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지역의 입' 만들것"국내 최초의 소출력 라디오 방송…30여년 방송철학의 완성

[한국 초대석] FM 분당 정용석 사장
"작지만 강한 '지역의 입' 만들것"
국내 최초의 소출력 라디오 방송…30여년 방송철학의 완성


“아직은 유치한 방송일지 몰라도, 얼마 안 가 정보의 공유에 의한 시너지 효과가 가시화할 거라고 믿습니다.”

공유와 시너지라는 말에서 철학의 힘이 느껴진다. 베테랑 방송인이라는 경력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국내 최초의 동네 방송국 ‘FM 분당’의 정용석(62) 사장의 말은 일견 조심스럽지만 그 안에는 자신감이 넘쳐있다. 공식 명칭은 ‘㈔문화복지미디어연대 FM분당’. 지난 30여년 동안 공중파 방송에서 만들고 다듬어 온 방송 철학을 바탕으로 한 방송국 경영주로서의 출사표다.

4월 4일 시험 방송에 들어 간 이래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시험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90.7 ㎒에 주파수를 맞추면 분당의 지하철 서현역 일대 반경 5㎞ 지역에서 맑고 깨끗한 음질로 방송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활지를 전제로 했을 때이고, 고층 빌딩 등 현지의 지형 조건을 감안하면 FM 방송 특유의 탁월한 감도로 들을 수 있는 권역은 반경 2㎞ 이내다. 눈만 뜨면 세계화니 유비쿼터스니 하는 세상에 고작 손바닥 안에 들어 올 지역만을 대상으로 전파를 발사하는 셈이다.

정 사장은 이 방송이 유치하다고 말하지만, 현재 4명의 사원에다 각각 20여명의 MC와 주부 리포터 등 만만찮은 인적 자원 등을 보면 지나친 겸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닷컴(www.fmnara.com)으로 갖추고 지역 소식을 실시간대로 전달하니, 모래 알갱이처럼 사는 도시 사람들은 ‘나에게도 이웃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건성으로 살던 동네를 한 번 유심히 돌아 볼 지도 모를 일이다. ‘이웃’이나 ‘마을’ 같은 말이 사전에서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에게는 차라리 낯설다고 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유치함
“x아파트 x동 x호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생일 잔치를 가지십니다”, “x에 사는 올드 미스가 시집간대요. 저녁에 함이 들어 온다니까, 시끄럽지만 양해합시다” 등으로 이웃 소식을 알린다. 긴요한 생활 정보가 빠질 수 없다. “주말에 식당 가서 외식하시고 싶은 분들, 이런 식당 어때요?”극장 프로, 세일 정보 등도 그런 식으로 방송을 탄다. 정 사장이 말하는 ‘유치함’이란 이런 것들이다. 21명의 진행자가 2분 여의 자기 소개와 함께 팝송과 클래식을 내보내는 방송도 포함된다. 현재 시험 방송 중이다. 시골에서 흔히들 하듯 “아, 아, 주민 여러분…” 운운하는 마을 방송이 FM 전파라는 매력 덩어리를 타고 2005년식으로 업 그레이드된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90.7㎒을 쓰는 방송이 또 하나, 그것도 고출력으로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송출하는 경인FM 방송이 그것이다. “우리 권역 밖이라 해서 별 신경 쓰지 않았는데, 막상 해 보니 아주 약하게 잡히더군요. 사실 우리 방송국의 유효 반경 2㎞내에서는 분당FM만 들리니 그리 문제될 건 없습니다만.” 정보통신부에서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이 방송의 출력은 1W, 경인FM은 무려 1,000W를 헤아린다. 예기치 못 했던 일이다.

이 방송은 국내 최초의 소출력 라디오 방송이다. 법률적으로는 ‘FM 주파수 대역에서 1W 이하의 작은 출력을 이용해 제한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방송’을 말한다. 이 같은 소출력 라디오 방송은 국민 편익 증진을 위한 실용적 목적에만 국한하도록 돼 있어 상업 광고 방송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쇼핑, 단전, 단수, 경조사 등 그야말로 주민을 위한 실용적 생활 정보들만을 다루어야 한다. 기존 방송사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광고는 못 하도록 돼 있지만, 광고가 아닌 협찬은 가능하다. 현재의 시험 방송이 실질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실제 방송을 들어 본 뒤 협찬이 들어 올 거예요.” 그래서 현재의 시험 방송은 실수요자인 분당 주민들의 요구에 항상 귀를 기울이겠다는, 이를 테면 호객용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죠. 마을 정보는 모두 저희에게 맡기세요.”

“분당 사람들의 생활 수준과 의식은 상당히 높아요. 건강 문제, 특히 웰빙 아이템에 저희가 주목할 수밖에 없어요. 좋은 음식, 좋은 스포츠, 매력적 헬스 시설 같은 것….” 분당 주민을 공동체 의식으로 묶어 주는 특유의 아이템에 유달리 공을 들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방송은 더 나아가 분당의 상징인 탄천 지키기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이 하천을 더 이상의 오염으로부터 막자는 운동에 분당FM이 앞장설 것이라는 말이다.

