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해체 방치는 사회의 직무유기"심각한 한국의 이혼율, 협의이혼전 상담제도로 현명한 결정 유도

[한국 초대석] 경희대 간호과학대 김윤희 교수
"가족해체 방치는 사회의 직무유기"
심각한 한국의 이혼율, 협의이혼전 상담제도로 현명한 결정 유도


“나는 학생들에게 성숙된 성격을 형성하도록 노력하라고 강조하죠. 또 좋은 부모가 못 될 성 싶으면 결혼 하지 말라고 해요.”사람 좋게 보이지만, 그의 언어를 문자로 옮겨 놓으니 늦가을 서릿발 같다.

상당히 반(反)시대적이게도, 경희대 간호과학대 김윤희(61) 교수는 사회통합론자다. 따라서 지금 한국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는 온갖 사회 분열적 양상에 대해 우려하고, 나아가 경고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단 3분만에 모든 과정이 끝나는 협의 이혼은 알고 보면 홧김 이혼이 많아 8할 이상이 후회한다는 것이 조사 결과다.” 세계 최고의 기록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의 이혼율이 그려 내고 있는 풍속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사회를 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 가 보자. “퇴원한 정신병 환자의 지속적 관리를 위해 지역사회 연계 체제를 제도화 시켜야 하며, 오해와 편견에 쫓겨 숨어 들려고만 하는 정신질환자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 2월 말 부천 모 정신병원에서 50대 알코올 중독자(망상장애자)의 방화로 직원 등 4명이 숨진 사건을 두고 한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의 요지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치유 가능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켜 온 그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경종 울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새로이 시행중인 ‘협의 이혼 전 상담 제도’는 그가 특히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위권인 이혼율에 제동을 걸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이 제도는 3월2일 첫 실시됐다. 그는 이 시스템의 주재자다. 매주 금요일마다 서초동 서울가정법원 이혼 법정에 전문 상담위원, 즉 가사 조정 위원으로 출석한다. 현재 전문 상담위원은 모두 11명. 정신과 의사 및 간호사, 목회자, 사회복지사, 상담심리사 등 다섯 부류로 나뉜다. 전임 대한정신간호학회 회장이었던 그는 현재 가정법원에서 정신과 간호자의 입장을 대표하고 있다.

상담자 역량이 결과 결정
‘돌아 오지 못 할 강’을 코 앞에 둔 부부 몇 쌍과 보통 3시간(오후 2~5시) 동안 대화를 나눈다. 커플 당 1회 상담 소요 시간은 보통 40~50분. 한 쌍 당 대개 6차례 이뤄진다. 그 방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파경 직전의 커플들이 벌이는 풍경을 찾아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 가 보자.

황혼 이혼을 앞 둔 어느 노 부부.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데다 경제적 능력까지 갖춘 부인은 60년대 후반의 무능력자 남편과 함께 못 산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경우, 남편이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게 보통이지요.”두 사람 간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즉 감정적인 유대가 약하면 더욱 그렇게 된다. 이들 부부의 경우 특히 남자가 젊었을 때 바람 피운 것이 부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결국 남자가 이혼당하기 직전에 와 있는 셈이죠.” 남자가 파탄의 책임이 있는, 즉 유책 배우자이므로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이들 커플은 정식 재판만을 남겨 두고 있다. 자식을 세 명 둔 이들이 모든 인연을 청산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 너무 기계적이어서 안타깝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바로 그 같은 지점에서 일말의 회복 가능성에 주목하고 적극 개입하는 것이 전문 상담위원의 몫이다.

재판 이혼이 아닌 협의 이혼에서는 상담위원의 역량이 결정적이다. 상담자 앞에서 자신의 솔직한 면을 다 보여 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일 수도, 개인적 성격의 문제일 수도 있는 부부간의 문제를 제대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결코 쉽지 않고, 또 상담자 개인에 따라 천양지차의 결과가 초래된다.

수년전의 경험이다. 장사를 하는 중년 부부였다. 무척 가난했던 남편은 중학교도 채 못 마치고 공장?전전했다. 연애 결혼을 한 부부는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남편의 이상한 성격으로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남편은 부모에 대한 원망까지 겹쳐 자신과 상관 없는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날로 키워갔다. 그러다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에 도움을 청해 김 교수와 손이 닿았다.

남편을 모두 8차례 상담한 그는 스스로 문제를 깨닫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적대감에 대해 말하도록 하고, 그가 앓아 온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의 내력을 밝혀 주었죠.”그것은 결국 증오심과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게 하는 길로 이끌어 내는 과정이었다. 다행이 남편은 그가 강조하는 ‘회복 가능성’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미성년자(18세 미만) 자녀가 있거나 결혼한 지 1년이 안 된 부부는 서울가정법원에서 김 교수 등에게 반드시 상담을 받으라는 권유를 받는다. 이전 에는 돈 1,000원(인지대)에 2~3분(이른바 ‘협의’에 필요한 시간)만 있으면 완전한 남남이 됐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이에 완충 지대를 두자는 것이다. 이혼 전 숙려기간 제도를 입법하기 위한 사전 조치인 셈이다. 협의 이혼 당사자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도움을 제공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 진실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제도다. 외국에서는 3~6개월로 잡혀 있는 그 기간이 우리나라에서는 3개월이 될 전망이다.

