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대석] 한국적 성모자상 제작 조각가 오채현 씨
"종교적 상징과 관념을 배제하고 우리정서를 표현한 작품이죠"

<얼굴은 약간 넙적하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조선 여인의 한복을 입고, 아이를 업고 있다. 머리에는 물동이를 이고 있다. 자랑스럽게 젖 가슴을 드러내놓고 있다.>

이런 성모자상을 본 적이 있는가. 조각가 오채현(43) 씨가 만들어 최근 바티칸 한국대사관에 보낸 한국형 마리아와 예수의 모습이다.

성모가 입고 있는 치마에 묵주가 없다면 성모자상이라고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저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아주머니 모습이다.

시골 아주머니가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이 같은 성모자상이 바티칸 한국대사관저 내에 봉안된다. 제막식은 바티칸의 ‘한국의 날’인 10월4일 열린다.

가톨릭의 토착화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고, 또 꾸준히 실행되어왔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어느 나라, 어느 지역과도 달리 지식인들이 중심이 돼 스스로 교리 공부를 함으로써 가톨릭을 받아들였고, 그만큼 박해도 심했다.

103인의 성인을 배출했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토록 우리 가톨릭의 역사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함을 갖고 있다. 성가를 우리 가락에 맞춰 부르고, 한복을 입은 성모나 성모자. 성가족상 등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런데 오 씨가 제작한 이번 성모자상은 더 특이하다. 무엇보다 마리아가 가슴을 드러내놓고 있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엄격한 위계질서 등 보수적인 가톨릭 교단에서는 충격에 가깝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무엇보다 한국적 심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제작 의도를 묻자 대뜸 오 씨는 이렇게 답했다. “치마 저고리를 입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기억이나 느낌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낮은 신분이라는 것이죠. 만일 예수가 한국에서 나셨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마찬가지로 서민으로 태어나셨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아들을 낳으면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녔습니다. 상류층은 안 그랬지만 서민층은 그랬습니다.

당시 사진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오 씨의 목소리는 갈수록 힘을 더한다. “가슴은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 박애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물동이의 물은 성수인데, 이는 ‘일용할 물과 양식’을 의미합니다.

한편으로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십자가인 셈이죠.” 한 마디로 아이 키우고, 밭일을 하면서 건강한 삶을 이어온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 호미 들고 밭일을 해 손마디가 굵어진 모습, 바로 그것이다. 우리 시대, 우리 땅의 성모인 것이다.

오 씨는 천진난만한 모습의 ‘천진불’ 조각가로 더 유명하다. 2000년과 2002년 서울 조계사에서 ‘부처님 오신 날 특별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이번인터뷰도 조계사 내 찻집인 산중다원(山中茶苑)에서 했다. 그런 오 씨가 이번에 성모자상을 제작하게 된 경위는 예사롭지 않다. 2000년 조계사 기획전에서 그는 채석장에서 뜯어낸 돌이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연석으로 부처를 만들어 전시했다.

그 때 이를 본 경기 안성 대천동 성당의 방성복 안드레아 신부가 그에게 가장 한국적인 성모상 제작을 의뢰했다. 방 신부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종교간 교류를 주제로 한 논문을 쓴 ‘열린’ 신부다. 방 신부는 우리가 보는 성모상은 너무 서구적 모습에 치우쳐 있다, 한국적 모습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망설였지만, 이내 제작에 들어갔다. 2002년 완성된 2m50㎝ 크기의 성모자상은 미리내성지 앞 실버타운에 세워졌다. 가슴을 드러내놓고, 물통을 側?있으며, 예수는 지게를 지고 있는 형태다. 지게와 물통은 숲에?같?양식’을 의미한다.

이 작품을 성염 주 교황청 한국대사가 유심히 봤고, 성 대사는 그에게 작품을 의뢰하기에 이른다. 바티칸에는 세계 각국의 성모상이 모이는데, 가장 한국적인 모습의 상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오 씨가 10개월에 걸쳐 국산 화강암으로 만든 성모자상은 높이 190㎝, 무게 2톤으?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아주머니와 꼬마 모습이다.