5월 본격 가동, 1년 후 24시간 방송 포부
본격 가동에 들어가는 5월부터는 매일 오전 7시에서 밤 10시까지 전파를 내보낸다. 그리고 1년쯤 지나면 24시간 방송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영주, 공주, 광주(전남) 등 지난해 11월 주파수를 배정 받은 8곳의 지역 FM 중 최초로 가동한 만큼 우리한테 e-메일로 실질적 정보를 많이 요청해 오죠. 이를테면 안테나 공사 비용, 방송 장비 구입 방법, 스튜디오 제작 같은 거죠.” 12m 높이의 송출 안테나 앞에서 정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가 더 문제다. 어떻게 하면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즉 지속 가능한 발전 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는 기술적 문제와 경영 등 두 가지를 들었다. “유효 반경 2㎞를 커버하는 1W 출력은 사실상 분당 지역의 절반도 커버 못 해요. 출력을 늘리는 게 급선무죠. 일본의 경우 1W에서 시작했다 결국 20W까지 늘렸어요.” 경영이나 법제의 문제에 이르자 그는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진정한 민영화, 즉 상업화는 앞으로 그가 특히 부지런히 뛰어야 할 대목이다. “다시 말해 광고가 가능해져야 한다는 건데, 기존 방송의 반발도 그러려니와 모든 일을 관장하는 데가 민간이 아닌 방송위원회라는 사실 또한 걸림돌입니다.” 우선 관계 당국(정통부)이 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출력이니 그 내용이 지역에만 국한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해요. 일본의 경우처럼, 재정 확보를 위해 광고를 허용해야죠.”자신의 잔뼈가 굵은 대출력 방송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한다. “막 태어난 동생이니 죽이려 들지 말고 잘 키워주십사 하는 거예요. 초미니 FM 방송이라 생각하시구요.”

일본의 소출력 라디오 사업은 그에게 하나의 현실적 모델이다. “지난해 10월, 니가타 나카호카에서 진도 8도의 지진이 덮쳤을 때, 24시간 가동하는 소출력 방송이 보였던 활약은 참으로 눈부셨죠.”그는 아직도 당시 아나운서들이 했던 멘트를 기억한다. “어디 어디 사는 다나카씨(매몰된 사람) 힘내세요. 구원 팀이 가요, 기다리시래요….” 당시 사흘 동안 물이 끊기는 등 불안에 떨던 주민들은 소출력 방송 하나에 모든 희망을 걸고 버텼다고 한다. 또 고베 지진 때는 영어로도 방송, 외국인들을 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됐다. “유럽쪽은 말할 것도 없죠.”

최초의 소출력 방송은 1940년대 남미 볼리비아 광산 지대에서 선을 보였다. 광산 노동자 가족 등 외부와 절연된 공동체에서 선보인 이 같은 방송 방식은 1960년대까지 23곳으로 증가했다. 영국에서는 2002년 영국 라디오위원회(Radio Authority)가 15개의 방송 주체를 선정해 지역 공동체의 기반을 다졌다. 소외 계층, 노인, 장애인, 여성, 이주민 등 그 동안 정규 매체들이 소홀히 했던 사람들에게 절실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의제를 끄집어 낸 공론의 장이었다. 또 미국의 경우 2003년 7월 수천개의 신규 라디오 방송국 허가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켜 커뮤니티 라디오 방송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 그것은 제 2의 강남이라는 분당이다.

한국 방송의 산 역사
“좋은 작품, 자신 있어요. 방송 일만 35년을 했는데요.”정 사장의 이 같은 자신은 그의 이력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는 한국 방송의 산 역사라 해도 좋을 정도다. 1968년 동화통신에 입사, 경영난에 따른 대량(30명) 해직 조치로 72년 KBS로 옮긴 그는 79년 도쿄특파원 이후 국제 통으로 자리 잡았다. 도쿄특파원 11년, 걸프전 종군 기자, 런던지국장 4년, 국제부장 등을 역임한 그가 메이저 방송국에서의 통상적 코스를 마다하게 된 것은 라디오 프로 하나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라디오 KBS2에서 ‘열린 아침, 정용석입니다’를 4년 동안 한 게 컸죠.”

이미 일본 특파원 시절, 도쿄에만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이 10여 군데나 있는 사실을 눈 여겨 봤다. 2003년 아예 분당으로 집을 옮긴 그는 분당FM만으로는 많이 适푀영?했다. “분당 지역을 가장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학자 등과 논의를 해 나가겠어요. 분당에서 죽을 때까지 살 거니까요.”

5월은 분당 FM의 새 시대가 펼쳐진다. 방송 시간대가 아침 7시~저녁 6시로 확대돼 내년의 24시간 방송 체제를 준비한다.또 현재 군데군데 비어 있는 인터넷 도메인도 5월이면 완전 구축된다. 아직 완전히 차있지 않은 음악 콘텐츠는 유료 사이트 등을 통해 채워 나갈 작정이다. “일본처럼 출력을 20W대로 올릴 때까지 열심히 뛰겠습니다.”분당 FM을 지탱해 줄 것이 인적 자원이 됐든 물적 자원이 됐든, 반 칠십년을 방송인으로 버틴 정 사장의 경험에 비길 수 있을까.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4-21 15:56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