“부부란 상호 보완적이죠. 그들에게 있어 대원칙이라면 관계를 개선하려 할 때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점이죠.”1972년 교수가 된 이래 ‘정신간호학’ 강좌를 쭉 맡아 오면서 도달한 결론이다. 불변의 원칙이 있다면 부부간에는 반드시 가족 문제가 개입한다는 것. 부모와의 관계에서 삐뚤어 지면 성격 장애가 유발되고 초(超)자아(super ego)가 병들어 학교 공포증 등에 시달리다 결국 ‘제 2의 유영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부부가 중심이라는 대원칙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다. “이제 이혼이 이렇듯 증가하게 된 이유를 살펴 보죠.”

정서적 의사소통 절대 부족
무엇보다 한국인들은 ‘정서적 의사 소통’에 취약하다. 상대를 존중할 줄 모른다. 특히 부부 중심의 핵가족 시스템에서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에 게으르다. 둘째, 여성의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도 한몫 단단히 한다. 21세기에야 본격화한 정보화의 흐름을 이미 1990년대 후반에 선취해 낸 한국의 경우, 이 점은 더욱 중시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IT), 매스컴, 정보 등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오면서 여성 전문직과 여자 최고 경영자(CEO)가 증가하고, ‘남자가 우습게 보이는’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세째,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남자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는 급증하는데 반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물론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마저 급감한다. 이 지점에서 김 교수는 중요한 지적을 한다.

“(이렇게 된 데는)남자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사회에 책임이 있어요. 중요한 점은 부인이 그 같은 점을 이해하지 못 한다는 대목이죠.”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정신보건정신요원협회에서 3월31일 기치를 올린 ‘40대 남성 자긍심 갖기 운동’은 기 죽은 이 시대 남성들에게 날리는 강력한 추임새다. “퇴근하면 아무 생각도 없이 시간을 죽이고, 집에서는 TV의 노예가 돼 가족과의 정서적 유대는 포기하는 40대 남자들은 위험 덩어리예요. ‘사오정’이란 말에 잘 나타나 있잖아요.” 한국 40대 남성의 자살률ㆍ사망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사실 뿐 아니라 40대 퇴출자들이 우울증, B형 간염의 순으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들의 자긍심 회복과 재적응을 위해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창안한 ‘아빠, 힘내세요’ 프로그램은 이러한 40대 남성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MBTI(성격 검사), BDI(우울증 검사) 등과 함께 건강 관리, 사이코드라마, 자기 소개하기, 기공 체조, 영화 감상(‘말아톤’ 등), 노래방, 자기 소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취지다. 이 밖에 스포츠 댄스 등 오락적 프로그램은 물론 부모ㆍ가족과의 사랑 나누기, 기(氣) 살려주기 등을 통해 거듭남의 길을 제시해 주는 이 5일짜리 프로그램은 1시간용과 2시간용으로 구분돼 앞으로 긴요하게 쓰일 전망이다.

그는 자녀를 둔 부부의 이혼 문제에 대해 이제는 교육이 적극 관여해야 할 때라고 믿는다. “이혼의 최대 문제는 자녀 문제죠.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남녀의 생식기까지 가르치는 마당에 부부나 가족에 대한 웰옌幌?객募?것은 논리적으로 안 맞아요.” 이혼을 막기 위해 예비 신랑ㆍ신부 교육을 실시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대만의 경우, 예비 부부 학교 수료증 취득을 의무화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 같은 시스템이 없는 한국에 ‘의료 보험 혜택을 받는 부부 치료 상담실’은 먼 현실에 불과한 것일까. 우선 ‘가족 치료 자격증’ 제도부터라도 내실 있게 운영할 것을 그는 당부했다.

사회 모두가 책임의식 가져야
그는 미디어가 책임 의식을 갖고 성숙된 자세를 보여줄 것을 당부했다. ‘바람난 가족’이 어찌 영화만의 일일까. 불륜 아니면 삼각 관계로 가득 찬 TV드라마는 대리 만족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 불륜 등 한층 복잡한 문제를 양산해낼 뿐이다. 그 같은 풍속에 맞서 싸울 투사는 그래도 교육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형식적일 수도 있겠지만 교과 과정속에서 가족의 중요성을 계속 일깨워 가야죠.” 6년째 관련 영화를 보여 주고 토론이나 리포트 등으로 연결시키는 그의 수업은 인기 강좌로 자리잡았다. 사이코 드라마도 도입했다. 추상적, 공(空) 개념으로 굳어져 가는 우리 시대의 가족을 위해서다. 그의 가족은 역사학 교수인 윤석효(61ㆍ한성대 사학과), 아직 미혼인 1녀2남(그의 표현) 등이다. 이 대학 동서(東西)간호학 연구소 소장이기도 하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4-27 15:58


장병욱 차장 ah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