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사랑의 삶에 가슴이 뛰고 피가 끓어요"

[한국 초대석] 국제 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은혜와 사랑의 삶에 가슴이 뛰고 피가 끓어요"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나는 무엇을 보고, 무슨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는가.

기독교 국제 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의 한비야(47) 긴급구조팀장은 “재미있는 세계 여행이나 계속하지 왜 힘든 긴급구호를 하세요”라는 한 대학생의 물음에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내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아직까지 나를 세계 일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면, 오지 여행가 한비야는 잊어주기 바란다. 이제 나는 긴급구호 요원으로 완전히 변신했기 때문이다.”

한 팀장은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한다. 최근에 나온, 지난 5년간 그가 밟아온 세계 긴급구호의 현장 보고서이자 삶의 보고서인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푸른 숲 발행)가 출간 즉시 베스트 셀러에 오르며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계에 일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왜 변신을 했고, 책은 왜 썼는지 궁금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벽에 세계 지도를 붙여놓았어요. 어느 날 세계 여행을 하려고 한다니까 주위에서 모두 깜짝 놀라더군요.

제 자신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도요. ” 처음부터 역마살이 끼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오지를 택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관광지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어요. 비디오가 더 잘 보여주죠. 유명 관광지는 비디오로 봐도 충분해요. 나중에 언제든지 찾을 수도 있고요.

직접 가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본다고 할 때, 현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을 때는 오지가 적격입니다. 서울보다는 강원도 산골에 가면 한국을, 한국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잖아요.

서로 눈을 맞출 수 있으니까요.” 그가 여행 중에서도 굳이 힘든 오지를 찾아 다닌 이유다.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관심을 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한 팀장이 이제는 긴급구호에 몰두하고 있다. 변신 이유에 대해 그는 한 마디로 ‘오지 여행의 결과’라고 했다.

7년 동안 오지 여행을 하면서 여행이 끝나면 난민 돕는 일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설사 같은 시시한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는데 필요한 건 링거 한 병이고, 그 한 병이 단돈 800원이라는 사실을 오지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또 국토 종단을 마친 직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국제 구호단체에서 난민을 돕고 싶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그 만큼 그 일에 대한 열망이 컸다.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5년 전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너무 기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드는’ 일을 절대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찾아서 할 것이었다.

“오지 여행을 하면서 약자를 많이 봤습니다. 그 때마다 내가 가진 힘을 어떤 사람들에게 보태고 살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강자 편에 서느냐, 약자 편에 서느냐의 문제입니다. 나는 결코 천사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도울 수 있고, 도와야 한다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느꼈습니다. 세상은 정글의 법칙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의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오지 여행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책 쓰는 이유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한 팀장은 7권의 책을 냈다. 어찌 보면 다작인데, 모두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책을 쓰는 이유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죠.

혼자만 재미 있으라고 하느님이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기에 쓰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글을 쓰는 것이 나누어야 할, 또는 전해야 할 경험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얼마 전에 펴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대해 정말로 기쁘다고 했다. “사람들은 책이 많이 팔려 돈을 많이 벌겠다며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어요.

솔직히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때문에 기쁜 것은 아닙니다.”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비슷한 질문을 막 하려는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독자들이 주로 누구인지 아세요?” 글쎄, 일상에서 탈출을 꿈꾸는 보통 사람들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하지만 틀렸다. 정답은 중ㆍ고교생이었다. 의외였다. “오후 3시에 사인회를 하는데, 오전 11시부터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아 무척 놀랐어요. 왜 그럴까요. 우리 청소년들은 무한 경쟁, 적자 생존이라는 정글의 법칙을 믿지않고 있어요.

그 보다는 은혜와 사랑의 법칙을 더 신뢰하고 있죠. 우리 서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른들만 모르고 있는 게죠. 그런 면에서 어른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그는 이 부분에서 감정이 격한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신을 말썽꾸러기라고 소개한 한 학생은 ‘선생님 책을 보고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매일 이 메일이나 편지 등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을 접하고 우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우리 모두는 마음 속에 숯덩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불을 붙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 책이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죠.”

이런 경우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의 딸을 둔 어머니한테서 8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가 왔다. 어느날 딸이 자진해서 급식당번을 하겠다고 했다.

