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화교자본 투자유치 길 틀 것"

[한국 초대석] 이태용 산업자원부 통상지원국장
"막대한 화교자본 투자유치 길 틀 것"

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쥐락펴락하고 있는 민족으로 흔히 유대인과 중국인을 들고 있다.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이들 민족은 막강한 자금력과 끈끈한 유대감, 결속력 등으로 경제 뿐 아니라 정치 분야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유대인은 우리와 별로 교류가 없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오랜 옛날부터 관계가 무척 깊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중국계 자본이나 기업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리 깊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 좋은 기회가 생겼다. 제8차 세계화상대회가 10월9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다.

전 세계 화교의 경제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화상대회는 1991년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전 총리의 제의로 싱가포르에서 1차 대회가 열린 후 2년마다 장소를 바꿔 개최되고 있는데, 이번이 서울이다.

우선 개념부터 정리하자. 화교는 중국이 아닌 해외에 사는 중국계 민족으로, 세계적으로 약 6,000만명에 달하며 이 중 80% 이상이 동남아에 집중되어 있다. 화상(華商)은 기업활동에 종사하는 중국계(화교) 상인을 말한다.

세계 130여 개국에 퍼져있는 이들은 현금과 채권 형태로 1조 5,000억달러, 주식과 자산으로 5,000억달러 이상을 보유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유동자금 규모가 최소 2조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제 금융가에서는 이러한 거대 자금 동원 능력 때문에 화교 상권을 미국 유럽연합(EU)에 이은 세계 3위의 경제 세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는 전 세계 화상들의 한국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번 서울 세계화상대회 준비를 총괄하고 있는, 야전사령관 격인 이태용 산업자원부 통상지원국장은 서울대회의 의미와 기대를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한국에 대한 인식 바꾸는 계기

이 국장의 말에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화교들은 한국의 발전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서울에 와 본 유력 화상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척박한 땅, 지내기 힘든 곳 이라는 정도입니다. 뭔지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화상들의 국내 투자는 아주 미미합니다.” 서울대회를 홍보하기 위해 민관합동으로 중국과 동남아, 미주 지역 등에서 가진 5차례의 투자설명회에서 이 국장은 무엇보다 이 점을 피부로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화교들의 경제ㆍ사회적 지위는 다른 나라의 화교에 비해 무척 열악하다.

토지 건물 취득이나 영주권 등에서 너무 제약이 많았다. 또 자장면 등은 물가안정이라는 명목으로 가격 통제가 심했다.

국내에는 2만3,000여명의 화교(조선족과 유학생 등을 포함한 신 화교는 10만여명으로 추산된다)들이 살고 있는데, 기업은 거의 없고 음식점이나 한의원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것들이 겹치다 보니 화교가 진출한 나라에서 차이나 타운이 없는 곳은 한국 뿐이다. 문득 일본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떠올랐다.

한 일본인에게 한국인 차별이 너무 하지 않느냐고 항의조로 말을 했더니, 옆에 있던 국내 화교가 어이없다며 이야기했다. 국내 화교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 대우는 더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화교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경제 뿐 아니라 정치에 있어서도 우리는 완전히 변방으로 몰릴 우려가 있다. 화교 자본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모두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중국 홍콩 대만의 중화경제권과 아세안을 합친 범 중화경제권은 나프타(NAFTA)나 유럽연합, 일본보다 경제규모는 적으나 세계 최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최근 가장 높은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화상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야 할 첫번째 이유다. 중국이 놀라운 발전을 지속하고 있는 데는 화교 자본의 역할이거의절대적이다.

중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의 70% 이상이 화교 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7월 중국과 아세안 사이에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됨에 따라 화교의 역할은 급속도로 증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시아가 외환위기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당시 중국 경제만은 동요가 없었던 것은 바로 화교자본이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지구촌 통상의 중심 된 화교자본

우리나라 총 수출액 중 중화권과 아세안으로의 수출 비중은 전체의 40%에 달하고 있다. 또 중화권과 아세안 지역의 투자는 전체 투자의 50%를 넘어서고 있다.

