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앞에서 새 삶 찾았어요"

양혜란, 오른손 장애 딛고 피아니스트로 도전
"피아노 앞에서 새 삶 찾았어요"

“잃어버린 손을 되찾은 것 같아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4월 13일 경기 군포시의 한 아파트. 화창한 봄볕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피아노를 치는 양혜란(35)씨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 장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엘리제를 위하여’의 아름다운 선율에 심취한 듯 리듬에 맞춰 가볍게 몸을 들썩이던 양씨는 “아직 어설프죠”하며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오른손은 3도 화상으로 심하게 뭉그러져 있지만, 피아노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듯 빠른 리듬의 곡을 연주하는데 불편이 없어 보였다. “오른손이 짧아 긴 옥타브를 소화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서너 달 동안 매일 연습했더니 연주가 제법 매끄러워졌다”며 밝게 웃었다.

'이희아 콘서트'에서 감동의 연주
4월 17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개최된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의 희망음악회 콘서트’에 출연하기 위해 연습 중이었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두 곡의 연주를 맡았다. 고작 해야 5~6분 나오는 초대손님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게 이번 연주회는 참으로 각별했다.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다시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양씨는 “비록 잠깐 출연에 그치지만,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 기회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음대를 졸업하고 피아노 개인 교습을 하던 양씨가 오른손에 화상을 입은 것은 2002년 12월. 간질 장애로 인한 발작 때문이었다. 집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뜨거운 물에 그만 오른손이 빠졌다. 오른손 전체에 화상을 입고 손가락 세 개를 잃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도 온전하지 않다. 검지 손가락은 한 마디나 짧아졌고, 엄지 손가락도 손톱이 거멓게 변색되는 등 화상의 상흔이 뚜렷하다.

“그때는 이제 피아노 인생은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 뿐이었다”며 “팔 다리 전체가 없는 장애인들도 많아 그에 비하면 경미한 사고일 수 있지만, 피아노를 치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피아노를 쳐다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 박병규(56)씨가 말했다. “노래 부르고 싶은데 반주 좀 해주지 않을래?” 이 말이 그녀의 닫힌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 평생 아픈 딸 뒷바라지에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서 피아노를 연주해보자’ 그녀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인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어설프나마 손가락이 가는대로 연주했다. 어머니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대신 격한 눈물을 쏟아냈다. 사고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훌쩍 흐른 뒤였다.

그렇게 어머니로부터 용기를 얻고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의수를 끼고서라도 연주할 겁니다.” 의수를 제작하는 곳을 수소문했다. “주위에서 피아노를 치려고 의수를 끼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어요. 하지만 제 인생이 사고 전과 비슷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의수는 역시 가짜 손일 뿐이더라고요.”

그런 그녀를 피아니스트로서 세상에 다시 나오게 한 건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의 명성이었다. 양씨는 “친구가 저처럼 손가락이 불온전한 장애인이 피아노를 기가 막히게 잘 친다는 얘기를 전해줬다”며 “그 소문이 피아니스트로서 제 2의 삶을 꿈꾸게 한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얘기를 듣고 그녀는 1월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콘서트 때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찾아가 희아를 만났다.

“화상 입은 손을 내놓고 예전에 저도 피아노를 쳤다고 했더니 희아 어머님이 깜짝 놀라셨어요. 한 번 피아노를 쳐보라고 해서 흔쾌히 응했죠. 저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랬더니 얼마 뒤에 연락이 왔어요. 다음 콘서트 때 희아와 함께 하자고 제의하셨죠.”

"단독 콘서트 열고 싶어요"
의욕이 넘쳤지만, 짧은 손가락으로 콘서트에 설 만큼 피아노 실력을 되살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손가락 마디에는 굳은 살과 커다란 물집이 훈장처럼 맺혔다. 나중에는 물집이 터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 대신 마디마디 끊어졌던 리듬이 언제부터인가 부드럽게 이어져갔다.

“사실 네 손가락밖에 없는 희아보다 피아노를 치기에는 더 부적합한 손이래요. 그래도 좋아하는 베토벤의 명곡을 다시 칠 수 있게 돼 기뻐요.” 생후 100일 무렵부터 경기 증세를 보였던 양씨는 여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경련 이후 나타나는 손 떨림 증세를 고치려면 손가락 힘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치료 목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아실현의 통로가 됐다.

사고 전에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녀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장애와 비장애 아동을 구분하지 않고 정성껏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고, 차츰 더 많은 곡을 익혀 나중에는 단독 콘서트도 열고 싶다”고 했다.

“장애 앞에서 움츠러들고 감추려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천성 장애인인 희아도 그렇고, 또 저 같은 중도 장애인도 꿈이 있잖아요. 앞으로 어깨가 축 쳐져 있고, 세상이 비관적으로 보이는 장애인들을 위해 조그맣게나마 음악회를 열고 싶어요. 작은 힘이 되고 싶거든요. 물론 이익금이 생긴다면 장애인을 위한 기금으로 남겨야죠.”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4-21 15:52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