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차기 FRB 의장에 지명

18년 동안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앨런 그린스펀(79)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시대가 곧 막을 내린다.

10월24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내년 1월 31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그린스펀 의장의 후임으로 벤 버냉키(51)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명했다.

버냉키 지명자는 2002년 FRB 이사로 임명되기 전까지는 줄곧 대학 교수로 재직한 학자 출신이다.

1975년 하버드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스탠퍼드와 프린스턴 등 명문대에서 통화정책과 계량경제학 등을 가르쳤다.

그는 FRB로 옮긴 다음부터 줄곧 시장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린스펀 의장과 찰떡 호흡을 과시해 일찌감치 후계자 물망에 오르는가 하면, 때로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소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도 양자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평이다. 그린스펀 의장이 특유의 모호하면서도 전략적인 화법을 고집해 온 데 비해 버냉키 지명자는 확실하고 명료한 언어를 즐겨 구사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두 사람의 차이가 큰 틀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버냉키 지명자 스스로도 “그린스펀 의장 재임 기간에 확립된 정책의 연속성을 지켜나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이 버냉키를 선택한 것도 유가 불안, 인플레이션 압박 등 불확실성이 점증하는 상황에 일관성이라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시장도 그를 적잖이 반기는 분위기다. 지명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뉴욕 증시는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하며 후끈 달아올랐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유력 매니저도 버냉키를 ‘옳은 사람(right guy)’으로 지칭하며 성공적인 의장직 수행을 낙관하기도 했다.

월가의 실물 경제통이었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1987년 취임 직후 맞은 ‘검은 월요일’(뉴욕 증시가 대폭락한 사건)의 위기 국면을 단 한 줄의 성명으로 깨끗이 헤쳐 나감으로써 오늘의 명예에 첫 디딤돌을 놓았다.

그렇다면 천재 경제학자로 알려진 벤 버냉키 후임 지명자는 미국과 세계 경제 앞에 놓인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까. ‘포스트 그린스펀’ 시대가 다가오면서 지구촌 시장은 이제 그의 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