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은 죽음 부르는 심각한 질병"20~30대 비만 위험성 연구발표로 사회에 경종

[한국 초대석] 일산백병원 오상우 교수
"비만은 죽음 부르는 심각한 질병"
20~30대 비만 위험성 연구발표로 사회에 경종


‘왕눈이 만드는 필수 코스’, ‘맞춤형 광대 축소술’, ‘흉터 없는 몽고(몽고 반점) 제거술’, ‘특수실 보형물로 힙 업’…. 육체 자본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내세웠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봤다면 “과연!”이라며 무릎을 탁 칠 현실이 지금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수 백, 수 천만원을 들여 성형 수술을 하고, 그러다 뭉그러져 ‘선풍기 아줌마’가 돼도 좋다. 씩씩한 한국 사람들은 까짓 것 그 정도 부작용쯤이야 감내할 수 있다. 기대 효과의 허상에 사로 잡힌 이 땅의 청장년은 멀쩡한 얼굴에 칼을 들이대고 보형물을 주입한다. 그도 모자라 체지방을 뺀답시며 수술 기구로 죄 없는 몸의 이 곳 저 곳을 쑤셔댈 것이다. 그러나 무엇하랴.

컴퓨터 앞에 앉아, 또는 비디오를 보거나, 친구들과 모여 잡담을 하며 그들은 감자 튀김, 햄버거, 치킨, 피자를 야금거릴 텐데. 기껏 가꿔 놓은 육체를 망가뜨리는 주범, 바로 정크 푸드다. 그 쓰레기 음식들은 체내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상승시켜 결국 내장 지방을 축적한다. 생활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말짱 도루묵이다.

호르몬 이상 분비 단계의 직전에 찾아 오는 손님이 비만이다. 3월 9일 로이터 통신은 청년층의 비만이 10년전보다 4배나 증가했다고 보도하면서 그 이유를 패스트푸드 선호와 컴퓨터 게임의 탐닉으로 돌렸다. 육체적 현상인 비만은 마음의 이상 상태인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보고된다. 비만은 문제의 시작이다.

체질량 지수 25 이상은 위험 신호
“심각한 20~30대 비만의 위험성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언론에 먼저 공개한 겁니다.” 중장년의 비만만이 문제가 아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젊은 층의 비만이다. 젊은 뚱보들이 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40) 교수. 이 병원 비만클리닉 소장이기도 한 그는 비만이 암 등 불치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비만과 사망은 결국 동의어라는 점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중요한 잣대로 등장하는 측정 도구가 ‘체질량 지수’.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눠 얻은 수치인 ‘체질량 지수’는 한국인의 경우, 정상과 위험을 나누는 분기점이 25다. 25를 넘으면 고혈압 당뇨 암 등 사망 인자의 유발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진다는 경고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매년 증가하는 비만인의 수는 340만명인데, 그들에게는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의 발병 가능성도 함께 높아 진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 이하로 낮춰야 합니다.” 정상치 체중을 넘는 사람들이 매년 1~2%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본격 비만으로 간주되는 30이상의 경우는 매년 0.2%씩 증가하는 추세다. 수치로 환산하면 1년에 2만~4만 명 가량이다. 사망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체지방 수치는 30. “그 경우, 남자는 1.2~3.0배, 여자는 1.8~2.0배로 사망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30대 이하의 사람들의 체질량 지수가 40~50대와 맞먹는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죠. 결국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들 뚱뚱해졌다는 겁니다.” 오 교수가 1992년부터 2001년까지 평균 2년 씩 간격을 두고 쭉 추적해 온 결과다. 그 기간 중 건강 보험 공단에서 검사를 받았던 사람 71만3,000여명에 대해 근 10년 기간 동안 따라 온 것이다. 오 교수가 충격적이라며 특히 주의를 환기시키는 대목은 술과 담배 문제다.

스트레스에 의한 술·담배가 문제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한국 특유의 사회 구조가 문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우울증이 덧씌워 진다. 복부 비만의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지는 것이다.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유발시켜, 오히려 살이 안 빠지는 현상으로 이어지는 거죠.” 숱한 의문을 남긴 채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이은주의 마음 한 켠에도 비만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는 그의 지적이다.

“원래 인류 최대의 스트레스는 굶어 죽는 것이었어요. 이 같은 불안을 이겨내려는 호르몬 때문에 조금만 먹어도 살로 가는 거죠. 지방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이예요.”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상 기아 문제가 해결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늘 배가 고팠던 인류가 굶주림의 문제에서 벗어난 것은 최근의 일인만큼, 인류의 몸이 그 변화를 채 못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비만이 21세기의 역병이라는 명제가 그래서 성립한다.

