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느와르 "폼나게 부서졌습니다"영화 에서 온갖 수난 겪으며 열연

[스타 줌인] 배우 이병헌
신명나는 느와르 "폼나게 부서졌습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 에서 온갖 수난 겪으며 열연


딱 떨어지는 선의 블랙 수트. 차갑지만, 우수어린 눈빛. 4월 1일 개봉하는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감독 김지운, 제작사 봄)은 영화배우 이병헌(35)의 ‘때깔 좋은’ 남성미만으로도 관객의 시선을 단박에 붙든다. 게다가 치고, 때리고, 부수는 소위 3류 ‘쌈마이’ 영화가 아니다. 영화 ‘장화홍련’ ‘반칙왕’ 등 독특한 연출 경력을 지닌, 김지운 감독이 이병헌을 비롯해 김영철, 황정민, 김뢰하 같은 연기파 배우들을 내세워 만든 ‘폼 나는 느와르’란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영화보다는 나에게 의미 있는 작업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소신파 이병헌은 그래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시나리오조차 보지 않고서도 “이건 그냥 느와르는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필을 받았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이야기가 시작되니, 그가 웬일로 ‘엄살’을 떨었다. “달콤이요? 그런 순간은 거의 없었죠. (촬영 종료) D–O 날 만을 꼽으며 지냈어요.” 그러더니 “고생한 만큼 영화가 잘 나온다고 치면, 이 영화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드물 것”이라며 슬며시 흥행에 대한 기대를 내비친다.

‘달콤한 인생’은 천국의 문턱에서 지옥을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보스(김영철)의 완벽한 오른팔이었다가 한 순간에 배신 당한 남자 ‘선우’(이병헌). 그가 ‘조직’을 상대로 ‘의리 없는 전쟁’을 벌인다.

그의 연기인생은 여전히 달콤
피 비린내 나는 복수신 촬영에서 이병헌은 그야말로 ‘산 지옥’을 경험했다. 구덩이에 산 채로 파묻히고, 로프에 매달리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다. 그는 무엇보다 힘들었던 기억으로 겨울에 비에 젖은 채 한 촬영 탓에 뼈 속 까지 언 듯한 추위를 첫 손에 꼽았다. 그는 “2주 내내 비를 맞아야 했다. 매일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손발이 마치 오리발처럼 하얗게 부어 올랐다”며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쾌감도 컸다. 그는 “끔찍한 고통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촬영이 끝나면 차곡차곡 영화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고 했다. 총도 원 없이 쐈다. 처음 총성이 울릴 땐 ‘탕 탕’ 우렁찬 소리에 놀라 자동으로 눈을 감았지만, 나중에는 두 눈 똑바로 뜨고, 기관총도 쐈을 배짱이 생겼다.

그러나 총알이 난무하는 이번 영화에서 이병헌이 가장 맘에 들어 하는 연기는 액션이 아니라 무언의 눈빛 연기다. 특히 자신을 버린 보스와의 대면 장면에서 그의 눈빛 연기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는 고백하길 “나를 편애하던 선생님에게 어느 날 사소한 실수로 심한 꾸중을 받은 아이의 심정이랄까” ‘상실’에 가까운 허탈한 감정을 애잔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라 자신한다.

보스에게 버림 받은 조직 넘버2의 비애처럼, 이병헌은 실제 감독에게 따스한 배려를 받지 못한 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 감독님은 그 죽을 고생을 시켜놓고도 ‘고생했다’ 한 마디 위로가 없더군요. 하루는 흙구덩이에 파묻혔다가 진흙투성이가 돼 겨우 올라왔더니, 기껏 하시는 말씀이 ‘피부가 너무 좋아졌어’ 그 말 뿐이었어요.”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냉정하고, 차가운” 감독이 작품에 대한 그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음을. 그래서 그의 연기 인생은 여전히 “달콤하다”.

벌써부터 “차기 작품은 뭐냐”는 질문도 받는다. 국내에서 준비 중인 영화 시나리오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 들어온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작품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못을 박는다. 그는 또 “지난 1년간 쉬지 않고 3편의 영화를 했어요. 육체적인 소진도 그렇지만, 내 뒤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 같아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름 하나로 흥행을 보증하는 배우답게, 출연한 영화에 모든 것을 쏟아 넣은 “신명이 넘치는” 그 만으로 ‘달콤한 인생’은 관객을 설레게 한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3-28 18:34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