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성경적 토지정의모임 대표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한 정부의 8ㆍ31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두 달이 지났다.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분분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조금 가라앉고 있는 것 같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부동산 시장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과도 같다. 한번 터졌다 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다.

부동산은 아직도 재테크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고, 누구든지 한 탕을 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민 모두가 의도했든 안 했든 투기꾼이 되고 있고, 전 국토가 투기장이 되고 있다.

여기서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한 집 건너 교회’라는 말이 있듯, 무수한 교회가 세력 확장에 힘을 쏟을수록 부동산 투기에 대한 우려도 함께 높아진다.

한 밤중 유난히 반짝이는 교회의 붉은 색 십자가를 보고 ‘십자가 하나마다 노숙자 한 명이 매달려 있다’고 한 시인이 말했듯, 교회가 ‘본업’과는 거리가 먼 ‘투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불로소득 토지, 헐벗은 사람 위해 내놔야

얼마 전 기독교인들이 ‘토지정의를 위한 기독인 선언’을 발표했다. 교회의 부동산 투기를 참회하고, 정부의 정의로운 토지정책을 촉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선언문은 ‘많은 중대형 교회들이 예배당과 수련관, 기도원, 교인묘지 건축을 빙자해 부동산 투기를 하면서 교회를 성장시켜 왔고, 기독교인 개인도 부동산 투기를 자행하면서 번 돈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간주하고 그 일부를 십일조와 감사헌금으로 드렸고, 목회자는 그것을 축복해 왔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부동산 투기를 한 교회와 기독교인은 회개하고, 부동산 투기로 고통을 받아 온 가난한 이웃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토지불로소득을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하며,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정부가 공의로운 부동산 정책을 펼치도록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이 강제성을 띄는 것은 물론 아니며,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도 미지수다.

선언은 그저 선언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기독교 내부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선언을 주도한 ‘성경적 토지정의 모임’의 김명환(41) 대표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겉으로 보기엔 이런 ‘과격한’ 운동을 주도할 것 같지 않은 생김새다.

사회과학도도 아니다.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도 대학 3학년 때인 1985년 말부터 갖게 됐다.

그러나 그는 신념에 차있었고, 주장하는 바가 명료하고 단호했다. 그를 현재의 그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헨리 조지의 저서 ‘진보와 빈곤’과의 만남이다.

그는 ‘짧은 인생,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면서 기도하는 도중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을 통해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그 관심은 결국 땅으로 귀결했다. 첫 대면했을 때 그는 그 책을 읽고 있었다.

“몇 번을 읽었지만, 언제 보아도 새롭습니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후반기 미국의 사회사상가이자 경제학자다. 그는 지대조세를 통해 토지로부터 나오는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대신 노력소득에 부과되는 조세를 철폐함으로써 공평과 효율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와 빈곤’은 1879년에 나온 그의 대표적 저서다.

우리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정우 청와대 정책특보에 의해 참여정부 출범 후 급속히 새롭게 알려졌다. 부동산 대책을 비롯해 분배 우선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이 특보의 사상적 기반이 바로 헨리 조지이기 때문이다.

‘성경적…모임’도 1984년에 결성된 ‘한국 헨리 조지 협회’가 96년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 협회는 공동체 운동을 이끌었던 고(故) 대천덕 신부에게 감화 받은 복음주의적 평신도들이 모여 만들었다. 헨리 조지와 대천덕 신부가 양대 지주인 셈이다.

토지투기는 성서에도 금지

왜 이런 선언을 했는가를 먼저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교회가 앞장서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교회 건물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사용하는데, 너무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고,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그러니 일반인들의 시선이 고울 수만은 없다. “교회는 성경에도 금지하고 있는 토지투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내세운 성경은 ‘희년법’이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토지를 되찾아주고, 권력자와 부자들의 집에 묶여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시키자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사람이 예배당 장로석에 앉는 경우가 많아 교회가 부동산 투기에 관대해졌다”고 지적했다.

또 교회가 회개하지 않는 것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이 너무 영적인 측면에 치중하고 있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희년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신학교육의 개선을 말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김 대표는 성서가 말하는 토지정의에 공감하는 16개 단체와 연대해 지난 2월 ‘토지정의 시민연대’를 구성했다.

선언은 이 연대가 주도했다. 연대를 구성한 이유를 그가 설명했다. “교회가 먼저 회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20년 동안 교회를 설득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습니다. 시민들을 먼저 설득하고 이들 시민이 교회를 이끌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창립선언문을 살펴보면 그 모임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시민연대의 그것은 자못 장엄하기까지 하다. 선언문은 ‘작금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절망스러운 처지에 빠져 있다.