스트레스는 곧 술로 이어진다. “술이 세건 약하건 관계 없이, 음주량이 많을수록 복부 비만도가 상승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현재 세계 제 1위라는 흡연 율 또한 복부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담배를 피우면 살이 빠진다는 속설과는 정반대로 흡연량과 복부 비만은 정비례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한국적 관행의 예기치 못 한 결과 중 하나가 복부 비만이란 지적이다.

비만의 심각성 확산 시켜야
이제 그는 연구실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기로 작정했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상업주의와 결부돼 이상한 방향으로만 치닫는 현실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양심의 소리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른다. 현재 대한비만학회의 법제이사로 있는 그는 비만을 ‘심각한 질병’으로 인정 받게 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보고있다. 다이어트니, 미용이니 하는 차원이 아니다. 비만이 바로 질병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 기관, 의료 공단 등에서 시민 단체가 동의하는 비만 관련 국내 데이터를 먼저 구축할 생각이다.

“현재 사회 분위기로 볼 때 비만은 늘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대한 관리를)지금 안 하면 큰 일 납니다”고 재삼 강조했다. 비만은 현재 한국형 당뇨병의 증가 추세와 맞물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라고 그는 말한다. 비만 예방은 곧 당뇨 예방이니, 두 관련 단체가 합하면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비만학은 영양학 체육학 소아학 등으로, 당뇨학은 내분비 계통으로 산하 학문이 나뉘는데, 모두 서로 유사한 학문이라 두 학회에 모두 몸 담고 있는 의사들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거기에 고혈압 협심증 고지혈증 등을 추가해 ‘생활 습관병’통칭한다.

흔히 대사증후군으로 통칭되는 이들 질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비만 역시 치료 대상으로 공인돼 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비만은 곧 질병이라는 인식을 범국민적으로 확산시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합니다.” 패스트푸드에 매달리는 식습관도 고쳐야 함은 물론이다. 음주ㆍ흡연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과 함께 직장에서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구조적 변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4월 10일 대한비만학회가 창설됐다. 학회는 행동 지침으로 우선 다이어트의 부작용에 대해 환기시켜 나갈 계획이다. “다이어트 하다 죽는 등의 부작용, 운동 없이 약만으로 살을 뺀다는 등의 허황된 광고 등 다이어트 만능의 폐해를 똑바로 알리자는 거죠.” 결국 국민에게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시키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등 유관 단체와 펼쳐 나갈 대국민 홍보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그래서다. “체질량 지수가 25를 넘을 때가 비만이라는 사실을 널리 인식시키자는 거죠. 동시에 한국적 비만을 치료할 효과적 방법은 무엇보다 금연, 걷기 운동, 식생활 개선 등에 있습니다.”

보다 실질적으로는 제도적으로 비만을 질병 코드에 넣고 병원에서 치료 받게 하자는 것이다. 종종 비만 환자가 찾아 오면 “비만은 질병이 아니다”며 돌려 보내는 병원은 이제 더 이상 발 붙일 곳이 없어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소개되는 위절제술(베레아트릭 수술)에 대해 오 교수는 “원래 그 시술은 체질량 지수가 40을 넘는 고도 비만에 적용된다”며 “그 수술이 필요한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을 뒤덮고 있는 성형 수술붐에 대해 그는 “건강 체중보다 훨씬 낮은 체중으로 유도한다”며 “그 경우 질병의 위협만 더욱 높아질 뿐”이라고 말했다.

삐뚤게 가는 만큼 할 일도 많다. 그는 “이상한 비만 치료법들이 횡행하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팠다”며 상업주의에 발목 잡인 최근의 비만 관리 세태를 지적했다. 그는 “의사들이 욕을 먹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라며 대한비만학회에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그 동안 데이터를 많이 축적해 뒀어요. 痢??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겠어요.”

극히 간단한 비만 관리 요령을 청해 듣는다. “세 끼를 다 먹어야 살이 더 빠져요. 10분 정도 나눠서 하루에 30분만 걸어도 살은 다 빠지죠.” 참 그렇구나, 싶다. 그는 현재 비만 이외에 건강 증진에 꼭 필요한 사항들을 모은 단행본 저작에 막 들어갔다. 책 소개를 간략히 하는데, “과도한 (건강)정보를 가려 내는 능력을 키우는 책이죠.” 현대인이 얼마나 정보의 홍수에 허덕댄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학회의 법제이사로서 그가 펼칠 활약이 기대된다. 비만이 법적ㆍ제도적 차원에서도 질병으로 인식될 날이 멀지 않았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4-13 18:33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