오 씨는 불상을 만들 때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한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부처를 항상 생각한다. 이번 성모자상도 마찬가지다. “성모상에는 대개 십자가가 들어갑니다.

성모님은 가장 고결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너무 상징적이고 관념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떠나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성모가 가슴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마야부인이지 성모 마리아는 아니다’에서부터 시작해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성스럽기는커녕 불경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작품 의뢰 신부가 속한 교구에서는 종교재판을 열어 미사 집권을 못하게 했으며, 성모상 철거를 둘러싸고 공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학적 논쟁으로 나아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바티칸 한국대사관에 놓이게 됐다. “아프리카 성모상은 흑인입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성모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모상의 경우 가슴 드러낸 것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 수준이 아프리카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는 특정 종교가 없다. 중학교는 개신교, 고등학교는 가톨릭 계통을 다녔고, 결혼은 전통적인 유교 집안과 했다. 종교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견은 없다.

그런데 그에게 종교적 영향을 미친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경주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집 앞에는 황룡사가, 오른쪽에는 커다란 고분 들이 줄지어 있었다. 논두렁 밭두렁 어디서나 쉽게 기와나 토기의 파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그 파편들을 주워 모아둔 것이 두 박스나 된다. 철들면서 한국적인 것을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 체화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래서 그는 고향이 경주임을 고맙고도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릴 적 문화적 환경이 예술가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5년간 유학한 경험이다. 그는 그곳에서 고결하고 고상한 종교가 아닌 생활 속에 녹아있는 종교를 피부로 느꼈다. 종교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성모상이나 불상에서 보이는 편안함이나 천진스러움, 친근감 등은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종교적 작품은 다른 일반 작품과 다르다. 일반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단지 작품으로서 존재하나 종교적 작품은 그렇지 않다. 신자들의 경배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작품에 정신적인 그 무엇이 스며들지 않고 외형만 제작할 경우에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게 된다. 종교적 작품을 제작할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다.

오 씨는 오히려 신자가 아니어서 이런 고민을 더 잘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성모자상에서도 보편적이고 본능적인 모자간의 사랑을 종교적으로 승화시켜보려고 했다.

그럴 경우 비 신자가 더 적합할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인간적 측면에서 마리아와 예수를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종교를 초월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일 지금 예수상을 만들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라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나직이 답했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아니고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 고통과 고뇌를 짊어진 예수가 아니고 가장 편안한 모습의 예수, 원죄에 괴로워하는 예수가 아닌 인간적 감정에 충실한 예수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할 때보다 하지 않을 때가 더 바쁘다는 알다가도 모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도 곁들였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그는 돌, 그 중에서도 이 땅에서 나는 돌만을 재료로 쓴다. 그가 돌에 집착하는 것은 돌이 가지는 불멸성 무던함 중량감 등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자신의 성격과 체질적으로 맞는단다.

그는 대리석과 화강암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대리석은 입자가 치밀하고 부드러워 조각하기 쉽다. 머리카락이나 나무 잎까지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

화강암은 입자가 굵고 딱딱하다. 조각하기 어려워 전체적으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다. 그의 성모상이나 불상이 풍기는 모나지않은 느낌은 바로 여기서 연유磯?

그는 지금처럼 어려운 시절에 종교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완전한 프로가 되는 것이다. 오전 9시 작업장으로 출근해 오후 7시 퇴근 때까지 줄곧 일에만 매달린다. 킬?개인전을 갖지만, 절대 다작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오히려 1년마다 개인전을 안 하는 작가들이 이상하단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친했던 화랑주인이 55세의 작가를 두고 유능한 ‘젊은 예술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작업은 평생 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요즈음 그는 호랑이 작업에 한창이다. 무서운 동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빨 빠진 할아버지처럼 무섭지만 무섭지 않게 다가온다. 가장 한국적 이미지이자 상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마리아와 예수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작품 중 그림은 적지 않지만, 조각으로는 오 씨의 이번 성모자상이 사실상 처음이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 보는 눈도 달라진다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 그가 만들 또 다른 성모자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상호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5-08-30 18:58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