당번을 하면 급식비를 안내도 되는데, 그래도 급식비는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집안 형편이 넉넉치 못해 용돈을 벌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월드비전에 내면, 한비야 선생이 좋은 일에 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니 그가 그 책을 내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건강해요. 좋은 국제사회 일원으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긴급구호라는 힘든 일을 계속하게끔 만드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세상 밖을 향해 용기있는 걸음해야

그러면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한 팀장처럼 특별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자기가 찾아야 합니다. 저도 최소 7년이 걸렸습니다. 젊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신을 묶고 있는, 제약하고 있는 각종 밧줄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과연 그 밧줄은 끊을 수 있는 것인지. 태국 코끼리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끼 코끼리는 쇠줄로 묶어 놓습니다. 그러면 꼼짝 못합니다. 그러다 다 크면 보통 줄로 묶습니다. 그래도 코끼리는 줄을 끊고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의 습관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할 수 있는 일을 단순히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선택입니다. 적어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 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팀장 같은 일을 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물었다.

다른 질문과 마찬가지로 즉시 답이 돌아온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를 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도울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까지 도와야 하나요.”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다. 여기에 대해서도 역시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우리를 도왔던 외국에는 고통 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라는 것이다. 우리가 돌보고자 하는 외국 사람湧?말 그대로 벼랑 끝에서 삶과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해당 정부가 돌봐야겠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사고의 폭을 조금만 넓히면 금방 알 수 있다.

긴급구호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일이 물자와 돈이 부족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못 살렸을 때라는 그의 탄식은 이런 맥락에서다.

또 하나 많이 받는 질문은 결혼이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는 것이다. 쉰 다섯 살쯤에 인생 길을 같이 갈 동반자를 만나면 좋겠다는 것이 답이다.

그에게는 이미 딸이 셋 있다. 큰 딸은 에티오피아, 둘째는 방글라데시, 셋째는 몽골에 각각 살고 있다. 올해 안에 네팔 아들이 한 명 더 생길 예정이다.

모두 월드비전이 맺어준 아이들이다. 매달 통장【?월드비전 이름으로 6만원이 빠져나간다. 이것을 보면 굉장히 기분이 좋다. 이 돈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세 딸과 그 가족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름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는다. ‘비야’는 가톨릭 세례명이다. 비오의 여자 이름으로, 한자로 표기할 때에는 飛野라고 쓴다. 본명은 한인순이다.

산 밑에 살 정도로 산을 무지하게 좋아하고, 재즈와 커피-박카스 칵테일을 즐기는 그에게 자신의 단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장점은 너무 많으니까. 그는 무진장 많아 밤을 세워 이야기할 수 있다며 웃는다. 첫째는 숫자에 너무 약한 점이다. 팀장으로서 예산을 세우거나 집행할 때 애를 먹는다.

둘째는 너무 잘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란다. 셋째는 ‘바르르’하는 성격이다.

그는 이를 ‘1.5배’라고 표현한다. 남들 보다 1.5배 화를 잘 내고, 슬퍼하고, 기뻐한다. 마음 속에 ‘센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현장에 가면 더 마음이 아프고, 돌아오면 심하게 몸살을 앓는다.

바람(Hope)의 딸로 세상을 밝히다

그는 기본적으로 긍정의 힘과 연대의 힘을 믿는다. 굳이 좌우명을 들라면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ㆍ최선을 다하고 하늘에 맡긴다)이다.

인터뷰하기 위해 그를 처음 본 순간 무척 놀랐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하기로 한 일을 끝까지 할 자신이 있고, 그 일을 하면서 가진 어떤 힘도 아까지 않을 자신이 있다’(그의 별명이 레이저 포인터임을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성이었다.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키나 몸무게 등을 묻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저런 체격으로 그런 힘든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눈은 빛났고, 달변이지만 장황하지 않고 요점만을 정확히 짚었다. 이야기를 할수록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그는 이제 ‘바람(Wind)의 딸’에서 ‘바람(Hope)의 딸’로 다시 우리 곁에 왔다. 그는 우리들에게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에게는 ‘다시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얼마나 어떻게 더 지속될지 기대된다.


이상호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5-10-18 17:26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