적 사회’라는 주제로 두 편의 논문을 냈던 것은 말하자면 그 연장선상이었다. 당시로서는 주목 받지 못 했지만. 그랬던 것이 이제사 빛을 보게 되다니 소회가 자못 새삼스러울 법도 하다. 하기사 1978년 그가 주창했던 ‘인간주의 사회학’ 역시 발표 당시에는 찬밥 신세 아니었던가.

그랬던 세상은 이제 그의 학문적 성찰에 아쉬워 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의 자원 봉사자 모임 4곳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자원 봉사의 이념적ㆍ철학적 근거에 대해 강의를 펼쳤죠. 자발적 사회에 라는 개념에 대한 정합적 개념 장치에 대한 필요성을 이제사 인식하고들 있기 때문이죠.” 시민 운동(advocacy)은 이제 이념화ㆍ정치화 해 국민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만큼, 새로운 가능성을 자발적 부문에서 찾자는 것. 그것들을 묶고 조직화해 내, 새로운 대동연대를 구축해 낼 자원 봉사 단체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지론이다. 공허한 이론이 아니다. 지금 서초구 자원 봉사 센터의 운영위원회 회장으로 일하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때마침 오늘 발족하는 단체는 지켜 봐야 알겠지만, 이념 편향은 없으니 기대를 걸어 볼만 합니다.”

“이념적 편향이 정권 자체의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YS때부터였죠, 소수였지만. 그러다 DJ때 시민 운동이라는 것을 이념과 함께 교묘히 끌어다 쓰더니, 이제는 완전히 이념 세력이 그 중심으로 됐어요.” 요컨대 선생은 구조적 유연성(structural flexibility)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사회 발전의 원리는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 2003년 한 잡지에 “개혁은 인적 청산이 아닌, 시스템의 합리화”라고 썼던 것은 그런 맥락이다. 최근 모 신문의 칼럼을 통해 개진했던 바다. “새 정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인적 청산, 개혁 조급증, 실천 과욕 등 세 가지라고 했는데, 요즘 형국으로 보자면 더욱 맞아 가고 있잖아요?”선진화의 핵심은 코드가 아니라, 시스템 창출에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은 읍참마속 마다해선 안돼
“부정 부패 척결은 과거보다 나아졌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됐다는 거죠. 훗날, 고통이 청산되지 않았다는 회한을 사람들은 갖게 될 지 모르죠.”현 정권에 대한 말은 이어졌다. “경제 정책쪽으로 수정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보다는 원칙을 가져야 해요. 미봉에 그칠까 걱정됩니다.”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할 줄도 알고, 마음을 열 것을 그는 집권측에게 주문했다.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그런 마음이 있는 듯 하지만, 그렇다면 신념을 갖고 주변에 양해를 구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시스템을 위해서는 읍참마웰옇떪謀漫?안 될 것입니다.”

2002년 서울대 교수에서 물러 나온 뒤 명예 교수로서 관계를 계속 맺고 있는 그는 요즘 대안적 근대성(alternative modernity)이라는 화두에 잡혀 있다. 지난해 4월 세계역사학회에서 처음 발표한 뒤 세계의 주목을 받아, 오는 7월 시드니에서 열릴 같은 대회의 요청을 받고 발제 논문을 집필중인 필생의 테마다. 지금까지의 단선적ㆍ획일적 근대화론이 간과해 온 바, 지역적 차별성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세계화(globalization)이란 우리나라에서 오해하듯 지역주의를 탈피하자는 정도의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실생활에서 중요한 변화가 전세계적인 맥락에서 전개된다는 것이죠. 지구적 차원의 상호 의존성이 본래의 의미예요.” 선생이 그 말을 ‘지구화’ 혹은 ‘전지구화’로 옮기고 쓰는 이유다.

핵심은 다양성이다. “ 이슬람 근본주의, 민족주의, 시민운동 등 정체성의 차원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거죠.”그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우리 내부로 눈을 돌려 보자. “한국이 맑시즘으로 설명되던가요? 이제는 우리 식으로 우리 사회를 설명하자는 거죠.” 선생이 1985년부터 한(恨ㆍhan)이라는 개념을, 90년대부터는 기(氣)라는 개념을 도입해 한국 특유의 노사 관계를 설명해 온 것이 그 같은 맥락이다. “기 싸움, 명분, 눈치 같은 것 말이죠.”바로 2004년 싱가포르의 ‘아시아 사회 과학 저널(Asian Journal of Science)’에서 발표, 주목을 받았던 이론이다. 곧 책으로 나온다.

“그런 게 학문의 대안적 근대성이죠.” 부인 이온죽 교수(61ㆍ서울대 사대 국민윤리교육과)는 여러 권의 책을 함께 펴낸 학문적 동지이기도 하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3-17 15:50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