그만큼 이들 지역은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시장이지만, 이 지역이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블록화가 되면 우리는 한 쪽 구석으로 밀려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화상의 중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이 국장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떨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시장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오고 있었나’라는 안타까움과 반성 등이 착잡하게 뒤섞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계 화교들의 네트워크 강화 및 경제적 이익증진을 위한 세계화상대회는 원래 화상들이 스스로 자금을 대고, 정부는 뒤에서 도와주는 형식이었으나 이번 서울대회에는 정부가 앞장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화상대회가 초기에는 화상간 우의증진과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의 장소로 활용되었으나 규모가 확대되면서 점차 개최국 투자환경 홍보 및 화교자본 유치의 장으로 발전한 것이 하나의 이유다.

여기에 서울의 경우 화교들이 한국중화총상회를 중심으로 준비했으나 경험과 역량이 부족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데다 정부 또한 이번 대회의 중요성이 무척 크다고 판단했다.

“경제적 측면만 따져도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예전에는 미국이 통상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입니다.

교역과 투자 규모는 이미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 교역량은 1,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2007년 예상에서 많이 앞당겨진 것입니다.”

이 국장은 “캐나다와 호주가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각각 1997년과 99년 세계화상대회를 열어 화교 이민 및 투자유치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서울대회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 노력하고 있는 한국에 화교 자본이 안심하고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라고 자신했다.

서울대회는 해외 35개국에서 2,500여명, 국내에서 500여명 등 3,000여명의 화교가 참가할 예정이다.

비 화상권에서 열리는 최초의 대회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한 투자환경, 앞선 기술력, 정치ㆍ사회적 안정성 등을 중점적으로 알릴 계획입니다.

일단 안심해야 투자를 하지 않겠습니까.” 정부가 차이나 타운 건설을 앞에 내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렇다고 이번 대회로 화교 자본의 투자가 금방 늘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화교들은 ‘관계’를 무척 중시합니다. 우선 파트너, 즉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사업을 벌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화상들은 300만달러 규모의 사업을 할 때 자신이 100만달러밖에 없으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한테 빌려 시작합니다.

이 점이 우리와 크게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화상들과는 관계, 즉 네트워크가 절대적입니다.”

화상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기회

이 국장이 이번 대회에 기대하는 것은 한국과 중화 경제권과의 교량 역할이다. “중국 및 동남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기 위해서는 이들 지역에서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화교와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문화적 언어적 장벽을 극복하지 못해 중국 시장 공략에 비효율적인 반면 화교 기업들은 중국 시장 진출에 대부분 성공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상들만의 행사가 아닌 한ㆍ화상 간의 실질적인 비즈니스 교류와 한류 문화 확산의 장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꾸몄다.

“최대의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화상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한국 기업의 상품과 기술력, 화상 기업의 유통망 및 네트워크를 결합할 경우 새로운 시장개척이 가능합니다.”

이 국장이 노리는 것은 또 하나가 있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를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한류 문화사업에 화상자본을 결합해 중국 및 동남아 시?진출을 본격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화상대회의 성격상 정부로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국장은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상들이 알고 있는 국내 기업은 삼성 LG 현대 정도입니다. 화상들은 친교를 통한 믿음을 중시하고 있고, 앞으로 계속 진출해야 ?곳이 화교 경제권입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다행히 기업들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기대가 큽니다.”

대학 때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마오저뚱에 관심이 많았던 이 국장은 1989년 세미나 참석차 중국에 가서 직접 보고 ‘중국이 공산주의라는 것은 허울이다’고 느꼈다.

우리보다 돈에 대한 집념이 훨씬 강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문화적 공통점도 함께 느꼈다. 한류 열풍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당초 유력 후보지였던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극적으로 유치한 이번 세계화상대회가 꼭 성공할 것만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고 이 국장은 조심스럽지만 자신 있게 말한다.

올 하반기 APEC 정상회담과 함께 최대 국제행사로 꼽히는 제8차 서울 세계화상대회의 주제는 ‘화상과의 동반 성장, 지구촌의 평화 번영’이다.

“국내 화교의 위상을 높여 한국에 대한 화교권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국가 이미지를 제고해 화교 자본 및 투자를 적극 유치한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추석은 우리 민족 뿐 아니라 화교들에게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다. 이 국장은 추석도 잊은 채 행사 준비에 매달리겠지만, 우리도 이번 추석에 화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지. 똑같이 한가위 달을 쳐다보면서 말이다.


이상호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5-09-14 13:18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