지속적으로 심화되어가는 빈부격차와 실업은 이제 한계점에 이르렀고, 내 집 마련에 전 일생을 걸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호랑이들만의 자유이고, 시장경제에서의 시장은 정글의 법칙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감히 단언하는 바이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그 원인은 토지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가치를 사유화 하는 잘못된 제도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토지 가치를 사유화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사유재산제에 어긋나며, 시장경제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지공(地公)주의다. 자본주의는 토지 노동 자본을 모두 사유화 한다.

사회주의는 그 반대로 모두 공유화다. 이에 비해 지공주의는 토지는 공유화하고, 노동과 자본은 사유화 한다.

토지 공유화는 토지를 공유해야 하지만 토지 가치 또는 지대만 공유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것이 진정한 토지 공개념이라는 것이다.

토지 사유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대를 100% 환수하면 토지 공유와 똑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헨리 조지의 토지 단일세는 당시 미국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맞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지대세 최우선 징수제 입니다. 불로소득, 그 중에서도 가장 악성인 불로소득이 부동산 투기소득 입니다. 토지 불로소득이 존재하는 한 토지소유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합니다. 기존 토지 소유자들은 우선 은행에서 대출 받기가 쉬운 등 자금 마련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그리고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 돈으로 또 땅을 사고, 그렇게 악순환이 지속되기가 쉽습니다. 지금도 상위 1%가 전체 토지의 51%를 가지고 있는데, 더 심화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김 대표가 제안하는 것은 토지소유 제한이 아니라 불로소득 자체의 완전 흡수다. “토지가치의 조세환수 비율을 단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높여서 그것을 국가 재정의 최우선 수입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 토지가치의 조세환수비율 강화는 환경보존에도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토지의 효율적 이용 촉진은 도시 내의 저사용 토지나 유휴지를 제거시켜 현대 도시가 직면한 난제 중 하나인 도심의 공동화 현상과 도시가 외곽으로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토지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대신 임금소득과 사업소득에 대한 조세와 상품에 붙는 간접세 등은 지속적으로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지 불로소득은 충분히 확실히 다 걷고, 그만큼 소득세는 내리는데 무엇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부담하는 부가세는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김 대표는 ‘팩키지용 조세 개혁’이라고 표현했다. 김 대표가 그의 명함 뒷면에 ‘지대 환수 세금 철폐’라고 쓴 것 중 ‘철폐’를 두 줄로 긋고 ‘감면’이라고 고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김 대표의 구상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통일에 대비한다. “이미 북한은 토지가 국유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통일 후 북한의 토지는 사유화 할 필요 없이 토지가치의 전액 환수를 전제로 하는 임대제를 실시하고, 노력소득에 대해서는 그 사적 소유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의 경제재건기간은 훨씬 단축되고 통일에 대한 부담감은 상당히 완화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한은 토지가치 환수비율을 지속적으로 늘림과 동시에 노력소득에 대한 조세는 감면하는 방향으로, 북한은 토지가치를 전액 환수하는 임대제 실시와 함께 노력소득에 대한 사적 소유를 확실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그래서 남북 양쪽이 토지가치는 공유하고 노력소득은 사유화 하는 방향으로 수렴하는 것이 통일한국의 경제체제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천이다. 말은 쉽고, 사리에 맞으나 교회와 교인들이 쉽게 따라줄 지가 의문이다.

김 대표가 열심히 설명한 것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시급한 것이냐고 묻자 처음 답은 일반인이 듣기에는 좀 엉뚱했다. “열심히 기도해야죠. 소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답이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이념들을 구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치권에 계속 촉구를 하지만, 직접 뛰어들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본인도 정치를 할 의향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금세 답이 왔다. “기회가 되면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토지 공개념을 실현하려면 입법이 전제가 되어야 하니까요. 지공주의 사회 건설은 사회구조를 바꾸자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화해야 합니다.”

최근 개신교 교회 내에서 부동산 투기를 회개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몇몇 교회가 앞장을 서고 있다. 한 교회는 시세차익 수십 억원을 사회에 내놓았다.

천주교는 하나의 성전을 여러 성당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사목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교회와 교인들이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워지기는 아직 멀고도 멀다.

그러나 김 대표는 낙관하고 있다. 기도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확신이다. 그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우리 시대에 100% 실현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응답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기도하고 요청할 뿐 입니다.”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